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다큐같은 연극, 무대를 허물고 연극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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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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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정도 병인 양하여’ ★★★★

극사실주의를 표방한 연극 ‘다정도 병인 양하여’. 국립극단 제공
극사실주의를 표방한 연극 ‘다정도 병인 양하여’. 국립극단 제공
연극 ‘다정도 병인 양하여’를 보는 내내 ‘이 이야기가 사실인가 허구인가’ 헷갈렸다. 사실이라고 믿어도 무리가 없을 만큼 내용이 구체적이고 치밀했다.

제목은 고려시대 문인 이조년의 시조에 나오는 구절. 이 작품 작가이자 연출가인 성기웅 씨는 여기서의 다정(多情)을 ‘사귀는 사람이 많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차용했다. 연극은 성 씨가 2008년 12월부터 동시에 여러 명의 남자를 사귀는 여자 ‘다정’을 만나고 그의 서열 3위 애인이 돼 교제를 시작했다가 2010년 3월 완전히 헤어지기까지의 이야기를, 아니, 실은 이 이야기를 작품으로 무대에 올리기까지의 과정도 함께 담았다.

공연 시작과 함께 작가 겸 연출가가 직접 무대에 올라 일본에서 발전한 소설양식인 ‘사소설(私小說)’을 소개하며 자신이 이를 연극에 투영한 ‘사연극(私演劇)’ 제작에 관심을 가져왔다고 말한다. 허구가 아닌 자신이 겪은 실제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들려고 했다는 거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실제로 주고받았다는 두 사람의 사적인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나 대화 녹취를 무대에서 사용하고, 두 사람이 실제 만났던 청계천변, 술집 등의 사진이나 이미지도 스크린을 통해 배경으로 제시한다.

이 공연은 작가 자신의 연애담을 줄기로 한, 인간관계에 대한 다큐멘터리 같은 연극이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 기존의 무대 문법을 다양하게 허물며 ‘연극성이란 무엇인지’를 탐색한다. 배우들은 종종 자신의 배역을 벗어던지고 배우로서 관객에게 말을 건넨다. 중간 중간 극의 흐름을 끊은 채 프레젠테이션 형식을 빌려 다정의 캐릭터와 그의 과거 연애패턴을 분석하는 것 역시 관객의 몰입을 막으려는 브레히트적 장치다. 일본 작가 히라타 오리자의 ‘과학하는 마음’ 시리즈처럼 일상을 그대로 무대에 옮겨 놓은 듯한 사실주의 작품을 주로 무대에 올린 성 씨는 이번 작품에서 자신만의 ‘극사실주의극’을 성취한 듯하다. 3시간 가까운 공연은 지루하지 않았을뿐더러 남녀 관계와 연극 등에 대해 생각해볼 여지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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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의 ‘젊은 연출가 시리즈’ 첫 작품. 24일까지 서울 용산구 서계동 국립극단 소극장 판. 2만 원. 1688-5966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연극#공연#공연 리뷰#다정도 병인 양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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