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작가 아크람 자타리 씨(45·사진)가 양현재단(이사장 최은영 한진해운 회장)이 제정한 제4회 양현미술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 상은 국내 최초의 국제적 미술상으로 상금 1억 원과 전시 후원 혜택을 준다.
건축을 공부한 뒤 1995년부터 아티스트로 활동해온 자타리 씨는 다큐영화 제작자로 출발해 사진 비디오 퍼포먼스 등 장르를 넘나들며 작업해왔다. 중동의 정치 문화적 상황을 담은 폭넓은 자료를 수집 연구하는 프로젝트로 유럽에서 주목받았고 2005년 서울 인사아트센터에서 개인전, 2006년 광주비엔날레에도 참여했다. 심사를 맡은 일본 모리미술관장 난조 후미오, 미국 디아미술재단 디렉터 필립 베른은 “갈등과 전쟁의 시기에 놓인 예술가들의 책임에 대한 질문을 서구적 관점에 얽매이지 않고 독자적 방식을 통해 제시했다”고 평했다.
7일 시상식 후에 만난 자타리 씨는 차분하고 담담한 표정이었다. “제3세계 작가로서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는 첫 상인 데다 한국에서 주는 상이라 더욱 기쁩니다. 세계 예술의 중심이 반드시 세계 금융이나 재력의 중심과 일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내 바람이니까요.”
그는 자신의 작업을 고고학에 비유한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 상상력을 확장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시각과 경험을 활용하기 때문이다. “난 아티스트이자 연구자, 고고학자라고 생각한다. 내 작업은 사진, 일기, 대화 등 타인의 경험을 수집, 발굴하는 데서 출발한다. ‘발굴’이란 말을 좋아하는 것은 과거의 것이 현재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이런 관심은 1997년 비영리단체인 아랍이미지재단(AIF)을 설립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모은 30만 장이 넘는 공적 사적인 사진, 기록을 보관하는 기관이다. 이 거대한 기억의 보물창고를 활용해 그는 아랍의 일상과 역사를 씨실 날실로 엮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고향 사진사가 찍은 동네 사람들의 초상사진을 분류하고 재배치한 ‘Objects of Study’, 폭격 장면과 비슷한 시기에 찍은 개인의 앨범사진을 배치해 역사와 기억의 관계를 탐구하는 ’끝없는 비밀의 땅‘ 등이 대표적이다.
침묵의 언어로 조용한 사유를 유도하는 작가. 그는 “예술의 역할은 ‘내가 믿는 것이 다 옳은 것은 아니다’라는 불확실성을 일깨워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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