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커버스토리]성큼성큼 걷지 말고 야금야금 오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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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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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인파 늘어나는 봄, 등산 상식 이 정도는 알고 떠나자

“여기가 도봉산에서 전망이 가장 좋은 곳 중 하나예요. 경치가 아주 괜찮죠?” 40년 경력의 산악인 윤대표 대한산악연맹 등산교육원 교수(가운데)가 이상훈(왼쪽), 윤재연 씨(오른쪽)와 함께 19일 도봉산 포대능선 위에 섰다. 하늘은 맑았지만 바람이 무척이나 차가웠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여기가 도봉산에서 전망이 가장 좋은 곳 중 하나예요. 경치가 아주 괜찮죠?” 40년 경력의 산악인 윤대표 대한산악연맹 등산교육원 교수(가운데)가 이상훈(왼쪽), 윤재연 씨(오른쪽)와 함께 19일 도봉산 포대능선 위에 섰다. 하늘은 맑았지만 바람이 무척이나 차가웠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겨울은 사람에게나, 자연에게나 모두 가혹하다. 그 고통의 크기만큼 우리는 더 절실하게 봄을 기다린다. 추위가 가시고 따스한 봄바람이 불어올 무렵, 나무에 물이 오르듯 몸과 마음에 생기가 돌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지지 않는가. 이런 이유로 평소 야외활동을 즐겨 하지 않던 사람들도 봄이면 산이며 들로 나선다.

그러나 봄나들이에는 뜻밖의 위험요소들이 숨어 있다. 평소 운동을 잘 안 하던 사람은 몸에 무리가 가기 쉽고, 산과 들에는 아직도 겨울의 그림자가 짙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 주말섹션 ‘O₂’가 산악 전문가 및 대학생 두 사람과 함께 ‘국민 스포츠’인 봄철 등산의 요령 및 주의사항을 짚어봤다. 기본적인 등산 요령은 트레킹에도 응용할 수 있다.

○ 40년 베테랑 보폭이 초보보다 더 좁아

“보폭이 너무 커. ‘야금야금’ 걸으세요.”

19일 경기 의정부시 원도봉 계곡을 오르는 길. 윤대표(尹大杓·60) 대한산악연맹 등산교육원 교수가 거듭 강조했다. 그는 산악 전문가들이 ‘대한민국 대표’로 꼽는 산악인 중의 한 명이다. 한국인 최초로 유럽 알프스 3대 북벽(아이거, 마터호른, 그랑드조라스의 북쪽 벽)을 등반(1979∼1980년)했으며, 1986년에는 K2 원정 등반대장을 맡았다. 이후 자유등반(안전을 위해 인공적인 확보물을 설치는 하되 잡지는 않고 암벽을 오르는 것)이란 개념을 도입해 국내 산악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윤 교수 앞에서는 두 젊은이가 걷고 있다. 윤재연 씨(22·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4학년)와 이상훈 씨(24·동국대 광고홍보학과 3학년). 두 사람은 젊음의 패기를 나타내듯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긴다. 산을 오르는 속도도 빠르다. 윤 교수의 ‘잔소리’가 또 이어진다.

“보폭이 너무 넓으면 체력 소모가 커지고 균형 잡기도 어려워져요. 바위에서는 미끄러질 수도 있고요. 보폭을 어깨 너비로 줄이세요. 속도도 오버페이스를 하지 말고 자기 체력에 맞춰야 해요. 여유 체력이 있어야 비상시에 대비할 수 있지. 서두르지 말고, 스키나 스케이트를 타듯 어깨를 살랑살랑 좌우로 흔들며 걸어봐요. 반동을 이용해 몸을 밀어주면 힘이 훨씬 덜 들어요.”

히말라야에만 5번을 다녀온 베테랑이지만, 윤 교수의 보폭은 학생들의 그것보다 훨씬 좁다. 비탈을 올라가는 속도에도 여유가 있다. 수십 년 세월 동안 몸으로 얻은 교훈이 반영돼 있는 것이다.

“우선 걷는 법부터 천천히 익혀 봅시다. 등산이나 트레킹의 가장 기본이죠. 요즘엔 등산 좀 했다는 사람들도 산에서 걷는 법을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있더군요. 산에선 높이 올라가는 것만큼 어떻게 올라가는지가 중요합니다.”

윤 교수는 프랑스식 등반기술(French Technique) 3가지를 가르쳐줬다(오른쪽 그래픽 참조).더불어 그는 경사면을 올라갈 때 뒷발 무릎을 쭉쭉 펴줄 것을 주문했다. 무릎을 구부린 상태로 비탈길을 올라가면 근육에 힘이 더 들고, 균형 잡는 것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의 말대로 하자 예전보다 힘이 훨씬 적게 드는 것이 느껴졌다.

“체력이 모자라는 사람은 기술로 커버해야 해요. 기술은 여러 가지를 익혀 사용할수록 좋습니다. 야구에서 투수가 다양한 구질을 구사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 산속은 아직도 겨울

목적지인 포대능선까지 가는 길의 절반 정도를 소화했을 때, 등산로 옆으로 하얗게 얼어붙어 있는 폭포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산속은 아직도 겨울이었다.

취재팀은 산에 오르기 전 이 씨에게 운동화와 청바지, 면 티셔츠 등 평상 복장을 해 줄 것을 주문했다. 평상복으로 산을 오를 때 어떤 문제점이 생길 수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체력이 좋은 이 씨지만(7년 정도 웨이트트레이닝을 했다) 상당히 불편한 듯했다. “신발 밑창에 요철이 없어서 자꾸 미끄러질 것 같아요. 지금 뒤꿈치를 들고 걸어가고 있어요. 그래야 미끄러질 때 빨리 반응할 수 있거든요. 다리 쪽은 청바지가 자꾸 달라붙어서 불편해요. 다리를 들어 올리기가 힘드네요.”

그래도 한창때의 체력 덕분인지 아직까지는 견딜 만한 것 같았다. 계곡 안 빙판에 섰을 때 등산화를 신은 일행에 비해 몸을 제대로 가누기 어려워했지만 말이다. 봄철 산에는 아직도 얼음이 녹지 않은 곳이 많다. 등산화를 신었더라도 조심해야 한다.

일행은 2시간 정도 걸어 망월사(望月寺)에 도착했다. 이 절은 신라 선덕여왕 8년(639년)에 창건됐다. 월성(月城·경주) 쪽을 바라보고 있다고 해서, 또는 인근의 토끼바위가 달 모양 바위를 바라보고 있다고 해서 지금의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 있다.

시간이 흐르고 고도가 높아질수록 온도는 계속 낮아졌다. 출발 때(오후 1시 15분) 15.8도였던 기온이 망월사에선 10.5도밖에 되지 않았다. 산에서는 보통 고도가 100m 높아질 때마다 기온이 0.65도씩 떨어진다. 하지만 망월사에서는 그다지 춥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계속된 운동으로 몸이 덥혀진 데다 햇볕이 좋고 바람이 불지 않아서였다.

그러나 포대능선(해발 약 700m)에 올라서자 이야기가 달라졌다.

○ 몸을 항상 마른 상태로 유지해야


능선 위의 온도는 11.1도였지만, 추위가 뼛속까지 스며드는 듯했다. 바람이 무척이나 세게 불어 바람을 등지고 서 있어야 했다(체감온도는 바람이 초속 1m 강해질 때마다 1.6도씩 떨어진다). 윤 교수가 모자를 쓰더니 고어텍스 재킷도 꺼내 입었다. “유럽 속담에 손발이 시리면 모자를 쓰라는 말이 있어요.” 그 말을 듣고는 모두가 모자를 썼다.

순간 웹툰 ‘PEAK’의 첫 회가 떠올랐다. 1983년 4월 초 어느 날, 따스한 봄날을 즐기는 시민들 사이로 멀리 북한산 인수봉이 보인다. 갑자기 닥친 기상악화로 조난당한 대학생들. 결국 그들 중 7명은 살아서 산을 내려오지 못했다. 이 사건은 그해 경찰이 북한산과 도봉산에 산악구조대를 창설하는 계기가 됐다.
▼ 영상 11도에도 덜덜… 대충 입었다간 저체온증 위험 ▼

당시 동아일보 기사(1983년 4월 4일자)는 ‘죽음의 암벽 8백3m. 어둠과 함께 휘몰아친 추위와 허기 공포 속에 스러져간 일곱 생명을 삼킨 인수봉은 4일 아침 차가운 등을 내보이며 끝내 말이 없었다. (중략) 빤히 바라뵈는 도심의 불빛을 한스러이 지켜보다 스러져간 산사나이들…’이라고 이 사건을 묘사했다.

원래 이 씨가 맡은 ‘임무’ 중에는 평상복을 입고 능선 위의 추위를 느껴보는 것도 있었다. 그런데 이 씨가 추위를 느끼기도 전에 엉뚱한 곳에서 ‘샘플’이 나왔다. 동행한 박희창 기자가 사시나무 떨듯 떨기 시작한 것. “너무 춥네요. 바람이 그대로 다 들어오는 것 같아요.” 무슨 옷을 입었는지 살펴보니 속옷 대신 입은 쿨맥스 반팔 셔츠 위에 골프용 티셔츠를 입고, 마지막으로 트레이닝복 상의를 걸치고 있었다. 그냥 두고 보기가 딱할 지경이었다.

“봄철 산행에서 특히 조심해야 할 게 저체온증입니다. 박 기자는 옷만 더 입으면 괜찮겠지만, 저체온증은 매우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어요. 전문 등반가들도 저체온증이 생길 기미가 있으면 바로 철수를 합니다. 제가 알프스 아이거에 갔을 때 아일랜드 등반팀이 비바크를 하다 옷과 장비가 다 젖어버리자 등반을 포기한 일도 있었지요.”

윤 교수의 설명을 들으니 저체온증의 심각성을 더 잘 알 수 있었다. 실제로 저체온증은 계절을 막론하고 산에서 가장 많은 사망 사고를 일으킨다. 중요한 것은 ‘계절을 막론하고’란 대목. 심지어 여름에도 비가 오거나 기온이 상대적으로 떨어졌을 때 저체온증에 걸리는 사람이 나온다. 특히 일교차가 심한 봄철에는 저체온증 위험이 더 높아진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날씨가 따뜻해졌다고 방심해 간편한 옷만 입는다(‘저체온증’ 상자 기사 참조).

저체온증은 산행 복장이 미비하거나 체력이 떨어졌을 때 생기기 쉽다. 윤 교수는 초봄엔 옷을 최소한 3겹은 입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첫 번째는 살갗에 닿는 옷으로 보온 기능이 있고 땀이 잘 마르는 울이나 폴리에스테르 재질이 좋다. 쿨맥스는 빨리 마르긴 하지만 보온 기능이 없다. 두 번째는 폴라플리스 또는 다운 재킷 등 ‘보온재’다. 3번째는 거센 바람과 갑작스러운 비를 막아주는 방풍 방수 재킷. 가장 이상적인 것은 방수와 방풍에 더해 투습(습기 배출) 기능까지 가진 고어텍스 같은 소재의 재킷이다. 우의나 단순한 바람막이 같은 옷은 방수, 방풍이 잘되긴 하지만 땀과 열기를 배출하지 못해 결국 체온을 떨어뜨릴 수 있다.

“어떤 옷을 입든지 가장 중요한 원칙은 몸을 마른 상태로 유지하는 거예요. 몸이 젖어 있으면 행동이 불편해지고 체온을 평상시보다 훨씬 빨리 잃게 되니까요.”

윤 교수는 여러 겹 입은 옷을 상황에 따라 입었다 벗었다 하는 타이밍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등산 중 쉴 때는 몸이 추위를 느끼기 전에 옷을 추가로 입어야 저체온증 위험을 줄일 수 있다.

전문가들은 등산을 할 때 면 소재 옷은 웬만하면 피하는 게 좋다고 입을 모은다. 면은 땀을 잘 흡수하지만 잘 마르지 않는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추울 때 면 소재 옷을 입는 것은 얼음을 달고 다니는 것과 같다”란 말이 있을 정도.

이와 관련해 얼마 전 중견 연예인 모 씨의 사연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가 백화점에서 최고급 등산복을 사 입고 산에 갔는데, 계속해서 몸을 떨었다고 한다. ‘값이 싼’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도 추위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주변 사람들이 이상해서 살펴보니 그는 고급 등산복 안에 푹 젖은 면 내복을 입고 있더란다.

박 기자는 일행이 여분으로 준비해 온 옷을 입고 기운을 차렸다. 끝까지 사양하다 옷을 갈아입은 뒤 “살 것 같다. 옷을 더 입기 전과 후가 너무 다르다”며 무척이나 행복한 표정을 지어 다른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그 와중에 “체온이 급속히 떨어지는 걸 느꼈다”고 할 정도로 추위를 느끼기 시작한 이 씨도 등산복으로 갈아입었다.

○ 후들거리는 다리 잡아준 스틱


하산길에 일행은 스틱 쓰는 법을 집중적으로 배웠다. 능선을 올라올 때 이미 스틱 잡는 법 등 간단한 요령을 배운 터였다(아래 첨부 사진 참조).

스틱은 특히 경사면을 내려올 때 유용하다. 몸을 지지하는 포인트를 늘려줘 균형을 잡는 데 도움을 주고, 부상 위험을 줄여준다.

서울 도봉경찰서 산악구조대가 지난해 처리한 80여 건의 구조 활동 중 거의 대부분이 하산길에 등산객들이 넘어지거나, 실족하거나, 미끄러져 다친 사고였다. 김진철 도봉경찰서 산악구조대 대장은 “산을 내려올 때는 등산객의 체력이 고갈되고 근육이 풀려 있는 경우가 많아 사고가 생기기 쉽다”며 “하산할 때는 상체와 지면의 거리가 멀고, 넘어지면 몸이 앞으로 던져져 부상의 정도가 산을 올라갈 때보다 커진다” 설명했다.

그는 “스틱은 체력 안배와 부상 방지에 큰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산행에 익숙하지 않은 윤 씨가 끝까지 자기 힘으로 등반을 마칠 수 있게 도와준 게 바로 스틱이었다. 그녀는 “하산 때 다리가 완전 후들거려 그냥은 내려오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한 가지! 산을 내려갈 때는 몸보다 스틱을 먼저 움직여야 한다. 스틱으로 체중을 지지할 곳을 확보한 뒤 몸을 움직이라는 얘기다. 그리고 하산 때는 스틱을 잡는 방법도 다르게 해야 한다. 손바닥이 스틱 손잡이 윗부분을 덮듯이 잡는 게 정석이다. 마침 일행의 앞으로 지나가는 50대 여성이 정석대로 스틱을 잡고 있는 게 보였다. 대한민국 등산객들의 수준이 꽤 높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산 도중 윤 씨가 몇 번이나 신발 끈을 고쳐 맸다. 올라갈 때는 괜찮았는데, 내려올 때는 발이 자꾸 앞으로 쏠려 힘든 것 같다고 했다. 윤 교수는 “산을 내려올 때는 미리 등산화 끈을 조금 더 조여 놓는 게 좋다”고 설명했다.

“산에 올랐다 내려오는 것을 권력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높이 올라갈수록 내려오는 게 더 힘들어요. 산에선 항상 겸손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 안전을 위해 더 알아두면 좋은 정보

● 산에 가기 전에 반드시 일기예보를 보라.

● 항상 여분의 옷, 특히 재킷 1벌은 반드시 배낭에 넣어라. 산에서는 미기후 현상이 있어 날씨 변화가 무척 심하다. 환절기에는 밸러클라버(머리와 얼굴을 완전히 덮어씌우고 눈만 나오게 만든 방한용 모자)와 버프를 함께 준비하는 것도 좋다. 야간에 길을 잃었을 때는 헤드랜턴이 유용하다.

● 체력 유지를 위해 바로 에너지원으로 전환되는 간식(곡물을 넣은 초콜릿 등)을 주기적으로 먹으면 좋다.

● 배낭은 최소한 20L 이상의 것을 챙겨라 충분한 수납공간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이고 넘어졌을 때 허리부상이나 뇌진탕을 막아주는 ‘완충제’역할을 해줄 수도 있다. 한편 어떤 물건이든 배낭 바깥에 매다는 것은 될 수 있으면 피할 것. 걸을때 배낭이 좌우로 움직여 체력소모가 커진다.  
#등산#커버스토리#O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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