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꽃이라 하면 빨간 덩굴장미가 떠오른다. 고교 시절의 어느 날 아침 마주친 한 소녀. 그녀는 새하얀 여름 교복을 입고 등굣길에 서 있었다. 그 집 담장에 활짝 피어 있던 빨간 덩굴장미. 지금도 그때가 떠오르는 건 1970년대 남성 듀엣 ‘4월과 5월’이 부른 노래(‘장미’) 가사가 당시의 기억과 겹쳐있기 때문이다. ‘당신에게선 꽃내음이 나네요….’ 노래 가사처럼 그 5월의 신선한 공기를 가르며 다가왔던 장미 향기. 이후 나는 아무리 감미로운 장미향을 맡아도 쉽게 감탄을 할 수가 없었다. ○ 장미 향기는 5월 아침 나절에 맡아야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 꽃의 여왕 장미가 피었다. 요즘엔 연중 언제나 장미꽃을 살 수 있지만, 그래도 제철의 꽃만이 줄 수 있는 맛이 있다. 장미꽃 향기는 영상 15도 전후인 요맘때의 아침 나절에 가장 제대로 느낄 수 있다.
25도 이상을 오르내리는 한낮엔 장미꽃에 코를 갖다대지 마시길. 혹자의 표현에 따르면 ‘고구마 삶은 냄새’가 날 수도 있다. 글 서두에 얘기한 장미는 그렇지 않았지만, 우리 주변에 흔한 빨간 덩굴장미도 향기 감상에 부적합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많이 키우는 빨간 덩굴장미 품종인 ‘폴스 스칼릿 클라이머’는 추위나 병충해에는 비교적 강하지만 향기가 없다는 단점이 있다.
정원용으로 기르는 장미는 대부분 찔레에 얹혀산다(찔레 뿌리에 장미 가지를 접목). 원예용 장미 대부분은 외국에서 육성된 품종이다 보니 우리나라 기후나 토양에 적응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고유종 장미’인 찔레나 돌가시나무, 해당화 등을 대목으로 해 접을 붙인다. 간혹 접붙인 장미 품종이 겨울철 추위로 죽으면 그 밑에서 숨죽이고 있던 찔레가 가지를 올린다. 그래서 일반 주택이나 아파트단지 화단에서 빨간 장미 대신 하얀 찔레꽃이 피는 경우가 생긴다. 찔레는 장미보다 꽃도 작고 개화기도 짧지만, 병충해가 적고 우리네의 소박한 정서를 잘 표현해줘 정겹다. ○ 장미꽃과 함께 아스라이 사라질 봄날
아쉬운 것은 우리 주변에선 멋진 정원 장미 품종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공원이나 아파트 정원에 심겨 있는 수많은 장미들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대부분은 사실 정원용이 아닌 꽃꽂이용으로 키우는 절화용 장미다. 그러다 보니 꽃향기도 적고, 삐죽 자란 가지 맨 끝에 크게 꽃 한 송이가 피는 것이 전부다. 이후 한참 있다가 나온 곁눈에서 꽃이 조금씩 추가로 핀다. 진짜 정원 장미는 매력적인 향기를 가진 꽃을 반원형으로 수북하게 피운다. 최근 외국의 유명한 정원 장미 품종들이 많이 도입되는 중이고, 일부 대학과 국가 연구기관, 지자체의 농업기술원에서 품종 육성을 하고 있다는 점이 반가운 이유다.
장미는 일반적인 온대산 꽃나무와는 달리 올해 나온 가지에 꽃눈이 생긴다. 따라서 봄철에 가지치기를 해도 상관이 없다. 건강하게 잘 키우려면 햇빛과 비료가 충분해야 하고, 토양은 물 빠짐이 좋아야 한다. 검은별무늬병과 노균병, 진딧물이 대표적 병충해인데, 5∼6월에 농약을 치면 방제가 된다. 일반 가정에서는 병충해가 큰 문제가 되는 사례가 많지 않다. 진딧물은 건조하면 많이 생기므로 물을 잘 주면 발생을 줄일 수 있다. 특히 건조한 봄과 늦여름에는 물주기에 신경을 써 주자.
한편 정원 장미는 5월에 꽃이 핀 후 여름에 적절하게 관리하고 가지치기를 해 주면 가을에 다시 한 번 꽃을 볼 수 있다. 이것도 정원 장미의 큰 매력 중 하나다.
떨어지는 장미 꽃잎들과 함께 올봄도 아스라이 사라질 것이다. 글을 쓰고 보니 오랜만에 가수 김윤아의 ‘봄날은 간다’를 듣고 싶어진다. ‘봄날은 가네 무심히도/꽃잎은 지네 바람에/머물 수 없던 아름다운 사람들….’ 하지만 머물지 않는 꽃의 무상함보다는 다가올 여름의 녹음과 풍성한 여름 꽃에 대한 기다림이 필요한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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