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 우울증… 고대 철학이 날 구원했다

  • 동아일보

신간 ‘철학을 권하다’ 저자 줄스 에번스 e메일 인터뷰

《“저녁이 찾아오면 나는 집으로 돌아와 서재로 간다. 서재 문 앞에서 흙과 땀이 묻은 작업복을 벗고 궁정에 들어갈 때 입는 옷으로 갈아입는다.… 고대의 성현들에게 삶의 동기가 무엇이었냐고 물으면, 그들은 친절하게 답해 준다. 이렇게 서재에서 네 시간쯤 보내다 보면 세상사를 잊고, 짜증나는 일들도 모두 잊는다. 가난도 더는 무섭지 않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떨리던 마음도 편안해진다.”(1513년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프란체스코 베토리에게 보낸 편지 중)

신간 ‘철학을 권하다’의 저자인 줄스 에번스는 영국 옥스퍼드대 출신의 엘리트 청년이었다. 하지만 수년간 정체불명의 정서장애로 고통을 받았다. 그가 자신의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치료한 묘약은 고대철학이었다. 과연 그에게 철학이 어떤 효과를 발휘한 걸까. ‘철학은 딱딱하다’는 편견을 가진 독자를 고려해 그와의 e메일 인터뷰를 편안한 대화체로 정리했다. 》

고대철학으로 우울증과 사회불안장애 등을 극복하고 철학을 알리는 활동에 앞장서고 있는 영국의 젊은 철학전도사 줄스 에번스 씨. 그는 삶을 사랑하는 데 도움이 되는 고대철학자들의 가르침을 담아 신간 ‘철학을 권하다’를 펴냈다. 줄스 에번스 홈페이지(philosophyforlife.org)
고대철학으로 우울증과 사회불안장애 등을 극복하고 철학을 알리는 활동에 앞장서고 있는 영국의 젊은 철학전도사 줄스 에번스 씨. 그는 삶을 사랑하는 데 도움이 되는 고대철학자들의 가르침을 담아 신간 ‘철학을 권하다’를 펴냈다. 줄스 에번스 홈페이지(philosophyforlife.org)
▽줄스 에번스=안녕, 동아일보 독자 여러분! 나는 런던에 사는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줄스 에번스야. 나이는 서른다섯. 1996년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던 신입생 시절, 난 갑작스러운 공황발작과 우울증, 심한 감정 기복과 불안에 휩싸였어.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었지. 내 감정을 이해하고 다스리는 법, 삶의 목적에 대해 성찰하는 법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어. 점점 나만의 두꺼운 껍질 속으로 숨어들어갔어. 친구들과도 멀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됐지. 당시 나의 생각은 오직 하나. ‘세상은 내게 적대적이야!’

2001년 사회불안장애, 우울증,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진단을 받았어. ‘인지행동치료’로 이런 정서장애를 치유할 수 있다기에 런던의 한 교회에서 매주 열리는 인지행동치료 모임에 갔어. 한 달쯤 지나자 공황발작이 사라지면서 난폭한 감정을 다스릴 자신감이 생겼어. 2007년부터 인지심리학자들을 인터뷰하다 인지행동치료에 고대 그리스철학이 직접 영향을 끼쳤음을 발견했지. 2000년 전의 사상이 21세기에 고통 받는 나를 구해줄 수 있다니!

이후 난 고대 그리스철학을 섭렵하며 정서장애를 이겨냈어. 철학에서 정신적 도움을 받은 수백 명을 인터뷰했고 철학커뮤니티 ‘런던철학클럽’을 창립했지. 펍(pub) 공원 대학 등 다양한 장소에서 강연과 토론회를 열고 있어. 철학 전도사라고? 내친 김에 책도 썼다고. 라파엘로의 그림 ‘아테네 학당’의 개방적이고 활기찬 분위기에서 하루쯤 고대철학을 청강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에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등 고대철학자 12명으로부터 감정을 어떻게 다스리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들어보는 형식으로 책을 썼어. 14개국에서 출간했는데 한국판 제목은 ‘철학을 권하다’(더퀘스트)야.

▽기자=정서장애에 정말 이유가 없었어? 못 믿겠어.

▽에번스=지금 와서 보니 청소년 때 엑스터시 같은 마약을 해서 그런 것 같아. 난 두려움과 불행감을 억누르기만 할 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어. 남들 눈에 약한 존재로 비치는 게 창피했거든. 결국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건 내 잘못된 믿음이란 걸 깨달았어. 과거엔 ‘남들이 생각하는 나’에 큰 가치를 뒀거든.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좋아할 수 있음을 깨달은 뒤부터 치유되기 시작했어. 이 과정에서 고대 그리스철학이 큰 도움이 됐지.

▽기자=‘철학으로 우울증을 이겨냈다’고 하면 사람들이 콧방귀를 뀔 걸. 솔직히 철학, 어렵지 않았어?

▽에번스=아니, 전혀! 철학은 놀라울 만큼 이해하기 쉬운 데다 아름답기까지 하다고. 인지행동치료를 받으면서 청소년 때 읽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과 비슷하단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인지행동치료를 개발한 앨버트 엘리스와 애런 벡 등의 학자들을 인터뷰했는데, 그들 역시 고대 그리스철학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더군. 고대 그리스인들은 철학이 영혼을 치료해준다고 봤어. 그리스 철학자들의 저작은 무척 읽기 쉬워. 그들의 글은 위대한 문학작품과도 같아서 시와 진실한 아름다움이 곁들여있지.

▽기자=고대철학이 어떻게 당신의 정신과 삶을 긍정적으로 바꿨다는 거야? 철학을 읽는다고 해서 어떻게 사람이 변하니?

▽에번스=고대철학은 남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스스로를 바라보던 습관을 버리게 했어. 나 자신에게 너무 야박하게 굴지 말라고 가르쳤다고! 그게 내 삶을 구원했지. 물론 하루아침에 바뀌진 않아. 우울증과 불안을 극복하고 자신감을 되찾기 위해 6, 7년 혹독한 연습을 해야 했지. 지금도 여전히 연습 중이야.

▽기자=하지만 그런 시도가 철학을 쏟아져나오는 자기계발서의 하나로 전락시키는 건 아닐까.

▽에번스=가끔 ‘자기계발의 구루’라는 사람들이 아리스토텔레스나 플라톤을 들먹이는데 얼토당토않더군. 고대철학자들은 ‘생각을 바꾸면 돈을 벌 수 있다’고 절대 가르치지 않았어. 자기계발서가 지극히 개인적이고 행복해지는 비법에 초점을 맞춘다면 철학은 무엇이 진정한 행복이고, 삶의 의미가 뭔지, 나아가 좋은 사회란 뭔지 묻게 만들지. 또 고대철학은 옛날 자기계발이나 치유의 형태로 쓰였어. 현대인들이 고대철학자들의 가르침을 재발견하고 삶에 응용하는 건 좋은 일이야.

▽기자=철학의 중요성은 알지만 어렵고 지루하다는 편견 때문에 철학을 읽을 엄두를 못 내는 사람이 많아.

▽에번스=전혀 어렵지 않아. 날 믿어! 고대철학을 삶에 끌어들인 많은 사람의 이야기가 내 책에 나오는데, 이들도 나처럼 대부분 독학을 했어. 그러니 겁먹지 마.

▽기자=앞으로의 계획을 소개해줘.

▽에번스=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철학 모임을 조사하고 있어. 10월에 선보일 예정으로 ‘세계 철학 지도’라는 웹사이트를 만들고 있지. 앞으로 누구나 동네에서 가까운 철학 모임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문화#출판#철학을 권하다#줄스 에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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