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자의 인증샷] 회전초밥집에서 만난 클라라 주미 강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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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30일 11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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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겨울처럼 느껴지지 않는, 봄을 착각한 새싹이 불쑥 돋을 것만 같은 11월에 그녀를 만났다.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 1987년생이니 우리 나이로 스물다섯. 저명한 오페라 가수로 독일이 활동 주무대인 강병운씨와 역시 성악가인 어머니 한민희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독일 한스아이슬러 음악대학교, 줄리어드스쿨 음악학교, 만하임대학에서 공부했고, 귀국해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올해 졸업했다. 어떻게 보면, 한국에서 외국으로 유학을 간 것이 아니라 거꾸로 외국에서 한국으로 음악 유학을 온 셈이다.

클라라 주미 강의 이름이 보다 대중에게 깊이 각인된 것은 지난해 제8회 인디애나폴리스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였을 것이다.
2009년에는 서울국제음악콩쿠르에서, 2010년에는 인디애나폴리스에 앞서 일본 센다이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했다.

최근에는 어쩐 일인지 뭔가를 먹으며 인터뷰를 하는 일이 많았다. 뮤지컬 배우 박건형씨와는 삼청동에서 칼국수를 후루룩 후루룩 먹으며 인터뷰를 했다.

오늘은 회전초밥(야호!). 초밥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턴테이블 앞에 나란히 앉아 인터뷰를 하게 되나 싶어(초밥은 물론 맛있을 겁니다만) 살짝 우려가 되기도 했지만, 다행히 4인용 테이블에 앉을 수 있었다.

인사를 나누고, 가벼운 음악 얘기로 몸 풀기. 그리고는 보이스레코더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노트북의 전원을 켠다.

클라라 주미 강은 최근 꽤 유명한 브랜드의 화장품 모델광고 계약을 맺었다. 여자 연예인들에게도 꿈이자 로망인 화장품 모델을 클래식 연주자가 따냈다는 사실이 놀랍다.
동석한 클래식 공연기획사 빈체로의 한정호 과장이 설명을 해준다.

“회사(LG생활건강이다)에서 주미씨에 대해 관심이 있다고 연락을 해왔답니다. 비치는 이미지가 고급스럽다고. 만나고 싶다고요. 그런데 주미씨를 본 담당자가 깜짝 놀랐다는 겁니다. 피부가 너무나 깔끔해서. ‘이건 화장품이다!’한 거죠.”

클라라 주미 강이 입을 열었다.
“제가 사실은 건성피부예요. 겨울에 로션을 열심히 바르기만 하면 되었는데, 요즘에는 건성이 심해져서 … 지난주에 처음 피부관리라는 걸 받으러 가봤어요.”
언니도 피부가 너무 좋다고 했다. 유전이다.
“돈 버는 피부를 가져서 좋겠다”라고 하니 두 사람이 “우하하” 웃는다.

최근 2~3년 새에 국제콩쿠르에서 연이어 1위를 하면서 사람들은 “클라라 주미 강은 대회 나갔다 하면 우승”이라는 선입견 같은 걸 갖고 있는 듯하다, 라고 물었다.

“대중들이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죠. 음악하시는 분들은 다 아세요. 2009년 서울국제콩쿠르에서 1위하기 전에는 저도 콩쿠르에서 많이 떨어져봤죠. 20대 초반까지는 계속 그랬어요. 나중에 노하우가 생기고, 단점을 장점으로 만드는 능력이 생긴 거죠.”

“노하우요? 콩쿠르 입상 노하우라는 게 있나요?”
“콩쿠르가 보통 2~3주 정도 하거든요. 어떻게 하면 그 동안 컨디션을 잘 관리할 수 있는지, 내가 가진 매력을 더 어필할 수 있는지, 그런 것들이죠. 장점을 살리는 것 못지않게 단점을 줄여가는 것도 중요하죠.”

예를 들어 곡 해석이 뚜렷해야 한다고 했다. 이게 맞나, 저게 맞나 하고 있다가는 심사위원에게 ‘저 친구는 뚜렷한 이미지가 없군’하는 선입견을 주기 십상이다.

“음악에도 매력이 있어야 해요. 뭔가 계속해서 보고 싶은. 10대에 이미 그런 게 나타나는 연주자가 있는가 하면, 좀 늦게 나타나는 경우도 있죠. 저도 늦게 풀렸던 것 같아요.”

그녀의 얘기에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초밥을 집어먹는다.

○ 11세 때 손가락 부상 … “연주 불가 판정”

클라라 주미 강이 11세 때 손가락을 다치는 바람에 3년 이상 바이올린 활을 놓아야 했던 이야기는 꽤 유명하다.
잘 모르는 독자를 위해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이런 사연이다.

독일에서 천재소녀 연주자로 이름이 났던 클라라 주미 강은 초등학교 시절 교내 여자농구팀을 모집한다는 게시물을 보게 된다. 지금도 큰 키지만 그때 이미 165cm였다고. 독일 여자애들보다 큰 키였다고 한다.
어쨌든 신나게 농구를 하던 클라라 주미 강은 덩치가 큰 러시아 여자애에게 떠밀려 넘어졌고, 바이올리니스트에게는 목숨과도 같은 손가락을 다치고 만다. 새끼손가락이었다.

세계적인 지휘의 거장 바렌보임과의 연주회를 한 달 남짓 남겨 둔 상황이었다. 이후 두 번의 수술을 받아야했지만, 결국 다시는 연주할 수 없다는 가혹한 판정이 내려졌다.

“손가락 부상 덕분에 성격이 많이 좋아진 것 같아요. 하하! 어릴 적엔 음악을 하는 게 너무 당연한 거였죠. 나쁘게 보면, 지금처럼 소중하지 않았어요. 태어나서부터 했으니까. 가족이 다 음악을 하니까, 나도 해야 한다 … 이런 것.”

다시 바이올린을 시작하겠다고 했을 때, 가족이 모두 나서서 말렸다.
특히 아버지의 반대가 심했다.
클라라 주미 강은 “겁이 나셨던 것 같다”라고 했다. 환상을 가졌다가 무참하게 깨어졌을 때, 딸이 감내해야 할 커다란 심적 고통을, 아버지는 떠올렸을 것이다.

부상에서 회복하고, 다시 바이올린 활을 잡았지만 처음 2년은 힘이 들었다. 다시 기초부터 잡아야했다.

“사실 저는 이 이야기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해요. 과거를 다시 들추어서 기억해내고 싶지 않거든요. 제 인생에서 새로운 챕터를 열었다는 데에 감사하죠. 그때 일들은, 굉장히 옛날처럼 느껴져요.”

천재소녀 시절에는 명기 스트라디바리우스로 연주했지만, 손가락을 다친 후 반납했다.
다시 바이올린을 하겠다고 하니 아버지가 마지못해 한 대를 사다 주었다. 값싼 물건이었다. 클라라 주미 강 표현으로는 “어지간한 바이올린 활값보다 싼” 바이올린이었다.
2009년 서울국제음악콩쿠르에서 그녀는 이 싸구려 악기를 들고 우승했다.

“다시 시작을 하려니 너무 속상했어요. 되던 게 안 되니까. 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했던 것들인데. 비록 새끼손가락 하나지만, 하나가 망가짐으로써 나머지도 둔해지고.”

클라라 주미 강이 미간을 좁혔다. 뭔가 중요한 것을 말하려는 듯.
“그런데 웃긴 게 … 너무 낮아지면 사람이 조그마한 거에 감동을 받게 되더라고요. 아직도 기억이 나요. 연습을 하다가 음을 내는데, 너무 예쁘게 소리가 나는 거예요. 오른손으로 활을 얹는 데는 문제가 없잖아요. 제 처지를 더 심각하게 생각했던 거죠. 소리도 못 내겠구나 …. 혼자 미소를 지으면서 너무 좋아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정확히 바이올린이 다시 손에 익는 데는 1년이 걸렸다.
“딱 1년 해보고 정말 안 되면 포기하려고 했죠.”
집에서 혼자 1년간 연습해 희망이 보이자 옛날 스승을 찾아갔다. 스승들의 레슨을 받으며 다시 1년을 보냈다.

○ 거장 바렌보임의 추억

클라라 주미 강에게는 또 하나 유명한 어릴 적 에피소드가 있다.
그는 지휘자 바렌보임의 집에서 1년간 살았다. 손가락을 다치기 전의 일이다. 바렌보임은 아버지와 친분이 깊었다.

“워낙 세계적으로 유명하신 분이니 집에는 거의 안 계셨겠군요?”
“아뇨. 베를린이 집이었는데, 매일 집에서 출퇴근하셨는데요. 연주투어는 1년에 길어야 두 달 정도? 그것도 몰아서 가시니까. 보통 집에서 시간을 보내셨어요. 베를린필 지휘도 많이 하셨고.”

그래도 남의집살이가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 그것도 어린 나이에.
“저랑 사모님, 아들 두 명. 이렇게 살았어요. 그런데 집이 굉장히 컸어요. 지붕 모양으로 된 3층이 있었는데, 저 혼자 다 썼어요. 편하게 지냈죠. 가족처럼 밥도 같이 먹고. 사모님이 너무 좋은 분이셨어요.”

음악계에서는 성격이 세다는 평을 듣는 바렌보임이지만 클라라 주미 강은 “나한테 화를 내신 적이 한 번도 없다”라고 했다. 늘 음악 얘기를 했고, “연주해볼래?”하고는 직접 피아노 반주를 해주기도 했다.

말을 멈춘 클라라 주미 강이 접시에 시선을 주더니 “이거 전복이에요?”한다.
“전복을 좋아하냐”고 물었더니 “엄마가 하도 먹어라먹어라 해서 먹긴 먹는데 맛은 잘 모르겠다”라고 했다.

“전 스시도 한국 와서 먹게 된 거예요. 독일에서는 스시라고 해봐야 오이를 김으로 싸놓은 수준이라.”
음식은 가리지 않고 잘 먹는 편이라고 했다. 그래도 못 먹는 음식은 있다. 닭발, 비계처럼 물컹물컹하거나 비린내가 나는 건 입에 대지 못한다.

“무대 올라가기 전에는 바나나를 먹어요. 보통 5시쯤 저녁을 먹고, 소화를 시키고 올라가는데 만약 저녁을 못 먹은 날에는 바나나를 먹죠. 바나나가 정말 힘을 많이 주거든요.”

클라라 주미 강은 “바나나에는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켜주는 성분이 있다고 해요”라고 했다. 대신 떨리게 만드는 초콜릿은 금물이다. 커피는 오히려 괜찮다고 했다. 잠이 깨고 개운해진다.

“제가 봤을 때, 연주자들은 다 떨어요. 손을 떨거나, 심한 경우 무릎이 떨리는 것도 보여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떨수록 더 가라앉는 경우도 있어요. 떨리면 자꾸 음악이 빨라지잖아요. 그런데 이런 사람은 느려지죠. 사람들이 저보고 ‘넌 안 떨잖아’하는데, 저도 떨긴 떨어요.”
(2부에서 계속)

사진제공|빈체로
스포츠동아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트위터 @ranbi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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