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선정 2011 올해의 인물 ‘캡틴’ 석해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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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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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굴의 용기-리더십… 보통 사람들의 ‘영웅’

“전쟁터가 아닌 곳에서 총탄을 6발이나 맞고 살아난 사람은 저밖에 없을걸요. 허허허.”

영웅은 주로 전쟁 등 난세(亂世)에 나온다. 하지만 난세가 아님에도 올해 대한민국엔 영웅 칭호를 받아도 한 치의 부족함이 없는 보통 사람이 있다. 바로 동아일보가 선정한 ‘2011년 올해의 인물’인 삼호주얼리호 석해균 선장(59·사진)이다.

청해부대 구축함 최영함이 1월 21일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삼호주얼리호 선원 전원을 피랍 6일 만에 구출하는 작전(아덴 만 여명작전)에서 석 선장은 목숨을 걸고 기지를 발휘해 ‘아덴 만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작전 과정에서 총탄을 맞은 석 선장은 귀국한 뒤 9개월간의 치료 끝에 불굴의 의지로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작전 개시 288일 만인 11월 5일 부산 금정구 장전동 자택으로 돌아온 석 선장은 요즘 누구보다 바쁘다. 개인 약속은 엄두도 못 낸다. 부산지검, 남해지방해양경찰청, 밀양시청, 목포해양대, 동의대 등지에서 특강을 이어가고 있다. 특강 때는 기립박수가 이어진다. 국제해사기구(IMO) 선정 ‘세계 최고 선원상’, 해양산업총연합회 공로상, 자랑스러운 밀양인, 중앙공무원교육원 명예 객원교수, 전남 무안 갯벌낙지 홍보대사로도 위촉됐다. 방송 프로그램 출연도 줄을 잇고 있다.
▼ “새해엔 해군 교육하며 제2인생 설계” ▼

이달 16일 부산 자택에서 만난 석 선장은 지팡이를 짚어야 거동을 할 수 있었다. 불편한 다리 때문에 양반 자세로 앉아 있지 못하고 다리를 쭉 펴야 했다. “장애 판정을 받은 왼손이 너무 저리다”며 인터뷰 내내 손을 주무르기도 했다. 하지만 인터뷰를 진행한 1시간 동안 시종일관 웃음을 지었다.

“왼손은 주먹도 못 쥐고 다리 상태도 아직 온전치 않습니다. 몸 때문에 고교 졸업 이후 늘 함께했던 바다에 나갈 수 없다는 게 제일 아쉽습니다. 하지만 아덴 만 작전 이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지고 물욕(物慾)이 줄어든 반면 국가관이나 애국심은 더욱 확고해진 것 같습니다”라고 달라진 자신의 상황을 설명했다.

“제가 독하긴 독한 성격인 것 같습니다.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장애)가 발생하거나 총에 맞았던 그 순간의 악몽을 꿀 법도 한데 병원에서 약간 힘들었을 뿐 지금 정신적 장애는 하나도 없습니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아덴 만의 영웅이라는 호칭은 부담스러워했다. “저는 영웅이 아닙니다. 선원 선박 재산을 보호할 책임이 있는 선장의 임무를 수행했을 뿐입니다. 주위에서 계속 영웅이라고 불러서 쑥스럽습니다. 영웅이 아닌 보통 사람으로 겸손하게 생활할 겁니다”라고 자신을 낮췄다.

석 선장은 2012년 새해부터 해군 군무원으로 제2의 인생을 설계한다. 2, 3월경부터 경남 창원시 진해구 해군교육사령부 계약직 군무원으로 특별 채용돼 해군 장병을 대상으로 정훈교육을 한다. “올해 국민들께서 제게 베풀어주신 은혜는 엄청납니다. 조금이라도 보답하려고 봉사활동도 열심히 하고 제가 가지고 있는 재능을 여러 사람과 나누고 싶습니다. 가진 돈은 없지만 기부도 열심히 할 겁니다”라고 다짐했다.

인터뷰 말미에 석 선장에게 수술 부위를 보여 달라고 조심스럽게 부탁했다. 윗도리를 벗으니 복부 가운데에 세로 약 30cm, 배꼽 오른쪽 옆으로 약 25cm, 오른쪽 옆구리에 약 30cm 수술 자국이 그어져 있었다. 수술 부위를 연결하면 영어 대문자 ‘H’가 된다며 그가 웃었다. 그의 말대로 선명한 ‘H’ 자국이었다. 기자에겐 이 H가 영웅을 뜻하는 ‘hero’의 첫 글자로 보였다.

인터뷰 일주일 뒤인 23일 대법원은 석 선장에게 총을 쏜 소말리아 해적 무함마드 아라이(22)에 대한 상고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소식을 접한 그는 “죄를 지었으니 죗값을 받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해적들을 이미 용서했습니다. 그들이 죄를 반성하고 선한 일을 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저와 달리 삼호주얼리호 선원은 아직까지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져 기본적인 생활조차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국민들의 관심이 필요합니다”라고 호소했다. 삼호해운은 4월 21일 부산지법에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해 현재 회생절차가 진행 중이다. 석 선장도 아직 퇴직금과 봉급을 받지 못한 상태다.

부산=윤희각 기자 to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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