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단 야구팀에서 좌완투수로 활약 중인 정신철 주교의 왼손에 야구공을 움켜쥐게 할 수는 없었다. 정 주교는 “업무 때문에 훈련에 자주 빠져 다른 선수들에게 미안하다”며 야구 포즈를 사양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2010년 연탄을 나르며 환하게 웃고 있는 정신철 주교. 청년들과의 연탄 나르기는 이제 연례행사가 됐다. 평화신문 제공“대주교님, 28일 영명축일(세례명의 성인 축일)이시니 1차전 삼성 승리는 선물입니다. 하하.”(정신철 인천교구 총대리주교)
“허허.”(조환길 대구대교구장)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1차전이 열린 24일 정신철 주교(48)와 조환길 대주교(58)가 전화로 나눈 얘기다. 평소 근엄해 보이는 주교님들의 대화로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도 소문난 야구광인 정 주교의 말에서 야구가 빠질 수는 없었다.
“인천교구이니 당연히 SK를 응원하는데 올해 쉽지 않아 보입니다. SK 3루수 최정 선수는 근성이 느껴져 좋아하는 선수입니다.”
26일 인천 답동 교구청에서 만난 그는 인천교구 신부들로 구성된 야구팀 ‘쉐퍼즈’에서 투수로 뛰고 있다고 했다. 그는 “직구는 100km 안팎, 변화구 중에는 커브와 슬라이더를 구사한다”면서도 “어, 이렇게 야구 얘기만 계속하면 축구협회에서 싫어한다”며 웃었다. 그 미소다. 2010년 청년 신자들과 연탄을 나르는 그의 사진은 교계 신문에 소개돼 ‘아름다운 웃음’으로 화제가 됐다.
2010년 1960년대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주교로 임명된 그는 현재 천주교주교회의 해외이주사목위원회 위원장도 맡고 있다. ‘울지마 톤즈’로 잘 알려진 고 이태석 신부를 계기로 한국 가톨릭의 해외 선교가 재조명되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900여 명의 신부와 수녀, 평신도들이 남미와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선교사로 파견돼 있다.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성장한 한국 교회가 이제는 ‘나누는 교회’로 바뀌고 있습니다. 해외 선교는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있지만 사랑은 나눌 때 더 큰 사랑으로 돌아옵니다.”
6일에는 라틴아메리카 선교와 문화를 주제로 제3회 해외 선교사의 날 행사를 개최했다. “중남미 국가들은 가톨릭 신자 비율이 50%가 넘지만 사제와 수도사가 크게 부족합니다. 우리 선교사들이 있는 지역에서 총성과 범죄가 급격하게 줄고 있어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모든 선교사들이 선교뿐 아니라 한국의 이미지를 좌우하는 ‘국가대표’입니다.”
한국 가톨릭 주교단의 젊은 주교에 속하는 그는 우리 사회의 소통 문제에 큰 관심을 쏟고 있다.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지하철을 자주 이용한다.
“정부 차원의 소통을 위한 기구까지 있지만 세대와 세대, 지역과 계층 간에 소통이 잘된다고 느끼는 분은 드물 겁니다. 지하철을 타면 모두 ‘○○팡’ ‘○○○톡’을 하느라 너무 바빠요. 페이스 투 페이스가 안 되는데 어떻게 가슴을 열겠습니까?”
그는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모든 후보들이 물질적 목표만 앞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인류학자들은 한국은 부자 나라가 될 수는 있어도 선진국 되기는 어렵다고 꼬집습니다.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정신문화가 없다는 겁니다. 이제 ‘잘살면 됐지’라는 식이 아니라, 물질을 넘어선 풍요로운 정신적 가치를 정립해야 할 시기입니다.”
프랑스 유학 중 실천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정 주교는 외규장각 도서 반환에 큰 기여를 한 고 박병선 박사와도 각별한 사이였다. 이 같은 인연으로 고인이 남긴 유산과 소장 도서들이 인천가톨릭대에 기증됐다.
“1주기(11월 23일)가 다가오는데 사람들이 잊은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1주기 때 유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미사와 조촐한 기념식으로 그분을 추모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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