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임광빌딩의 공용 공간 리뉴얼 작업에 참여한 미술가 홍승혜 씨와 건축가 이진오 씨는 천장과 벽면이 격자식 시스템으로 일체화된 공간을 선보였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이 건물의 화장실에 들어선 순간 멈칫거리게 된다. 입구에서 남녀 표지판을 분명 확인했는데 내벽 타일에 새겨진 픽토그램(그림표지판)은 남성용엔 여자, 여성용엔 남자로 돼있다. 그것도 20개 층 화장실마다 각기 다른 자세로》
뻔한 생각을 뒤엎은 유쾌한 반전은 건축과 현대미술의 협업이 만들어낸 열매다. 이진오 SAAI건축 공동대표와 미술가인 홍승혜 서울산업대교수 팀은 지난해 10∼12월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임광빌딩의 공용공간 리뉴얼 공사를 맡아 일상에서 작은 즐거움을 발견하는 공간을 꾸몄다. 위트를 표현한 화장실도 상상의 여지와 웃음을 주면서 반복과 차이의 개념을 돌아보게 하는 장치다.
이 프로젝트는 건축과 미술의 역할을 한정짓지 않고 발상단계부터 서로 자유롭게 의견을 제시해 완성한 작업이란 점이 돋보인다. 홍 씨는 “자기 영역만 고집하지 않고 변화할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더불어 만든 프로젝트”라며 “어디까지 내 작업이고 어디부터 건축이라고 나누기 힘든, 말 그대로 공동작업”이라고 설명했다. 레고놀이나 벽돌쌓기처럼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를 격자판처럼 변주하는 홍 씨의 그림은 현실로 스며들고, 디테일과 질감을 꼼꼼하게 챙기는 이 씨의 건축미학이 합쳐지면서 차분하고 세련된 공간이 탄생했다.
도심의 평범한 사무용 건물에 구름과 별 같은 자연을 끌어오고, 감성이 흐르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본관의 로비와 공용 홀, 화장실, 신관 아케이드 입구에 크고 작은 변화를 주었다. 로비의 천장과 벽을 하나로 일체화한 다음, 빛으로 포근히 감싼 조명이 인상적이다. 전체 천장과 벽면을 잇는 직사각형 조명은 아름다우면서 기능적이다. 천장엔 구름을 연상하도록 둥근 조명을 군데군데 배치했다. 로비에 자리한 탁자는 원형 구조물이면서 탁자 역할을 한다. 나침반을 표현한 탁자의 표면에 조명으로 만든 사계절 별자리가 흐르고, 커피숍 탁자엔 하늘과 땅을 상징하는 등고선이 담겨 있다.
이 씨는 “건축과 현대미술이 다루는 대상과 언어가 달라 걱정했지만 대화를 거듭하면서 호흡이 잘 맞았다”며 “결과도 결과지만 협업의 과정 자체가 즐거운 체험”이라고 설명했다. 홍 씨는 “미술가로서 실제 공간에 개입하는 법을 학습한 점이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건축 따로, 미술 따로를 벗어나 둘의 화학적 결합을 시도한 프로젝트를 통해 공간에 담긴 모든 것이 작품이면서, 모든 작품은 그대로 다시 생활에 녹아들었다. 그 결과물을 공간의 기하학적 구성을 탐구하는 사진가 김도균 씨의 작품으로 보여주는 점도 색다르다. 모바일 메신저를 소통에 적극 활용했다는 점을 살려 ‘카톡 아키톡’으로 명명한 사진전은 12일까지 서울 강남구 청담동 갤러리2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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