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교포 연출가 정의신의 신작 ‘나에게 불의 전차를’ 日 첫 공연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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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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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日 화해 메시지에 기나긴 커튼콜

일본에서 먼저 선보인 재일교포 작가 겸 연출가 정의신 씨의 신작 ‘나에게 불의 전차를’은 일제강점기 경성을 배경으로 한국인과 일본인의 우정을 다뤘다. 우메다예술극장 제공
일본에서 먼저 선보인 재일교포 작가 겸 연출가 정의신 씨의 신작 ‘나에게 불의 전차를’은 일제강점기 경성을 배경으로 한국인과 일본인의 우정을 다뤘다. 우메다예술극장 제공
공연 중 사물놀이. 남사당패의 꼭두쇠로 출연하는 차승원 씨는 직접 상모를 돌리고 줄도 탄다.
공연 중 사물놀이. 남사당패의 꼭두쇠로 출연하는 차승원 씨는 직접 상모를 돌리고 줄도 탄다.
독도 문제로 촉발된 한일관계 경색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이런 민감한 시기에 한일 양국의 화해 메시지를 담고 있는 연극 ‘나에게 불의 전차를’이 일본 도쿄의 중심인 아카사카 대극장에서 공연을 시작했다. 일제강점기 경성(서울)을 배경으로 남사당패에 속한 한국인과 한국 문화에 심취한 일본인의 우정을 다룬 작품으로 양국 배우들이 함께 출연한다.

개막일인 3일 공연장인 아카사카 ACT 시어터의 1300여 객석은 일본인 관객으로 만원이었다. 커튼콜 때 기립박수가 길다 못해 얼마간은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로 공연은 성황을 이뤘다.

이 작품은 한일 양국의 스타 차승원 씨, 구사나기 쓰요시, 히로스에 료코 씨가 출연해 특히 시선을 끌었다. 구사나기 씨는 일본 아이돌 그룹 스마프(SMAP) 출신의 연예인으로 한국에선 ‘초난강’이란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재일교포 작가 겸 연출가 정의신 씨는 6월 서울에서 공연한 ‘봄의 노래는 바다에 흐르고’를 통해 1944년 전라도 어느 섬을 무대로 한국인 가족과 섬에 주둔하는 일본군 군인들 사이의 애증을 그린 바 있다. 이번 작품에서는 1924년 경성을 무대로 삼고 한국인과 일본인의 우정이라는 주제도 훨씬 선명하게 드러냈다.

구사나기 씨가 맡은 일본인 주인공 야나기하라 나오키는 일제강점기에 조선 문화에 심취해 관련 저술과 기고를 여럿 남겼던 실존인물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1889∼1961)를 모델로 했다. 총독부의 광화문 철거를 반대했던 주인공으로 알려진 그는 이 연극에서 ‘나오키’란 인물로 형상화됐다. 조선에서 야학을 운영하며 백자를 공부하는 나오키가 우연히 남사당패의 연기자이자 꼭두쇠 이순우(차승원)를 만나고, 두 사람이 우정을 쌓아 나간다는 줄거리다.

공연 마지막 나오키의 연설이 작품의 메시지를 압축했다. “언젠가 조선은 해방되고, 여러분에게도 자유가 찾아올 날이 오겠지요. 그때까지, 그리고 그 다음에도 여러분 앞에는 많은 고통과 많은 슬픔이 닥쳐오겠지요. 그래도 언제나 가슴에는 ‘불의 전차’를 안고, 수많은 고난과 싸워 나가세요. 100년 후, 200년 후 지금 여러분의 고통, 슬픔은 거짓처럼 없어지고, 웃으면서 얘기할 날이 올지 모릅니다. 미래는 이미 여러분 손안에 있습니다.”

연극에 처음으로 도전한 차승원 씨의 연기는 기존 연기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무대 장악력도 떨어져 아쉬움을 남겼다. 작품 전체적으로 주인공들의 우정도 작위적인 느낌을 줬지만 관객들의 감성을 파고드는 연출력은 돋보였다. 공연 뒤 일부 관객은 “감동적이었다. 그런데 일본 우익에서 내용을 알면 대규모 시위에 나서지 않을까 걱정스럽다”며 우려를 표시하기도 했다.

공연에 앞서 열린 간담회에서 배우들은 최근 양국의 냉랭한 분위기와 달리 돈독한 유대감을 표시했다. 차 씨는 구사나기 씨에 대해 “6년 전에 나를 인터뷰하러 한국에 왔는데 일본의 스타답지 않게 겸손해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 이번에 연습하면서 한 달 같이 생활해 보니 왜 오래 팬들에게 사랑받는지 알 것 같다. 공연을 계기로 좋은 친구로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 구사나기 씨도 “한국 배우와는 처음 공연해 보는데 작업 분위기가 굉장히 좋다. 차승원 씨는 굉장히 열심히 노력하는 배우라 배울 점이 많았다”고 화답했다.

이 작품은 12월 도쿄와 오사카에서 공연한 뒤 2013년 1월 서울 무대에 오른다.

도쿄=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정의신#나에게 불의 전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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