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칼데라 호수··· 온천··· 유황산··· 맑은 공기 숨겨진 비경, 나그네도 쉬어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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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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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루이 두루미 보호구역에서 아침식사를 하는 두루미들. 고고하게 날갯짓하며 설원 위를 날아가는 두루미는 한 폭의 그림 같다. 구시로=심은정 프리랜서
쓰루이 두루미 보호구역에서 아침식사를 하는 두루미들. 고고하게 날갯짓하며 설원 위를 날아가는 두루미는 한 폭의 그림 같다. 구시로=심은정 프리랜서
굿샤로 호에 다가서면 한눈에 담아지지 않는, 광활하고 시원한 풍경에 곧바로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둘레가 57km에 이르는 이 일본 최대의 칼데라 호수는 꽁꽁 얼어 흰 눈이 소복이 내려앉아 있었다. 하지만 가장자리는 얼음이 녹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호수로 스며드는 온천 덕분이다. 따뜻한 물에 넓적한 발 담그고 노는 한 무리가 있었으니 이들이 바로 백조다.

굿샤로 호에서 꼭 들르는 곳인 스나유(砂湯)는 주차장과 편의시설을 갖춰 관광객들로 왁자지껄하다. 반면 스나유에서 남쪽으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굿샤로 호 로텐부로는 자유여행자가 아니고서는 쉽사리 방문하기 어려운 곳이다. 호젓하고 여유로운 굿샤로 호 겨울여행의 포인트는 바로 이 로텐부로에 있다.

로텐부로가 자리 잡은 곳은 아이누 민속자료관 바로 옆. 도로에 안내표지판이 없지만 호수 쪽으로 걸어 나오다 보면 ‘백조들의 호수입니다’라는 작은 팻말이 있다. 백조는 10월 말부터 이듬해 4월 말까지 여기서 논다. 뽀드득뽀드득 소리를 내는 눈길이 끝났나 싶더니 10여 명이 들어갈 만한 아담한 노천온천 너머로 호수에서 온천을 즐기는 백조 약 120마리가 나타났다.

물안개처럼 느릿느릿 움직이는 수증기, 한가로이 목욕하는 백조, 설원과 다름없는 호수, 햇빛에 반사된 눈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산…. 이곳에서의 시간은 도시보다 한참이나 더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백조를 피사체 삼은 한 일본인 사진가 외에 여행자는 나뿐.

호수 주변을 서성이자 관리인 할아버지가 손짓을 하며 “온천에 들어가도 된다”고 말했다. 온천은 연중무휴이며 24시간 무료. 겨울 호수를 바라보며 백조와 함께하는 온천이라니. 커다란 바위로 남탕, 여탕을 구분해 놓은 온천에 발을 담갔다. 살짝 뜨겁다는 느낌이 들 정도. 쌉쌀한 냄새가 나는 온천은 미끌미끌했다. 온천 성분표를 보니 나트륨이 많이 들어 있었다. 탈의실 문 앞에 누드는 금지이며, 수영복 등 적절한 옷을 입으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원수의 온도는 63도로, 보통 38∼43도의 온도에서 온천을 할 수 있다.

평일 오전 스나유 건너편 주차장에 대형 관광버스가 세 대 서 있었다. 하나는 일본 관광객이었고 나머지 두 대는 중국 관광객을 싣고 온 것이었다. 저마다 백조를 향해 카메라 셔터를 쉼 없이 눌렀다. 정오 즈음에는 50m쯤 되는 모래사장이 꽉 찰 정도로 여행자들이 몰려왔다. 200마리가 넘는 백조는 사람들의 ‘출몰’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유황냄새로 가득 찬 이오 산. 활화산의 기세를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다. 구시로=심은정 프리랜서
유황냄새로 가득 찬 이오 산. 활화산의 기세를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다. 구시로=심은정 프리랜서
여름에는 호수에서 오리보트나 배를 타고, 모래밭을 삽으로 깊게 파서 온천을 즐길 수 있다. 호숫가 모래밭을 조금만 파도 온천이 솟아난다. 겨울에는 모래밭을 못 파게 돼 있어 기존에 있는 족탕 시설을 이용하면 된다. 스나유에는 두 곳의 기념품 판매점 및 매점, 식당이 있다. 여기서 온천에 익힌 달걀을 맛볼 수 있다. 5개에 300엔. 보통 삶은 달걀과 큰 차이는 없지만 백조가 노니는 호수를 보면서 먹는 기분이 색다르다. 한적한 시골 동네라 겨울철에 영업을 하지 않는 가게가 많기 때문에 이 주변을 돌아볼 계획이라면 이곳에서 식사를 하거나 가와유(川湯)온천 쪽 동네로 가야 한다.

굿샤로 호를 다 봤다면 스나유에서 동쪽으로 10km 떨어진 곳에 있는 이오(硫黃) 산도 신기한 볼거리다. 512m의 활화산으로 산 곳곳에서 유황 성분이 섞인 수증기가 ‘슉슉’ 소리를 내며 기세 좋게 피어오른다. 산이 보이는 도로에서부터 유황 냄새가 진동한다. 수증기 구멍 주변은 유황으로 노랗게 물들어 있다. 이오 산에서 또 동쪽으로 가면 또 다른 칼데라호인 마슈(摩周湖) 호를 볼 수 있다. 마슈 호는 얼지 않는 호수로 한겨울에도 푸른빛을 자랑한다.

구시로 공항 외벽에는 두루미 세 마리가 장식돼 있다. 수렵으로 인한 남획, 개발에 따른 서식지 감소로 사라진 줄 알았던 두루미가 1926년 구시로 습원에서 다시 발견된 뒤 이곳은 두루미 서식지로도 이름을 알리고 있다. 특히 먹이가 부족한 겨울철에는 일정한 장소를 정해 먹이를 주기 때문에 모여드는 두루미를 촬영하려는 이들이 일본 전역에서 찾아온다. 두루미 관찰센터, 쓰루이(鶴居) 두루미 보호구역, 쓰루미다이(鶴見臺)에서 겨울철 먹이를 준다.

낯선 여행자에게 구시로가 선사하는 것은 ‘자연’이었다. 눈길에도 끄덕 없는 부츠를 신고 고즈넉한 시골길을 천천히 걷기, 맑은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기, 온천을 마친 뒤 한편에서 털을 말리며 졸고 있는 백조를 느긋이 바라보기, 뜨끈한 온천에 발 담그고 푸르디푸른 겨울하늘을 마음껏 보기, 고고하게 걷는 두루미를 턱 괴고 지켜보기. 조금 아쉬운 마음으로 도쿄행 비행기에 올라 밖을 내다 보니 구시로는 작은 눈을 흩날리며 소박한 배웅을 하고 있었다.

▼구시로 가서 갓테돈 안먹어봤다면··· 여행의 재미 반은 놓쳤네요▼

연어 게살 새우 등 싱싱한 해산물 제맛
··· 숯불화로에 구워먹는 ‘로바타’도 별미
①와쇼이 시장에서 갓테돈용 횟감을 판매하는 상점. ②연어와 임연수어 등을 진열해 놓은 생선가게. ③ 값비싼 홋카이도산 털게.
①와쇼이 시장에서 갓테돈용 횟감을 판매하는 상점. ②연어와 임연수어 등을 진열해 놓은 생선가게. ③ 값비싼 홋카이도산 털게.

구시로에서는 명물 와쇼이(和商) 시장에서 갓테돈(勝手정)을 먹어봐야 한다. 와쇼이 시장은 해산물을 중심으로 한 실내 재래시장. 갓테돈은 ‘내 맘대로 덮밥’으로 원하는 해산물을 밥에 얹어 먹는, 일본식 즉석 회덮밥이다.

일단 시장을 한 바퀴 돌면서 어떤 것이 입맛을 당기는지 살펴봤다. 덮밥용 횟감을 파는 가게에는 갓테돈이라는 표시를 해뒀다. 연어, 연어알, 게살, 오징어, 생새우 등을 대여섯 점에100∼200엔에 판다. 원하는 재료를 골랐으면 시장 안에 있는 밥집에서 100엔을 주고 밥을 사서 해산물 가게에 가져다주면 갓테돈을 만들어준다. 그리고 시장 중앙에 있는 테이블에서 맛있게 먹으면 된다. 고르기가 번거롭다면 출입구 쪽에 갓테돈 세트메뉴를 파는 식당도 있다.

구시로는 일본식 바비큐인 로바타(爐ばた)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신선한 해산물의 맛을 즐기기 위해 구시로에서 이 요리법이 탄생했다는 설명. 여러 곳의 로바타 식당 중에 할머니가 직접 숯불구이를 해주는 식당을 가봤다. 숯불화로를 중심으로 ‘ㄷ’자로 앉게 만든 식당 안은 짭짤하고 고소한 향기로 가득했다. 말 없는 할머니가 화로를 지키며 생선을 굽고 있었다. 세 명이 작은 모둠회 한 접시, 시샤모와 임연수어 구이, 연어알·성게알 덮밥 등을 시켜 배불리 먹으니 1만 엔 정도가 나왔다. 벨벳같이 부드러운 삿포로 생맥주도 절대 빠뜨리지 말 것.

홋카이도가 해산물 산지지만 게 요리는 비싼 음식에 속한다. 털게와 킹크랩, 대게찜 한 접시와 게 샤부샤부, 게튀김 등이 나오는 코스는 1인당 7000엔. 삿포로에서는 이 정도 코스가 1만2000엔 이상이다. 가이드 안현숙 씨는 “이 밖에도 홋카이도에서는 소프트아이스크림, 감자, 옥수수 세 가지는 꼭 맛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구시로=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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