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기사 같은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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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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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영 시인, 인용시집 ‘경찰은…’ 펴내

《‘6시 45분, 경찰특공대원 13명이 기중기로 끌어올려진 컨테이너를 타고 옥상에 투입되었다. 이때 컨테이너가 망루에 거세게 부딪쳤고 철거민들이 던진 화염병이 물대포를 갈랐다. 7시 10분, 망루에서 첫 화재가 발생했다.’》
신문 사회면 기사 같지만 시어(詩語)들이다. 2009년 서울 용산 철거민 화재 참사 현장을 그려낸 시 ‘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의 일부다. 이시영 시인(63·사진)이 최근 열두 번째로 펴낸 동명의 시집(창비)에 수록된 작품이다. 시인은 신문 기사 등에서 따온 직설적인 시어로 사회 문제를 비판하는 ‘인용시’를 2007년부터 선보여 왔다.

이번 시집에서도 광우병 시위 당시 논란이 됐던 유모차 시위대(‘직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온다’), 리비아 무아마르 카다피 독재 정권의 몰락(2011년 2월 24일, 리비아에선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등 국내외 사건들을 인용시로 되짚었다. 문단 일부에서는 사건의 팩트(fact·사실)를 모아놓은 시 쓰기가 전통적인 규범에서 벗어난다는 비판도 나온다.

“문단에선 ‘시도 아니다’라는 소리도 있죠. 하지만 시는 고정된 실체가 있는 게 아니라 시대의 흐름 속에서 변화, 형성돼 가는 무엇인 것 같아요. 또 인용시는 사회를 비판하는 데 효과적인 방식이죠.”

등단 43년째를 맞은 원로 시인의 시집에는 날 선 작품뿐만 아니라 푸근한 서정시나 인물시들도 자리 잡고 있다. 연일 이어지는 한파 때문인지 이 중 ‘겨울날’에 눈길이 갔다. ‘영하 13도의 연희동 겨울날 아침, 백년추어탕집 수족관 수염 난 미꾸라지들이 꼬리를 말아 세운 채 꽝꽝 얼어붙어 있다. 자세히 보니 없는 팔을 필사적으로 내밀어 서로의 목을 따스히 끌어안고 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이시영#인용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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