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철-이목을 개인전, 구원해 준 얼굴…구원 받은 얼굴

  • Array
  • 입력 2012년 2월 21일 03시 00분


코멘트
재프랑스 화가 권순철 씨의 ‘영혼의 빛’전에 나온 ‘얼굴’. 작가는 심오한 얼굴, 고뇌 어린 표정을 통해 인간의 무한한 위엄을 길어올린다. 가까이에서 바라보면 어두운 색채의 물감을 층층이 쌓아올린 그의 작품은 마치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 추상화처럼 다가온다. 가나아트센터 제공
재프랑스 화가 권순철 씨의 ‘영혼의 빛’전에 나온 ‘얼굴’. 작가는 심오한 얼굴, 고뇌 어린 표정을 통해 인간의 무한한 위엄을 길어올린다. 가까이에서 바라보면 어두운 색채의 물감을 층층이 쌓아올린 그의 작품은 마치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 추상화처럼 다가온다. 가나아트센터 제공
거친 붓질로 캔버스에 짙은 색 물감을 두껍게 쌓아 올린 얼굴마다 굴곡진 세월의 흔적이 새겨져 있다. 꽉 다문 입과 고뇌 어린 눈빛을 담은 무거운 표정들. 그들이 짊어진 삶의 무게에 대한 애잔한 연민이 생겨난다.(권순철의 ‘영혼의 빛’전)

또 다른 얼굴이 있다. 파스텔 톤 캔버스에 수줍은 미소부터 호탕한 웃음까지 다른 색깔의 웃는 표정이 담겨 있다. 낙서처럼 자유롭고 경쾌한 선으로 그려낸 만인의 미소가 어우러지며 세상을 밝힌다.(이목을의 ‘스마일’전)

얼굴을 주제로 삼은 두 전시를 만났다. 재프랑스 화가 권순철 씨(68)의 개인전은 인생 역정이 오롯이 녹아든 인물화로 코끝 찡한 울림을 남긴다(3월 4일까지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02-720-1020). 극사실주의 회화로 유명한 이목을 씨(51)는 웃는 얼굴을 담은 150여 점으로 행복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전시를 꾸몄다(3월 19일까지 경기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 암웨이갤러리·031-786-1199).

극과 극으로 보이지만 두 전시에선 녹록지 않은 세상살이에서 풀 죽거나 상처 난 마음을 어루만지는, 진심 어린 위로와 힘이 느껴진다. 대상과 표정은 달라도 모든 얼굴에 작가의 자화상이 겹쳐진다.

○ 빛을 품은 얼굴

40여 년간 권순철 씨는 개인의 삶과 시대정신을 보여주는 창구로 얼굴에 집중해 왔다. 1988년 프랑스 파리에 터 잡은 뒤 정체성을 깊게 고민해 온 화가는 한국인의 얼굴을 통해 한국인의 정서를 짙게 드러냈다.

2004년 이후 8년 만에 열린 이번 전시에선 경동시장에서 장사하는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 작가의 자화상과 함께 극한의 고통을 담담히 감내한 예수의 얼굴이 전면으로 부각됐다. 예수 시리즈는 넋과 한으로 응축된 우리의 감성에서 한 걸음 나아가 정신세계와 신의 영역으로 확장된 그의 관심을 보여준다.

신작에선 추상적 표현이 더 강해졌다. 가까이서 보면 물감 덩어리를 툭툭 쌓아올린 듯한데 멀리서 보면 생의 어둠을 치밀하게 바라본 얼굴에서 영적인 깊이가 느껴진다. 희로애락을 증언하는 심오하고 일그러진 표정에서 한 줄기 빛이 스며 나온다. 얼굴이야말로 치열했던 삶의 정직한 보고서란 점에서 신과 인간의 차별을 두지 않은 것일까. 평범한 얼굴도 ‘큰 바위 얼굴’인 양 묵직한 무게와 존재감을 담아낸 점이 인상적이다.

○ 희망을 품은 얼굴

경기 성남시 분당의 암웨이갤러리에서 열리는 이목을 씨의 ‘스마일’전은 웃는 표정을 단
순한 선으로 표현한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다. 성남=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경기 성남시 분당의 암웨이갤러리에서 열리는 이목을 씨의 ‘스마일’전은 웃는 표정을 단 순한 선으로 표현한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다. 성남=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덧칠 없이 눈과 입을 단순한 선으로 그려낸 미소가 전시장을 채우고 있다. 가장 깊은 절망의 고비에서 탄생한 이목을 씨의 ‘스마일’ 연작이다.

중학 시절 왼쪽 눈의 시력을 잃은 그는 한쪽 눈으로 사과와 대추 등을 실제보다 더 사실적으로 그리며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2년 전 눈을 더 혹사하면 남은 시력마저 잃을 수 있다는 의사의 ‘최후통첩’을 듣게 된다. 극사실화에서 손을 놓고 늘 실명 위기를 걱정하면서 그가 찾아낸 출구는 긍정의 웃음. 그는 “삶이 무거울수록 삶의 뒷전으로 내몰았던 웃음을 되찾는 것이야말로 힘든 삶을 지탱할 수 있는 방안이 아닐까”라고 말한다.

한 번에 10분 이상 작업을 계속할 수 없다는 화가. 역경 속에서 빚어낸 웃음이라서 울림이 크다. 대작에선 달관의 경지가 느껴지고, 한데 모여 큰 웃음의 합창을 이룬 작은 그림들은 보는 재미가 있다. 사람은 혼자가 아니며, 어울려 살아야 한다는 공존의 메시지를 전하는 작업이다. “행복하기 때문에 웃는 것이 아니라, 웃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말을 되새기게 하는 전시에서 안경 쓴 화가 자신의 미소를 찾아보는 것도 흥미롭다.

저마다 다른 표정과 느낌으로 각기 삶에서 분투하는 얼굴을 비춘 두 전시는 웃음도 눈물도 잃어버린 현대인의 메마른 가슴을 단숨에 출렁이게 한다. 가장 단순한 얼굴에 가장 곡진한 사연을 담아낸 작품들이 고뇌 속에 존재하는 삶의 의미를, 절망을 이겨내는 웃음의 힘을 일깨운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