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판 시집, 생명 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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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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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지성사, 황병승-김경주-유하-이성복 시집 12월 출간

‘하늘의 뜨거운 꼭짓점이 불을 뿜는 정오//도마뱀은 쓴다/찢고 또 쓴다//(악수하고 싶은데 그댈 만지고 싶은데 내 손은 숲 속에 있어)//양산을 팽개치며 쓰러지는 저 늙은 여인에게도/쇠줄을 끌며 불 속으로 달아나는 개에게도’(황병승의 시 ‘여장남자 시코쿠’ 중)

‘도대체 이게 뭔 소리야’라고 짜증이 났다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시인 황병승은 2005년 시집 ‘여장남자 시코쿠’를 펴내 ‘첨단 시’와 ‘소통 불가’ 사이를 오가는 미래파 논쟁을 불러왔다. 시집을 냈던 랜덤하우스코리아와 5년 계약이 끝난 뒤 시집은 절판돼 아쉽게도 서점에서 사라졌다.

이처럼 ‘박제가 된’ 시집에도 독자의 관심은 꾸준하다. 인터넷 중고거래 카페에는 잊을 만하면 간절한 구매 글이 올라온다. ‘읽을 수만 있고 낙서만 안 돼 있다면 어느 정도 손상은 감수하겠습니다’ ‘독서에 지장만 없으면 됩니다’라는 등 책 상태에 대해서도 너그럽고, 중고지만 정가(6000원)에 웃돈을 얹어 1만 원에 사겠다는 글도 있다.

문학과지성사가 절판된 시집들을 복간하는 ‘R 시리즈’를 다음 달 초 새로 선보인다. 420호까지 나온 문학과지성 시인선과는 별도로 간행하는 시리즈다. ‘R’는 복간(Reissue), 반복(Repetition), 부활(Resurrection)을 뜻한다고 문지 측은 설명했다.

1차분으로 황병승의 ‘여장남자 시코쿠’를 비롯해 김경주의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2006년 랜덤하우스중앙), 유하의 ‘무림일기’(1995년 세계사), 이성복의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2003년 열림원) 등 시집 4권이 다시 독자들 곁으로 온다. 잃어버렸던 ‘자식’을 다시 찾게 된 황병승은 “열 권 정도 ‘시코쿠’를 갖고 있는데 동료 문인들이 ‘책 없냐’고 할 때마다 고심해서 한 권씩 내주곤 했다”며 웃었다.

문학과지성사는 문학평론가 김현(1942∼1990)이 번역한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1977년 문예출판사)도 내달 다시 출간한다. 일부 번역 오류를 수정했다. 계간 문학과사회가 겨울호로 통권 100호를 맞은 것을 기념하는 자리도 서울 마포구 동교동 문지문화원 사이에서 갖는다. 내달 3일 오후 7시 ‘한국 시의 뜨거운 미래를 위하여’를 주제로 김혜순 이원 이준규 하재연 시인이, 4일 오후 7시 ‘한국 소설의 특별한 발화점’을 주제로 이인성, 김경욱, 정이현, 최제훈 소설가가 낭독 및 독자들과의 대화 시간을 갖는다. 02-323-4207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문학과지성사#황병승#김경주#유하#이성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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