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의 열정에 반하고 네덜란드의 냉정에 꽂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14일 03시 00분


■ 한국과의 수교 50주년 ‘멕시코 예술의 진수’전 - ‘네덜란드 마술적 사실주의’전

멕시코 루피노 타마요의 ’Iron Cross’(왼쪽 위), 네덜란드 빔 스휘마허르의 작품(왼쪽 아래), 네덜란드 카럴 빌링크의 소녀 초상화.(오른쪽), 20세기 멕시코 예술의 진수’전에 선보인 화가 로돌포 모랄레스(1925∼2001)의 ‘Beyond The Silence’. 색채와 형태에서 원시적이고 강한 생명력이 느껴지는 이 그림은 오악사카 지역에서 생겨난 멕시코 마술적 사실주의 계열의 수작으로 평가된다(맨 아래). 숙명여대 박물관 제공
멕시코 루피노 타마요의 ’Iron Cross’(왼쪽 위), 네덜란드 빔 스휘마허르의 작품(왼쪽 아래), 네덜란드 카럴 빌링크의 소녀 초상화.(오른쪽), 20세기 멕시코 예술의 진수’전에 선보인 화가 로돌포 모랄레스(1925∼2001)의 ‘Beyond The Silence’. 색채와 형태에서 원시적이고 강한 생명력이 느껴지는 이 그림은 오악사카 지역에서 생겨난 멕시코 마술적 사실주의 계열의 수작으로 평가된다(맨 아래). 숙명여대 박물관 제공
《바닥에 누운 깡마른 남자 옆에 세 여자가 모여 있다. 예수의 죽음을 상징하는 도상을 재해석한 그림에서 원시적이고 강한 생명력이 넘쳐난다. 숙명여대 박물관에서 3월 31일까지 열리는 ‘20세기 멕시코 예술의 진수’전에 소개된 로돌포 모랄레스의 작품이다. 민속적 색채가 담긴 그림은 멕시코의 마술적 사실주의 세계로 관객을 안내한다. 이 전시는 20세기 초부터 현대까지 멕시코 미술의 흐름을 소개하는 자리다. 02-710-9134

이와 비교 감상하면 흥미로운 전시가 있다. 서울대 미술관에서 4월 12일까지 열리는 ‘네덜란드의 마술적 사실주의’전이다. 1920∼30년대 사진적 이미지와 허구의 소재를 혼합한 네덜란드 미술운동을 조명한 전시다. 출품작 중 금발 소녀의 초상화는 인물을 정밀하게 재현하고 상상 속 배경을 뒤섞은 카럴 빌링크의 1945년 작품이다. 02-880-9504

구상미술의 깊은 맛을 느끼게 하는 두 전시는 각기 한국과의 수교 50주년을 기념해 마련됐다. 일반엔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양국 미술의 역사를 되짚게 하고, 미술애호가에겐 ‘마술적 사실주의’가 토양에 따라 어떻게 다른 꽃을 피웠는지 관찰해볼 기회다.》
○ 차분하고 은은한 사실주의

유럽 구상미술의 소중한 자산으로 평가받는 네덜란드 마술적 사실주의는 시각적 사실성, 환상적 공간에 대한 탐구가 특징이다. 초현실주의가 불가능한 상황을 다룬다면, 마술적 사실주의는 가능성은 있으나 개연성은 없는 이미지를 탐구한다.

네덜란드 건축가 렘 콜하스가 설계한 서울대 미술관에 선보인 전시는 마술적 사실주의 초기부터 최근까지 회화와 조각 71점을 초상, 정물, 풍경으로 나누어 소개한다. 전부 네덜란드의 국제적 금융기업 ING은행의 소장품이다. 카럴 빌링크, 빔 스휘마허르, 딕 켓 등 1세대 작가와 그 뒤를 이어 현대 구상회화를 대표하는 필립 아케르만, 베르나르딘 스테른헤임, 프란스 스튀르만의 작품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세밀한 붓질, 정교한 테크닉, 매끈하게 처리된 색조가 어우러져 현실 뒤에 숨은 세상을 차분하고 은은하게 드러낸 작업이다.

우울하고 소외된 느낌의 인물화, 엄정한 화면구성의 정물과 풍경은 네덜란드의 오랜 전통에 기반을 둔 현대적 구상회화의 매력을 발산한다. 오진이 학예사는 “사실적이지만 구현될 수 없는 이미지 안에 자연스럽지 않은 기이함이 녹아 있다”며 “네덜란드의 마술적 사실주의가 오늘까지 지속적 생명력을 갖는 이유를 보여주는 전시”라고 설명했다.

○ 뜨겁고 열정적 사실주의

숙명여대 미술관에선 디에고 리베라, 루피노 타마요, 코델리아 우르에타 등 멕시코 대표작가의 작품 45점을 볼 수 있다. 1920∼50년대 벽화운동을 비롯해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초현실주의, 고대문명을 현대화한 양식, 기하학적 추상 등을 고루 선보였다. 홍경아 큐레이터는 “멕시코 기획재정부의 소장품으로 보험가만 해도 약 100억 원에 이르는 작품들”이라며 “다문화와 문화다양성이 화두인 시대에 우리가 알지 못한 멕시코 문화를 접할 기회”라고 말했다.

추상과 구상, 전통과 혁신이 교묘하게 결합한 멕시코 현대미술엔 고대문명의 환상적 요소가 짙게 배어 있다. 이 중 오악사카 주에서 출발한 지역주의 미술운동이 눈길을 끈다. 벽화운동이 쇠퇴한 뒤 미국미술을 추종한 세력과 별도로 일부 화가는 멕시코 민족주의를 가미한 마술적 사실주의를 개척한 것이다. 신화와 지역의 문화적 풍요로움을 결합한 작품은 온전히 멕시코적이면서도 현대적이다.

이들 전시는 국제선 비행기를 타지 않고도 낯선 나라의 전통을 이해하고 문화를 알차게 배울 수 있는 기회다. 더불어 전통의 뿌리를 존중하면서 이를 현대적으로 승화한 작업이란 점에서 문화 편식과 트렌드 추종이 심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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