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김 모락모락, 하얀 쌀밥같이… 따뜻하다…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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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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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장석남 지음/116쪽·8000원·문학동네
◇먼 곳/문태준 지음/100쪽·8000원·창비


《중견 시인 장석남(47), 문태준(42)이 나란히 신작 시집을 내놓았다. 각각 일곱 번째, 다섯 번째 시집. 20년 내외의 고단한 시업(詩業)을 지고 가는 이들의 시어들은 한층 절제되고 응축됐다. 따스하고 담백하다. 적막한 겨울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쌀밥과 정갈한 반찬 몇 가지를 정성스레 올려놓은 소박한 밥상을 받은 것 같다.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난다.》
장석남 시인은 시집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에 2년 전 겨울 머물렀던 백담사 만해마을의 풍경들을 주로 담았다. 올겨울도 시인은 그곳에서 보냈다. “눈이 많이 오고, 바람이 많이 분다. 굉장히 황량한 곳”이라고 그는 만해마을의 겨울을 떠올렸다.

‘눈 내리는 밤/눈이 내리는 밤//다만 눈이 쉬 그치지 않기만을/높은 소망처럼 기원해보는//눈 내리는 밤/물음이 내려오는 밤/서성이는 밤’(‘하문(下問)·2’ 일부)

고즈넉한 겨울밤, 투두둑 내리는 함박눈은 시인의 시상(詩想)을 깊고 평안하게 만든다. 적막을 깨뜨리는 작은 소리에서도 시는 태어났다. ‘한밤/물미역 씻는 소리는/어느 푸른 동공(瞳孔)을 돌아나온 메아리 같네/간장에 설탕을 넣고 젓는 소리는 또/그 메아리를 따라나온 젖먹이 같네’(시 ‘물미역 씻던 손’ 일부)

시인은 서두르지 않는다. 겨울밤, 눈, 민들레, 담장, 돌을 관조하며 깊은 사유를 하고, 이를 차분히 적어 내려간다. “장석남 시인의 시세계를 관통하는 미묘하고도 깊은 서정의 실체를 보다 응집적으로 표현해본다면 그것은 ‘호젓함’이다.” 문학평론가 엄경희의 해설이다. 호젓한 시인의 걸음 뒤로 남은 발자국이 책장 곳곳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문태준 시인은 4년 만에 시집 ‘먼 곳’을 냈다. 시집을 꿰뚫는 정서를 묻자 그는 “먼 곳이나 영원, 이런 것들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시를) 추렸다”고 말한다.

‘어릴 때에 죽은 새를 산에 묻어준 적이 있다/세월은 흘러 새의 무덤 위로 풀이 돋고 나무가 자랐다/그 자란 나뭇가지에 조그마한 새가 울고 있다/망망(茫茫)하다/날개를 접어 고이 묻어주었던 그 새임에 틀림이 없다.’(시 ‘영원(永遠)’ 전문)

영원에 대한 사색은 사물들에 대한 탐색으로 이어진다. 대표적으로는 ‘돌’이다. “우리가 거듭해서 생을 태어나고, 끊임없는 변화와 이별 속에서 멸하는 운명에 있고, 그런 것을 인식하는 과정이 삶”이라 말하는 시인은 단단한 돌에서 운명과 소멸, 그리고 자신을 본다. ‘어제보다 조금 더 닳아진 돌/아래로 안쪽으로 내려서는 돌/몸속에 손이 하나 더 있어/몸속 조막손이 나와/눈을 감겨놓고/귀를 닫아놓은 돌/…/내 다시 와 내일을 산다면/그때는 더 작아졌을 돌’(시 ‘돌과의 사귐’ 일부)

앞선 그의 시들처럼 불교적 사유가 언어 사이로 정갈하게 자리 잡고 있다. “간결하고 선명한 이미지를 갖추기 위해 노력했다”고 그는 말했다.

장석남 문태준 시인은 얼마 전 서울 홍익대 앞에서 회합했다. 최근 장편을 펴낸 소설가 김연수와 정끝별, 나희덕 시인 등이 함께 자리했다. ‘시집에 대해 서로 무슨 말을 나눴나’라고 묻자 장 시인은 호탕하게 웃었다. “만나면 문학 얘기 안 해요. 술만 마시는 거지 뭐∼.”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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