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바렌보임 오케스트라’ 서울 공연 첫날

  • 동아일보

‘지구촌의 평화’ 큰 그림 그리듯
19세기 낭만주의 웅혼함 보여줘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온 다니엘 바렌보임은 두텁고 박력 있는 베토벤을 들려줬다. 크레디아 제공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온 다니엘 바렌보임은 두텁고 박력 있는 베토벤을 들려줬다. 크레디아 제공
“음악은 테러리스트의 마음을 바꿀 순 없지만 테러에 무관심한 이들의 이해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2005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만난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는 당시 자신의 고향 북오세티야에서 일어난 참혹한 테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때 그의 말은 머리로는 와 닿았으되 가슴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의 내한공연이 시작된 10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이란, 레바논, 시리아, 이집트…. 이내 테러와 전쟁이 떠오르는 국가의 청년들이 악기를 들고 무대로 걸어 나왔다. 6년 전 러시아 지휘자의 말이 떠오르며 마음 한구석에 뜨거운 무엇이 치밀어 올랐다.

이스라엘 사람 다니엘 바렌보임이 등장한다. 사실 바렌보임만큼 ‘비호감’ 음악가도 드물다. 병들어 죽어가는 조강지처 재클린 듀프레와 헤어지고 동료 음악가의 부인과 재혼했으니 우리 정서로는 기본이 안 된 사람이었다. 그도 이젠 고희를 바라보는 백발의 노인이 됐다. 연주의 질을 떠나 선입견 때문에 의도적으로 비켜갔던 거장이 바로 눈앞에서, 인류에 화합의 메시지를 전한 ‘악성(樂聖)’ 베토벤의 교향곡 1번을 위해 지휘봉을 들었다.

아! 연주하는 그 순간에도 그들의 조국은 총소리가 끊이지 않았을 터다. 하지만 이 다국적 오케스트라 단원의 손끝에서 빚어지는 음악은 깊디깊었다. 지금보다는 평화로웠던 한 세기 전으로 회귀하고 싶어서였을까.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가 1930년대부터 시도한, 고음과 저음악기가 좌우로 갈리는 일반적인 악기 배치가 아니다. ‘레닌그라드 편성’이라 불리는, 전설적인 지휘자 예브게니 므라빈스키의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모습. 19세기 낭만주의 악단의 편성이다.

첼로와 더블베이스가 중앙에서 왼쪽으로 뻗어가고 금관악기는 오른쪽 뒤에 함몰됐다. 어마어마한 저음이 청중 사이를 헤집고 지나갔다. 금관은 구석에서 울부짖었지만 섬뜩할 만큼 거칠었다. 교향곡 8번의 최고 명연이라 손꼽히는 헤르베르트 케겔 지휘 음반에서 들었던 해탈에 도달한 자유로움이, 놀랍게도 1악장 도입부에서 감지됐다.

이 청년들의 실력이 베를린 필에 도달하기는 애초에 불가능했다. 바렌보임은 디테일보다는 큰 그림에 주력했다. 악기군 간 균형이 깨지고 실수도 나왔지만 전체적인 틀 안에 묻혔다. 요즘 유행하는 담백하고 단정한 베토벤은 웅혼한 낭만주의풍으로 바뀌었다. 교향곡 ‘운명’ 3악장 트리오 부분의 대위법은 서로 다른 것이 하나 되는 질서의 정점이었다. 승리에 찬 4악장이 끝나자 청중은 기립했고 지휘자는 꽃다발에서 꽃을 한 송이씩 빼 여성 단원에게 나눠준 뒤 객석으로 던졌다.

바렌보임에 대한 선입견은 보기 좋게 깨졌다. 그는 음악으로 세상을 당장 바꿀 수는 없지만 서로를 이해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전도사로 다시 나타났다. 14일 베토벤 교향곡 전곡 연주가 마무리되고 15일 광복절에는 분단의 상징인 경기 파주 임진각에서 교향곡 9번 ‘합창’이 울려 퍼진다. 그 대장정의 팡파르를 울리던 10일 서해 연평도 앞바다에서는 또다시 포탄이 터졌다. 임진각에서 중동의 젊은이들이 음악으로 외치는 평화의 갈구가 우리에게 통일을 향한 작은 희망의 소식이 되리라.

유혁준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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