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내 인생을 바꾼 순간]김부겸 “지난 총선 때 대구 시민들, 왜 그런 당에 있냐며…”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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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겸이 故 제정구 선생에게 화두를 받은 때

서울 종로구 세종로 일민미술관(옛 동아일보 건물)옥상에 오르자 김부겸은 “30여 년 전 시위할 때 여기 올라와서 유인물을 뿌렸으면 좋았을 텐데…”하며 웃었다. 그는 자기희생이 없는 진보에 국민이 마음을 줄 리가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서울 종로구 세종로 일민미술관(옛 동아일보 건물)옥상에 오르자 김부겸은 “30여 년 전 시위할 때 여기 올라와서 유인물을 뿌렸으면 좋았을 텐데…”하며 웃었다. 그는 자기희생이 없는 진보에 국민이 마음을 줄 리가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 그날따라 제정구 선생(1944∼1999·14, 15대 국회의원·도시빈민운동가)은 진지하게 물었다. “야, 니는 정치를 앞으로 우예 할라카노?” 폐암 선고를 받고 서너 달째 경기 시흥시 자택에서 투병생활을 하던 제 선생이었다. 가끔씩 찾아가면 “머리를 깎으니 인물이 훤해졌다”는 둥 농담에 인생 이야기만 나눴다. 갓 마흔을 넘긴 김부겸(54·16, 17, 18대 국회의원)은 ‘정치를 어떻게 할 거라니…?’라고 속으로 반문했다. ‘차례가 오면 국회의원 하고 그런 거지’ 하는 게 평소 생각이라면 생각이었다. “앞으로 정치는 투쟁만 가지고는 몬한데이.” 뭐지? 뭔가 둔중한 물체에 머리를 탁 맞은 듯했다. 몇 달 뒤인 1999년 2월 제 선생은 세상을 떠났다. 그 이듬해 김부겸은 국회에 입성했다. 》
○ 디아스포라

“이놈아. 너는 학생도 아니고 이제는 가장이야. 가장이라는 놈이 살림 옮기고 이사하는 걸 장난처럼 하냐. 인생살이를 뭐 이렇게 하느냐.”

1983년 겨울. 김부겸은 아내와 갓 돌 된 딸을 데리고 대구에서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대학 친구네 문간방이 비어 있다는 걸 알고 그리로 앞뒤 가리지 않고 찾아와 짐을 부린 뒤였다. 친구의 아버님은 이 꼴을 보시더니 기가 차다는 듯 혼을 내셨다. 버릇없는 짓인 줄 알았지만 그때 김부겸으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해 9월 추석 이튿날 대구 미국문화원에서 사제폭탄이 터져 고교생 한 명이 숨지는 사건이 벌어졌다. 경찰은 대구 지역의 이른바 운동권 출신자들은 무조건 연행해 조사를 벌였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당국에 수배돼 구속·수감생활을 했던 그도 당연히 표적이 됐다. 장티푸스에 걸려 입원해 있던 딸아이를 돌보다 병원에서 끌려간 게 처음이었다. 억지스러운 조사와 구타가 이후 두어 달 동안 세 차례나 이어졌다.

“이렇게는 도저히 못 살겠다 싶었어요. 여기서 맞아 죽느니 튀자. 집도 안 구하고 그냥 보따리 쌌지요. 다시는 대구로 못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어요.”

어쩌면 그는 자기 땅에서, 고향에서 버림받은 자가 돼버렸다. 그래서 그에게 더욱 제 선생은 각별할 수밖에 없었다. 1970년대 후반, 청계천 판자촌에서 쫓겨난 사람들과 함께 경기 시흥시(당시는 시흥군) 소래읍 신천리 허허벌판에 천막을 치고, 손수 구운 벽돌로 집을 만들어 철거이주민공동체 ‘복음자리 마을’을 만든 사람이 제 선생이었다.

1980년 가을 무렵 김부겸은 복음자리 마을을 찾았다. 감옥에서 나온 뒤였다. 서울대에서는 이미 제적이 됐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색하는 길이었다. 학생운동의 시기는 지나갔고, 사회에서 이 운동을 어떻게 지속해야 할지, 어떤 장(場)이 자신에게 맞을지 찾아야 할 때였다. 서울에서 몇 번이나 버스를 갈아타고 도착한 마을은 황량했다.

빈민운동이라는 개념도 제대로 서 있지 않던 그때, 그의 눈에 제 선생은 그들과 그냥 같이 사는 거였다. 그들을 어디로 인도한다거나 지휘하는 게 아니었다. 살던 곳에서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뿌리 뽑힌 사람들이 서로의 강한 유대와 연대를 통해 어려움을 극복하고 살아가자는 뜻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이었다.

“막연하게나마 운동이라는 것이 화려하지도 않고 당장 눈앞에서 성패가 드러나는 것도 아니구나 싶었어요. 제 선생을 보니까 인생을 걸고 한다는 걸 느낄 수가 있었어요.”

○ 상생의 길

1995년 7월 어느 날 저녁, 서울 중구 뉴국제호텔의 한 객실은 민주당 정객(政客) 20여 명의 긴 토론으로 긴장감이 팽팽했다. 1992년 대통령선거에서 패배한 뒤 정치를 떠나겠다고 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DJ)이 정계 복귀선언을 하면서 민주당은 흔들리고 있었다. 특히 재야에서 입당한 인물들이 그랬다. DJ가 만든다는 신당으로 갈 것이냐, 남을 것이냐. 이날 모인 20여 명 중 말석에는 김부겸이 있었다. 누구도 솔직한 속내를 드러내지 않아 이야기는 몇 시간째 겉돌았다. 그때 한 정치인이 좀 약삭빠른 소리를 했다. 그러자 제 선생이 탁자를 손으로 내리치며 호통을 쳤다.

“뭐 하는 개수작이야! 내 살아보니, 인생은 다 선택이야. 정치는 더 그래. 그 선택이라는 게 노하우는 없더라고. 그런데 나이 40이 넘으면 현실적인 선택을 하더라도 욕을 하지 마. 하지만 40 전에는 적어도 명분을 지켜야 하는 거라.”

일갈(一喝)이었다. 서른일곱 김부겸은 정신이 번쩍 났다. 내심 DJ의 동교동 그룹에서 새 당으로 가자고 하면 적당히 따라갈 생각이 있었던 터였다. ‘명분 없는 분당은 못 따라가겠다’고 DJ 앞에서 당당히 밝혔던 제 선생의 한마디에 그는 남았다.

그런 제 선생이 운명(殞命)을 얼마 앞두고 병석에서 그에게 던진 말은 하나의 화두였다. 뭔지 구체적으로 잡히지는 않지만 무겁게 다가왔던 그 말은 제 선생이 1998년 10월경 서강대에서 한 생전의 마지막 강연을 통해 절절하게 그의 가슴을 쳤다. 아무 기반도 없는 빈민운동을 하며 사람에 치이고, 정부에 밟히면서도 악착같이 싸워서 살아남았던 제 선생이 그에게 상생(相生)을 말한 것이었다.

이제는 투쟁해서, 상대편을 짓밟고 일어서서 나만이 성공하고 성장하며 누리는 정치는 없다는 것이었다. 역사는 대립과 투쟁을 통해 발전한다는 생각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깨달음이었다. 21세기에는 서로 같이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사람이 정치를 이끌어 가야만 한다는 제언이었다. 강렬했다.

“나는 그 말들이 죽음을 눈앞에 둔 제정구라는 사람이 받은 일종의 계시라고 생각해요. 가장 치열하게 운동을 했던 사람에게 찾아온 계시.”

그는 이 노선으로 인생의 승부를 걸겠다고 마음먹었다. 상대를 누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살림으로써 나 자신도 사는 길. 그런 인생을 살다 정치를 마감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물론 당내 강경파나 명분론자들로부터 많이도 욕을 먹었다. 우유부단하다고, 갈팡질팡한다고 말이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제 선생만큼 진지하게 삶을 살면서 자기희생 자기결단 자기수양을 겸비한 운동가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가 제시한 길이기 때문이었다.

○ 다시 고향으로

김부겸은 4월 19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대구 수성갑 지역구에 출마해 떨어졌다. 그가 3선을 했던 경기 군포시에서 나왔다면 4선도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제 선생은 초선이던 1995년 신당을 만든 DJ를 따라가지 않겠다고 한 뒤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의미 없이 재선 삼선을 하느니 초선으로 장렬히 전사하겠다.” 구질구질하게는 더 정치할 생각이 없다는 뜻이었을 게다. 김부겸도 그때 그렇게 말하던 제 선생의 심정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대구는 그의 고향이지만 그가 속한 민주통합당에는 불모(不毛)의 땅이다. 지난 총선에서 그가 싫지는 않지만 찍지는 못하겠다는 뜻을 내비치던 유권자들은 “ 왜 멀쩡한 사람이 그런 당에 있느냐”고 했단다. 그는 그런 마음을 조금씩 조금씩 바꿔 나가겠다고 했다. 올해 대통령선거에서 조금 더, 다음 지방선거 때는 그보다 조금 더. 제로섬게임이 아니라 상생의 정치를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그의 스승이자, 큰형님이자, 지휘관이자, 멘토인 제 선생이 지켜보신다는 마음가짐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후회는 없냐고 기자가 묻자 그는 “나이 50대에 뭘 후회할 게 있겠느냐”며 사람 좋게 웃었다. 선거를 치르면서 알게 모르게 도와준 분들 만나 인사하느라 여태 정신이 없다는 그는 걸려온 휴대전화에 “형, 부겸이야. 서울 왔어” 하며 세종로 사거리 횡단보도를 달려갔다. 뒷모습이 보기 좋았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김부겸#선거#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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