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현장 체험]자동차 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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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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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수車 보니 눈 캄캄… 엔진수리비만 400만원

스프레이 부스 안에서 도장작업이 한창이다. 공기 중에 날리는 페인트 때문에 온 세상이 뿌옇다. 칠이 끝나면 도장면을 60도에서 30분간 건조하는 작업이 이어진다. 신원건기자 laputa@donga.com
스프레이 부스 안에서 도장작업이 한창이다. 공기 중에 날리는 페인트 때문에 온 세상이 뿌옇다. 칠이 끝나면 도장면을 60도에서 30분간 건조하는 작업이 이어진다. 신원건기자 laputa@donga.com
‘버리고 갈 것인가, 가지고 갈 것인가.’

영화에서나 보던 장면이 눈앞에서 펼쳐진다. 도로에 무릎 높이까지 차오른 빗물이 차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운전석 밑 시트에서 물이 찰랑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 순간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

지난달 26일부터 31일까지 계속된 집중호우는 수많은 운전자를 이런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만들었다. 손해보험협회는 이번 호우로 13개 손해보험사에 신고된 침수피해 차량은 모두 1만574대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피해액은 731억여 원으로 집계됐다.

○ 정답은 “시동을 끄고 차를 떠나라” 지만…

9일 경기 성남시 분당 인근에 위치한 (주)에이치모빌러스(기아자동차 서비스 협력업체)를 찾았다. 침수 피해를 본 차량의 정비를 해보고 싶다고 말해두었다. 마침 정비소 앞에 이번 폭우로 침수 피해를 본 쏘렌토 한 대가 서 있었다. 차체는 매우 깔끔했다. 하지만 운전석 문을 열자 브레이크 페달 위 볼트에 묻은 흙이 눈에 들어왔다. 흙탕물이 그곳까지 차올랐다고 한다. 시트도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열흘을 말렸다는데도 물기가 묻어났다.

침수 피해 차량의 수리를 체험해 볼 수 있겠다는 기대는 서정권 총괄부장(42)의 말 한마디에 산산이 부서졌다.

“보험으로 처리할 수 있는 금액보다 수리비가 훨씬 더 많이 들어 폐차를 하기로 결정했어요.”

엔진 수리비만 해도 보험회사에서 산출한 차의 현재 가치인 400만 원을 넘었다. 차 주인은 그 얘기를 듣고는 다른 부분에 대해 추가 견적을 뽑아 달란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완전침수 피해를 본 차주의 20% 정도는 차를 포기하지 않고 수리해 달라고 해요. 하지만 완전침수가 되면 수리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시면 돼요. 운전자들이 어떻게든 침수 지역에서 벗어나려고 가속페달을 세게 밟잖아요. 그러면 물이 유입돼 엔진이 망가지거든요.”

도로에 물이 차오를 때 시동이 꺼지는 이유는 엔진으로 들어가는 공기를 걸러주는 에어 클리너가 젖기 때문이다. 에어 클리너가 젖으면 공기가 유입되지 않는다. 그 상황에서 계속 시동을 걸면 실린더 안에 물이 찬 상태에서 피스톤이 왕복운동을 하면서 커넥팅 로드가 휘어진다. 경차 엔진만 하더라도 교체하는 데 100만 원이 넘게 든다. 엔진은 크기가 클수록 더 비싸다. 따라서 시동이 꺼지면 빨리 키를 뽑고 견인 조치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침수 차량의 경우 엔진을 교체하고 정비를 하더라도 자잘한 문제가 계속 운전자를 괴롭힌다.

“자동차도 휴대전화랑 똑같다고 보시면 돼요. 수리 당시에는 문제가 없더라도 한번 물이 닿았던 전기 계통 쪽은 서서히 부식되면서 잔고장이 계속 발생하는 거죠. 10년 전쯤이었을 거예요. 동부간선도로가 침수돼 ‘물차’가 많이 들어온 적이 있었어요. 그때는 될 수 있으면 수리를 해서 내보냈어요. 그런데 얼마 안 돼 다시 찾아오는 손님이 많더라고요.”

추후 계속해서 발생하는 비용까지 고려하면 ‘자가차량손해’ 담보에 가입되어 있는 차의 현재 가치만큼 보험금을 받고 다른 차량을 구입하는 것이 더 경제적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 정비사들의 고충

온 몸을 감싸듯이 흩날리던 빗방울이 잦아들고 오후 2시가 넘어서자 정비소를 찾는 차도 늘어났다. 간단한 부분이라도 직접 정비를 해 보겠다고 말했지만 매번 돌아오는 대답은 ‘노’였다. 참다못한 이승호 정비팀장(39)이 따끔하게 말했다.

“정비자격증을 땄다 해도 쉽게 일을 못 시켜요. 이곳에서 ‘밥값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려면 최소한 3년에서 5년은 일해야 해요. 아셨죠?”

결국 그의 옆에서 스패너를 건네주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비가 그치기 무섭게 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로 얼굴에 땀방울이 맺혔다. 요즘은 엔진 후드(보닛)의 방열처리가 잘돼 있어 운전자들은 열을 느낄 일이 별로 없지만, 냉각수 온도만 하더라도 80도에서 100도에 이를 만큼 차는 뜨겁다. 이 팀장은 “간혹 일부 저가형 차에서 보슬비가 내릴 때 엔진 후드 위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경우가 있다. 고급사양 차량은 방열처리가 잘 돼 있어 그런 현상이 없다”며 웃었다.

여름철에는 휴가를 떠나기 전이나 다녀온 후 자동차 점검을 부탁하는 고객이 많다. 고객은 조금 더 늘지만, 그만큼 정비사들은 골치가 아파지기도 한다.

“어떤 손님이 제일 힘들어요?”

카렌스의 엔진 후드를 열고 한창 미션오일을 교환하던 그에게 물었다.

“점검 결과보다는 인터넷에서 보고 온 이야기를 더 믿으시는 분들이죠. 얼마 전에는 시동이 꺼진다며 찾아온 손님이 있었어요. 제가 점검해 보니 다른 부분에 문제가 있었는데, 자꾸 EGR(배기가스재순환) 밸브를 교체해 달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자신의 차량과 똑같은 증상을 보였는데 그 밸브를 교체했더니 정상적으로 작동이 됐다는 글을 보고 왔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이미 특정 부품을 교체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오신 거죠. 다양한 요인이 고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말이에요.”

개인의 주관성이 개입되는 소리나 색깔과 관련된 작업도 까다롭다. 특히 도색을 할 때는 고객이 원하는 색깔에 맞추기 위해 몇 번씩 다시 칠한다. 도장부의 김인석 팀장(45)은 “다섯 번이나 다시 도색작업을 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많은 분이 펜더와 범퍼의 색이 처음 생산될 때부터 미묘하게 다르다는 것을 잘 몰라요. 같은 검은색이라도 범퍼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착색시 금속성 보디와는 약간 색이 다르거든요. 그런데 손님들은 신차를 받았을 때보다 수리가 완료됐을 때 더 꼼꼼히 보시면서 주변 차체와 딱 맞는 색을 원하시는 거예요. 사람마다 보는 눈도 조금씩 다르니까 더 어렵죠.”

정확한 색을 맞추기 위해서는 페인트 제조사와의 정보 교류가 기본이다. 현장에서 조색작업을 해 맞는 색을 찾아내면, 각 색의 구성을 페인트 제조사와 공유한다.

“밖에서 봤을 때는 몸만 힘들 것 같죠? 그게 아니에요. 차 한 대 나올 때마다 새로운 기술이 하나씩 나오니까, 공부도 끊임없이 해야 해요. 거기다가 기본적으로 고객들이 차 때문에 화가 난 상태로 찾아오시는 거라 의사소통을 하기도 쉽지 않죠.”

최윤석 대표(38)의 설명이 이어졌다.

퇴근 시간을 불과 30분 앞두고 하얀색 K7이 정비소 안으로 들어왔다. 웃으면서 달려가 차의 주차 위치를 잡아주는 직원들의 등이 유난히도 커 보였다.  
▼ 타이어 교체작업 해보니 ▼
차체는 잭으로 올렸는데 타이어 빼내기는 버거워


국가공인 자격증 중에 가장 흔하다는 운전면허증도 없다. 세상에 가장 좋은 차는 버스라고 굳게 믿는 BMW(Bus, Metro, Walk) 이용자다. 어머니 차의 워셔액 주입구를 찾지 못해 주유소에 가자고 한 적도 있다. 스스로의 상태를 고백하자 방금태 엔지니어(35)의 얼굴에 곤혹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절대 아무 거나 만지지 말고 옆에서 보기만 하세요.”

열린 보닛 안으로 고개를 밀어넣어 보았다. 어떤 것이 엔진이고 미션인지 자동차 문외한에게는 모두 똑같은 쇳덩어리였다. 옆에서 함께 지켜보던 선배가 “정비소는커녕 주유소도 없는 산골짜기에 자동차로 여행을 떠났다가 타이어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며 자꾸 눈치를 줬다. 결국 타이어 교체 작업만 한번 해 보겠다고 나섰다.

“요즘에는 고객센터에 전화하면 다 해준다니까. 긴급출동서비스 번호만 정확히 알고 있으면 된다고.”

이렇게 거절하던 방 씨가 계속되는 부탁에 지쳤는지 ‘오케이’를 해 줬다.

첫 작업은 타이어의 볼트를 빼기 쉽도록 차체를 들어올리는 일. 차 트렁크에 들어있는 공구함에서 잭(차를 들어올리는 공구)을 꺼내 차체 아랫부분에 난 홈에 맞춰 끼운 뒤 잭의 핸들을 돌렸다. 팔 근육 세포 하나하나가 찢어지는 느낌이 들 때까지 돌리니 그제야 하얀색 카니발이 조금씩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타이어를 빼내기 쉬울 정도로 차체를 들어올린 다음에는 차례로 휠볼 트렌치를 사용해 고정 볼트들을 왼쪽으로 돌려 빼냈다. 지켜보던 방 씨가 한마디 툭 뱉었다.

“여자가 이거 빼려면 꽤 힘들 텐데….”

그 말에 손목이 비틀어져라 나사를 돌렸다. 여자라고 못할 것은 세상에 없다.

“이제 타이어를 빼내고 예비타이어를 꺼내 끼우면 돼요. 들어서 빼낼 수 있겠어요?”

고개를 끄덕인 후 타이어를 빼내기 위해 힘을 줬다.

“무릎을 땅에 대고, 그것을 지지대 삼아 들어올리면 좀 쉬울 거예요.”

꿈쩍도 하지 않는 타이어를 보고는 안쓰러웠는지 방 씨가 친절하게 자세를 잡아줬다. 하지만 허사였다. 결국 그의 손이 타이어에 닿는 순간, 바퀴 축에 걸려 움직이지 않던 타이어가 마법처럼 빠져 나왔다.

차 뒤쪽에 고정돼 있던 예비타이어를 꺼냈다. 예비타이어를 고정해 놓은 나사를 푸는 데 집중하다 잠시 방심한 사이 쿵 하고 타이어가 떨어져 버렸다. 지쳐서 빨리 끝내버리자는 마음뿐이었다.

“타이어를 조금씩 돌리면서 나사 구멍을 맞춰야 볼트를 조일 수 있죠.”

급한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방 씨가 옆에서 타이어를 돌려 홈을 맞춰 주었다. 순간 탁 소리와 함께 바퀴 축에 타이어 나사 구멍이 맞아 들어갔다. 볼트들을 하나씩 반대 방향으로 조였다.

“볼트를 꽉 조이지 않으면 운전 중에 바퀴가 빠질 수도 있어요.”

한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 조이고 또 조였다. 그리고 잭의 핸들을 반대로 돌려 차체를 내렸다.

“나중에 혼자서도 할 수 있겠죠?”

“그냥 긴급 출동 서비스 부를래요.”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김보경 인턴기자·고려대 영어영문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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