오른손이 없는 바이올리니스트 에이드리언 아난타완. 그는 연주할 때는 주걱 모양의 보조기구를 착용하고, 일상생활에서는 근육의 신호에 반응하는 손가락을 갖춘 인공 팔을 사용한다. 수원시향 제공
그는 바이올리니스트다. 그런데 오른손이 없다. 그는 문제없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보는 것보다 듣는 것에 더 집중한다면.
캐나다 태생의 바이올리니스트 에이드리언 아난타완(29)은 오른쪽 손과 팔의 일부가 없이 태어났다. 화학자였던 홍콩인 어머니와 그래픽 디자이너인 태국인 아버지는 아들이 음악이라는 좋은 벗을 곁에 두길 바랐다. 어린 시절 노래와 타악기, 트럼펫, 리코더를 거쳤지만 꼬마 에이드리언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바이올린이었다.
아홉 살 때 바이올린을 시작했다. 토론토 어린이재활병원의 도움으로 바이올린 활을 고정시킬 수 있는 ‘주걱’ 모양의 보조기구를 팔뚝에 부착했다. 이 플라스틱 재질의 보조기구에 벨크로(일명 찍찍이)로 활을 고정하고 오른팔을 움직여 활을 긋는다. 내년 수원시립교향악단 신년음악회를 통해 처음으로 한국 관객 앞에 서는 그를 e메일로 만났다.
“오른손이 없으니 논리적으론 성악이 가장 적절한 선택이었겠지만,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 내게 재능이 있다는 느낌을 강렬하게 받았어요. 배우기 시작한 첫 달에 아마추어 연주자였던 아버지보다 더 연주를 잘했다고 하니까요.”
음악은 ‘주변을 맴도는 말없는 아이’에게 세상으로 향하는 문을 열어줬다. 말수가 늘고 표현력도 자랐다. 12세에 실내악단에 들어갔을 때 그는 “동료 집단에 받아들여지는 첫 순간이었다.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가 아니라 어떤 소리를 내는지가 중요한 곳이었다. 음악으로 표현하고 소통하면 됐다”고 회상했다.
그는 매일 7∼10시간씩 바이올린을 붙들고 연습을 했다. 다섯 손가락으로 활을 쥐는 것이 아니라 팔뚝에 고정시킨 형태이기 때문에 비장애인보다 활이 움직이는 범위가 제한됐다. 하지만 부단한 노력을 통해 자신만의 장점으로 만들었다. 활로 현을 튕기는 스타카토 연주도 가능하다고 한다.
“나만의 음색은 활 사용법 때문에 만들어지는 면이 많습니다. 다른 바이올리니스트에 비해 활의 기울기 등을 더욱 자주 바꿔가면서 연주하기 때문에 밀도 있는 소리를 낸다는 평을 받습니다.”
아난타완은 2001년 미국 커티스음악원에 전액 장학생으로 선발됐고, 예일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하버드대 교육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마쳤다. 뉴욕 카네기홀, 백악관, 아스펜 음악제에서 리사이틀을 열었고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 개막식에서도 연주했다. 바이올리니스트 안네조피 무터 재단의 장학생인 그는 올해 무터와 유럽 10개 도시 순회공연도 했다. 커티스음악원에서 그를 가르친 아이다 카바피안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그를 ‘오른손이 없는, 뛰어난 연주자’가 아니라 그저 ‘훌륭한 연주자’라고 말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는 장애 어린이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도 창설해 북미를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무대에 나갈 때마다 많은 이들이 장애인에 대한 선입견과 맞서는 것 같습니다. 남다른 길을 가는 나를 지지해준 가족과 친구, 선생님들이 없었더라면 연주자이자 한 인간으로서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겁니다. 이것이 장애를 가진 어린이들의 예술 활동에 힘을 쏟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예술을 사람들이 보고 들을 때 희망의 싹이 돋아나기 때문이지요.”
한국 공연에서 아난타완은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를 수원시향과 협연한다. 그가 예일대 시절 처음으로 익힌 협주곡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했다. 내년 1월 9일 오후 7시 반 경기도문화의전당 행복한대극장. 전석 1만 원. 031-228-28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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