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주이야기]보들레르의 우울을 씻어준 바로 그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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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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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토 샤스 스플린

금양인터내셔날 제공
금양인터내셔날 제공
추상과 관능이 넘치는 보들레르의 시는 시대와 영역을 넘나들며 예술가들의 영감을 자극했다. 하지만 프랑스 상징주의를 대표한다는 후세의 평가에도 현실의 그는 늘 불우했다.

1821년 62세의 아버지와 후처였던 28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여섯 살이 되던 해 아버지를 여의고 의붓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대학 시절에는 술과 마약에 빠졌고, 사치스러운 생활로 금치산 선고를 받기도 했다. 1857년 세상에 나온 ‘악의 꽃’은 출간되자마자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6편의 시가 삭제됐고 벌금형도 선고받았다. 45세가 되던 해에 성병으로 세상을 떠난 그의 삶은 산문집 ‘파리의 우울’처럼 우울했다.

그런 그를 달랜 와인이 있다. 바로 프랑스 보르도 메도크 지방을 대표하는 와인 ‘샤토 샤스 스플린’이다. ‘슬픔이여 안녕’이라는 의미의 샤토 샤스 스플린은 보들레르가 이 와인을 마신 뒤 우울한 기분을 떨쳐버렸다고 해 유명해졌다. 실제로 보들레르는 이름이 붙지 않았던 이 와인을 마신 뒤 와이너리에 샤스 스플린이란 이름을 헌정했다고 알려졌다.

보들레르와의 인연이 이름으로까지 이어진 와인답게 병의 레이블도 독특하다. 매년 바뀌는 빈티지 병에 그해 와인과 가장 잘 어울리는 시구를 붙인다. 2004년 레이블의 주인공은 보들레르의 영향을 받은 19세기 프랑스 상징파 시인이자 랭보의 연인이었던 폴 베를렌이었다. 그는 ‘마음속 깊이 스며드는 이 서글픔은 무엇인가’라는 시구를 샤스 스플린 레이블에 남겼다. 매년 생산되는 와인에 시인의 시구를 사용하는 샤스 스플린 와이너리는 살아 있는 작가의 경우 작가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매년 와인을 보내주며 보답한다.

예술적인 스토리에 걸맞게 품질도 훌륭하다. 진한 붉은빛 와인은 민트와 스모키향이 조화를 이뤄 부드럽고 균형 잡힌 향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도 샤토 샤스 스플린을 두고 “(보르도 와인은 선물시장에서 거래되는데) 지난 30년 동안 와인 선물시장에서 반드시 사야 할 와인으로 손꼽히는 와인 가운데 하나”라고 평가했을 정도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 샤토 샤스 스플린은 슬픔을 훌훌 털어버리고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는 연말에 어울리는 와인이다.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사람이나 연인을 위한 선물로도 좋다. 우울한 싱글들에게도 더할 나위 없다. 국내에는 금양인터내셔날을 통해 수입된다. 값은 빈티지마다 다르다. 2007년 빈티지 기준으로는 14만 원이다.

박승헌 기자 hpar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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