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볼 수 없는 사랑… 바이올린으로 그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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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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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급 시각장애 연주자 김종훈 씨 9월 10일 콘서트

바이올리니스트 김종훈 씨는 어릴 때부터 시각장애로 악보를 잘 볼 수 없었다. 청력을 키워 고난도 테크닉을 정확하게 연주했고 실력을 인정받았다. “베토벤은 들리지 않았고 나는 보이지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음악을 하는 데 장애가 될 수 없다.” 서울뮤직그룹 제공
바이올리니스트 김종훈 씨는 어릴 때부터 시각장애로 악보를 잘 볼 수 없었다. 청력을 키워 고난도 테크닉을 정확하게 연주했고 실력을 인정받았다. “베토벤은 들리지 않았고 나는 보이지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음악을 하는 데 장애가 될 수 없다.” 서울뮤직그룹 제공
밤늦도록 악보와 씨름하며 바이올린을 켜던 소년은 눈이 빠질 듯 아프고 머리가 묵직했다. 소년은 잠자리에 들려다 안방 문틈으로 새어나오는 불빛에 다시 활을 들었다. 달력 뒷면에 커다란 악보를 그리는 엄마. 선천적 백내장과 녹내장으로 시력을 잃어가는 아들을 위해 엄마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악보를 만들고 있었다. 음표머리 하나가 ‘빅파이’만 한 악보였다.

온통 희미한 세상에서 소년을 이끈 것은 바이올린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 빠듯한 집안 형편에 6개월 동안 레슨을 못 받았다. 소년은 그때 알았다. 음악이 자신의 삶에 절실하다는 것을. 언젠가 맨홀에 빠질 뻔한 그를 구해준 것도 맨홀 입구에 걸린 바이올린 케이스였다.

한양대 음대에 진학해보니 친구들은 꿈이 많았다. 유학을 가거나 오케스트라에 자리를 잡겠다고 했다. 답답했다. 대학생 김종훈은 어떤 꿈도 꿀 수 없었다. 3학년 때부터 밤무대에 섰다. 엄마가 그려준 악보를 달달 외워 호텔에서 연주했다. 돈은 제법 벌었다. ‘내가 갈 길은 이 길이구나.’ 이듬해 김의명 교수가 그의 연주를 듣더니 한마디 했다. “너, 열심히 하면 바이올린 잘하겠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 얘기도 아닌데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 같았다. 김 교수의 수업을 듣기 위해 일부러 4학년 2학기 시험을 치르지 않고 학교를 1년 더 다녔다.

대학 졸업 후 할 일이 없었다. 친구가 차린 학원에서 덧없는 연습을 하면서 가끔 꼬마들을 가르쳤다. 어느 날 비올라로 독일 유학을 간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종훈아, 독일 와서 공부해. 학비도 안 들어.” ‘가서 죽기야 하겠어?’ 싶어 독일행 비행기를 탔다.

데트몰트 음대에서 울프 발린 교수를 만났다. 발린 교수는 앞을 보지 못하는 제자에게 자신의 손을 만져보게 하면서 가르쳤다. 기술적인 면을 다듬고 완성해 가는 과정이었다. 발린 교수가 한스아이슬러 국립음대로 자리를 옮기자 그를 따라갔다. 그러는 동안 시력은 점점 나빠져 지팡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됐다.

고독한 유학 생활 중 한 여인이 가슴에 들어왔다. 같은 대학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하는, 여섯 살 연하의 한국인 유학생 김영아였다. 현악사중주를 함께 시작할 때만 해도 김종훈에게 결혼은 멀고 먼 얘기였다. 음악을 만들어나가면서 김영아와 평생 같이 얘기하고 싶어졌다. “내 가족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테니 한번 맡겨보겠니.” 일주일 만에 승낙의 답을 들었다. 외동딸의 아버지는 “내 딸이 선택한 남자라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면서 믿어주었다.

1999년 결혼하고 2001년 아들 태욱이 태어났다. 아들 역시 소아백내장이었다. 김종훈은 자신 외에는 집안에 어느 누구도 눈으로 문제를 겪는 이가 없어 유전이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터였다. 아들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유학생활을 중단하고 홀로 귀국했다. 지인들을 통해 전국 각 대학에 이력서를 넣고 주스 상자를 들고 시간강사 자리를 찾아 돌아다녔지만 앞 못 보는 그를 믿고 써주는 곳이 없었다. 플루티스트 배재영 숭실대 교수의 도움으로 2002년 1학기부터 겨우 출강하기 시작했다.

시각장애인들로 구성된 악단인 ‘하트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악장도 맡았다. 악착같이 모아 마련했던 1500만 원짜리 바이올린도 팔아서 전세금에 보탰다. 그를 안타깝게 여긴 독지가가 최근 프랑스산 바이올린을 기증했다.

이 얘기들을 전하는 김종훈의 얼굴에는 어두운 기색이라고는 없다. 앞을 보지는 못하지만 더 많은 것을 보는 눈을 지녔기에. 행사 무대를 뛰는 ‘1급 시각장애인 음악가’가 아닌, 44세의 바이올리니스트 김종훈을 위해 뜻을 같이하는 이들이 모였다. 배재영 교수가 사비를 털어 공연장을 빌리고, 사진집단 ‘오빠 사진관’이 프로필 사진을 찍고, 디자이너 김은희 피콕 대표가 디자인을, 김도연 아이디어랩 팀장이 홍보를 맡았다.

9월 10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미라클 아이즈’ 콘서트가 열린다. 영국 런던 장애인올림픽에 가야금을 연주하러 간 아들 태욱이는 이날 인천공항에 도착해 곧바로 공연장으로 온다. 사라사테 ‘나바라’,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1번,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2번, 파가니니 바이올린 소나타 e단조. 2만∼5만 원. 02-580-1300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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