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帝 경성제대 설립, 식민통치 위기감 때문”

  • Array
  • 입력 2011년 6월 20일 03시 00분


코멘트

정준영 한림대 연구원 발표

일제가 설립한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오늘날의 서울 종로구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자리다. 의학부는 현재의 서울대병원 터에, 이공학부는 서울 노원구 공릉동 서울과학기술대 자리에 있었다. 정준영 연구원 제공
일제가 설립한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오늘날의 서울 종로구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자리다. 의학부는 현재의 서울대병원 터에, 이공학부는 서울 노원구 공릉동 서울과학기술대 자리에 있었다. 정준영 연구원 제공
1924년 설립이 확정되고 2년 뒤 조선의 첫 종합대학이 된 경성제국대학. 이 대학은 일제가 서양인 선교사를 중심으로 한 종합대학 설립 운동에 대응해 식민통치의 헤게모니 유지 차원에서 서둘러 설립했으며, 이 대학 구성원들은 총독부와 제국의 이해가 상충할 때 제국의 이해를 따름으로써 총독부도 마음대로 이를 지배하지 못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정준영 한림대 일본학중점연구소 연구원은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식민지제국대학의 탄생―경성제국대학의 설립경위와 의학부’를 20일 서울대병원 병원역사문화센터 세미나에서 발표한다.

경성제대는 1924년 5월 일왕의 칙령에 따라 법문학부와 이학부를 두는 형태로 설립이 확정돼 예과 학생을 받았다. 1926년에 이들이 학부과정에 진입함으로써 조선의 첫 ‘종합대학’이 됐다.

영국이나 프랑스가 인도나 인도차이나에 본국 대학보다 수준이 낮은 식민지대학을 설립한 것과 달리 경성제대는 본국의 최고학부(제국대학)를 모델로 했다는 점에서 이례적이었다. 조선총독부가 1923년 대학창설준비위원회를 공식 발족한 지 6개월, 구상 단계까지 포함하더라도 4년 반이라는 단기간에 대학 설립이 실현됐다. 더구나 이때는 경제적 위기 때문에 일본의 재정이 초긴축 상태에 있던 때였다.

조선총독부가 이처럼 대학 설립을 서둘렀던 이유에 대해 정 연구원은 “조선 통치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이었다”고 분석했다. 일제는 1910년대 조선인들의 고등교육 욕구를 철저하게 외면했다. 이 틈을 비집고 선교사들이 고등교육을 담당하고 나선 것에 일제가 위협을 느꼈다는 것이다.

정 연구원은 이에 대한 증거로 1922년 1월 25일에 있었던 추밀원 본회의의 심의 내용을 제시했다. 당시 심의는 제2차 조선교육령 칙령에 대한 것이었다. 추밀원은 일왕의 자문기구이지만 조약, 군사, 교육과 같은 주요 부문에 대해서는 일왕의 자문에 응하는 형식으로 사실상 직접 결정했다.

심의 과정에서 식민지대학 설립 문제에 관한 위원회가 구성됐는데 그 위원장은 “외국인이 경영에 관계하는 불완전한 사립대학이 관립대학보다 먼저 설립된다는 것은 통치상 크게 우려할 만한 일이 되지 않을까 두렵다”는 의견을 제기했다. 선교사의 대학 설립 움직임이 없었던 대만의 경우 일제가 1928년에야 타이베이(臺北)제국대학을 세웠다. 일제는 1919년 전후에 조선과 대만에서의 대학 설립을 구상하기 시작했으며 경성제국대학이 서둘러 설립되는 바람에 조선인의 민립대학 설립과 세브란스의전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종합대학 설립은 좌절됐다. 경성제대가 설립된 후 일제는 조선인 졸업생들 중 일부가 일본인과의 경쟁을 통과해 고위관료가 되는 것까지는 용인했지만 지식을 생산하는 학자로서 경성제대 교수가 되는 것은 단 한 명도 허용하지 않았다.

정 연구원은 또 경성제국대학이 조선총독부에 의해 설립되기는 했지만 일본 최고 수준의 ‘제국대학’으로 창립됨에 따라 경성제국대학의 구성원들이 총독부와 제국의 이해가 상충할 때 제국의 이해를 따름으로써 총독부가 마음대로 지배하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이 대학의 교수와 학생들은 자부심이 강해 근대적 학문연구 토양을 자생적으로 갖추었으며 직선제로 총장을 뽑을 정도로 자치권을 유지했다는 것.

정 연구원은 “경성제대는 광복 직후 바로 해체돼 학술적 유산은 거의 남기지 않고 사라졌지만 치열한 경쟁을 통과한 뒤 관료로 진출하는 것을 우대하는 사회적 분위기, 사립대학마저도 당국의 강력한 지배를 받는 한국 사회 특유의 교육정책 등에 경성제대를 중심으로 한 일제 교육정책의 흔적이 아직 남아 있다”고 말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