탭댄스 영화의 전설 ‘톱 해트’ 뮤지컬로 부활

英 웨스트엔드서 막올라…객석 92% 차 장기공연 채비
공동제작자 윤석화씨 “아시아판권 보장받아”

뮤지컬 ‘톱 해트’ 중 ‘치크 투 치크’ 2인무를 펼치고 있는 남녀 주연배우 톰 체임버스와 서머스트랠런. 영국에서 활동 중인 윤석화 씨가 공동 제작자로 참여한 이 작품은 감미로운 멜로디와 감탄스러운 춤사위로 벌써부터 많은 관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윤석화 씨 제공

퀴즈 1. 미국 영화계의 전설적 댄싱 커플인 프레드 애스테어와 진저 로저스가 함께 출연한 영화 10편 중 최대 흥행작은?

퀴즈 2. ‘헤븐, 아임 인 헤븐(Heaven, I＇m in heaven…)으로 시작하는 재즈의 명곡 ‘치크 투 치크(Cheek to Cheek)’는 언제 처음 발표됐나?

전혀 다른 퀴즈처럼 보이지만 정답은 하나에 모인다. 1935년에 제작된 흑백영화 ‘톱 해트(Top Hat·중산모)’이다. 이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애스테어와 로저스가 ‘치크 투 치크’의 멜로디에 맞춰 춤추는 장면은 봤을 확률이 높다. 그만큼 영화사에 남을 명장면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발표된 지 77년 만에 뮤지컬로 제작됐다. 지난달 19일부터 웨스트엔드 올드위치 극장(1200석)에서 프리뷰 공연에 들어갔고 10일 정식 개막하는 ‘톱 해트’다. 젊은 제작자 케네스 왁스가 제작 기간만 8년을 쏟아 부은 이 작품의 공동 제작자 5명 중 한 명이 배우 윤석화 씨다. 지난해 ‘여행의 끝(Jouney＇s End)’이란 연극을 선보이며 한국인 최초의 웨스트엔드 제작자가 된 윤 씨의 첫 뮤지컬 제작 참여작이다.

윤 씨는 “뮤지컬의 탭댄스 안무가 원작 영화 이상으로 좋아 아시아지역 판권을 보장받는 조건으로 제작에 합류했다. 한국 공연에도 안무가 빌 디머 등 제작진을 적극 참여시키고 송일국이나 박건형 같은 배우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해 국내 관객들에게도 춤의 진수를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원작 영화는 주인공 남녀가 오해와 억측을 뚫고 사랑의 결실을 이룬다는 스크루볼 코미디 음악극에 가깝다. 어빙 벌린이 작곡한 노래 중 다섯 곡만 썼다. 그러나 뮤지컬은 노래를 16곡으로 늘렸다. 첫 장면에 등장하는 ‘푸팅 온 더 리츠’는 벌린이 1929년 발표한 또 다른 명곡. 애스테어 주연의 영화 ‘블루 스카이스’(1946년)에서 이 곡에 맞춰 춘 기막힌 탭댄스 군무 장면이 유명하다. 뮤지컬에선 이를 미국 최고 탭댄서인 주인공 제리 트래버스(톰 체임버스)의 브로드웨이 공연 장면으로 녹여 넣었다.

제리는 원정공연차 영국을 방문했다가 호텔에서 데일 트레몽(서머 스트랠런)이란 영국 아가씨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데일 역시 제리가 싫지 않지만 그를 유부남으로 오해하면서 상황이 꼬여간다. 원작 영화의 탭댄스 군무장면에 흘러나오는 ‘톱 해트, 화이트 타이 앤드 테일스’와 탱고 군무 장면에 흘러나오는 ‘더 피콜리노’ 등 귀에 익숙한 멜로디와 화려한 춤사위가 관객을 사로잡는다. 제리와 데일이 ‘치크 투 치크’ 노래에 맞춰 추는 2인무 장면에선 객석이 숨죽은 듯한 침묵에 빠져들 정도로 높은 집중력을 끌어냈다.

주역 남녀 배우가 화려한 춤을 끌고 간다면 조연 배우들은 탄탄한 드라마를 끌고 나간다. 치맛자락을 날리는 우아한 의상과 위트 넘치는 무대연출, 늘씬한 춤사위를 선보이는 앙상블의 군무도 일품이다.

마침 애스테어와 탭댄스의 쌍벽으로 불렸던 진 켈리 주연의 영화(1952년 작)가 원작인 뮤지컬 ‘싱잉 인 더 레인’도 팰리스 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윤 씨는 “웨스트엔드는 지금 복고풍 탭댄스 뮤지컬의 향수에 푹 젖어 있다. 톱 해트의 유료객석 점유율이 92%를 넘기 때문에 최소한 1년 이상 장기 공연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런던=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