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메트르스키! 百年雪國 그렇게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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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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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스키 100주년··· 발상지 니가타 현을 가다

묘코 산 아카쿠라 간코리조트 스키장의 깊은 눈에서 즐기는 파우더 스킹 모습. 산 아래 노지리 호수를 배경으로 묘코 고원을 관통하는 조신에쓰고속도로가 보인다. 스키어 톰 랭트리, 촬영 매트 헐. 사진 제공 묘코스노스포츠
묘코 산 아카쿠라 간코리조트 스키장의 깊은 눈에서 즐기는 파우더 스킹 모습. 산 아래 노지리 호수를 배경으로 묘코 고원을 관통하는 조신에쓰고속도로가 보인다. 스키어 톰 랭트리, 촬영 매트 헐. 사진 제공 묘코스노스포츠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써 일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 ‘유키쿠니(雪國)’는 이렇게 시작된다. 바로 이 유키쿠니의 무대가 니가타 현이다.

올 시즌 일본 니가타 현의 스키장과 마을은 축제분위기다. 가는 곳마다 ‘원조스키천국’이라는 글귀가 보인다. 스키(알파인)발상 100주년을 맞아서다. 일본에 스키가 첫선을 보인 것은 1911년 1월 니가타 현의 다카다(현 조에쓰 시)에서다. 유럽에서 개발된 지 꼭 21년 만이었으니 꽤나 빨랐다. 우리가 일본 스키 100년에 관심을 갖는 데는 이유가 있다. 니가타에서 배출된 한 일본 스키어에 의해 10년 후 한반도에 현대스키가 전해져서다. 제국주의와 침략전쟁에 얽힌 스키역사를 일본스키 100년과 더불어 살펴본다.

○ 츠다르스키의 릴리엔펠트 식 알파인 스키와 슈템보겐의 발명

스키는 두 종류다. 노르딕(Nordic)과 알파인(Alpine). 노르딕은 평지 설원, 알파인은 설산용이다. 노르딕 역사는 깊다. 4500년을 넘어선다. 알파인은 정반대다. 121년 전(1890년) 오스트리아의 릴리엔펠트에서 개발됐다. 짧고 철제바인딩을 장착한 ‘변형’노르딕이었다.

신종스키는 새활주법을 요구했다. 그 또한 개발자 마티아스 츠다르스키(1856∼1940) 몫이었다. 그는 교사이자 조각가, 발명가였다. 한없이 미끄러지는 설산에서 속도통제가 관건이었다. 1896년. 드디어 설산 스킹이 정복됐다. ‘슈템보겐’(Stembogen·저지 식 회전)’이란 스키테크닉이 완성된 것. 창(槍)을 닮은 긴 폴(한 개)을 좌우로 짚으며 플레이트를 홱 잡아 돌려 멈추거나 속도를 줄이는 ‘회전’기법이다. 모든 알파인스키 기술의 기본이다.

츠다르스키는 교습본까지 냈다. ‘릴리엔펠트 스키방식’(1896년)이 그것. 스키 탄생에 주목한 것은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군부다. 알프스에서 작전을 수행할 산악군단의 필수과제가 설산 정복이었기에. 츠다르스키는 곧 전쟁교육부에 채용됐다. 그의 임무는 인스브루크 스키학교에서 군인 대상 스키강습. 데오도르 에들러 폰 레르히(1869∼1945·슬로바키아 태생)도 그중 한 명이었다. 1900년부터 3년간 배우며 수제자가 됐다.

○ 전쟁이 엮어준 유럽과 일본의 스키 인연

알파인스키 개발기는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던 제국주의 창궐기. 유럽대륙은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을 잉태한 전운이 짙게 드리웠다. 지구 반대편의 동북아도 다르지 않았다. 두 차례 전쟁이 터졌다. 청일전쟁(1894∼1895)과 러일전쟁(1904∼1905년)이다. 승자는 모두 일본. 이 사실에 유럽열강은 화들짝 놀란다. 청나라를 쓰러뜨린 현대적 대포와 기관총에, 막강 러시아의 발틱 함대를 괴멸시킨 쓰시마 해전의 괴력 함포와 치밀한 해상전술에….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 레르히 소령을 일본에 파견한 것은 그런 배경 속에 내려졌다. 당시 그는 작전국 소속이었다.

한편 레르히가 한창 스키를 배우던 1902년 1월 하순. 혼슈 최북단 아오모리 현의 하코다 산(1584m)에서는 대참사가 발생한다. 아오모리 주둔 보병5연대(210명)가 혹한기에 행군훈련 도중 조난당해 199명이 숨진 것. 청일전쟁 중 철도공습으로 고립돼 큰 희생을 치렀던 군부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계획한 훈련이었다. 물론 2년 후 러일전쟁에 대비한 것이다.

○ 나가오카 가이시 사단장과 레르히 소령의 운명적 만남

하코다 산 참사 당시 나가오카 가이시(1856∼1933)는 육군 보병9여단장이었다. 2년 후 대본영으로 옮겨 육군부 참모차장으로 러일전쟁을 이끈 인물이다. 종전 후(1909년) 중장으로 진급해 제13사단장에 부임하는데 임지가 바로 니가타 현 다카다(高田)다. 100년 전 일본 최초로 스키 강습이 이뤄진 스키 발상지 바로 거기. 레르히 소령과의 운명적 만남을 예고한 인사였다.

니가타는 일본에서도 눈이 가장 많이 내리는 산악지방이다. 홋카이도보다도 적설량이 많을 정도로. 나가오카 중장의 제13사단은 바로 이런 눈 고장에 주둔했다. 그런 만큼 하코다 산의 대재앙이 그에게 허투루 다가올 리 없을 터. 부임 후 자나 깨나 이 엄청난 눈을 이겨낼 묘책 마련에 부심했다.

그는 영관급 장교시절 주독일 일본대사관에 무관으로 수년간 근무했던 엘리트 군인. 츠다르스키에 의한 스키 개발과 인스브루크 스키학교 등에 관한 정보를 일찌감치 입수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경력 덕분이다. 그는 레르히 소령의 일본 방문을 몰랐다. 츠다르스키의 수제자인 사실은 더더욱 몰랐고.

그래서 레르히가 오기 전 주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일본대사관에 ‘스키’ 공수를 요청했다. 눈 난관 극복의 해결책이 될지도 모른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어렵게 구해온 스키도 잠자는 신세를 면치 못했다. 탈 줄 아는 이가 없어서다. 레르히 소령의 방일 소식은 그런 와중에 접한 낭보. 그는 주저 없이 레르히 소령에게 스키를 갖고 와 가르쳐달라고 부탁 전갈을 넣는다.

1909년 9월 요코하마 항. 레르히 소령이 일본에 상륙했다. 스키 2대도 함께. 소령은 석 달간 전국을 시찰한다. 그리고 이듬해 1월 초 니가타로 향한다. 나가오카 중장을 만나 스키를 전달하고 가르치기 위해. 두 사람의 역사적 만남. 레르히는 스키강습계획부터 짰다. 도쿄에 보관 중이던 스키 10대도 곧 도착했다.

○ 1911년 니가타 현 다카다의 첫 스키 강습현장

드디어 첫 강습. 1911년 1월 12일 오전 8시 다카다의 제13사단 58보병연대 제1대대 설중 연습소(현 조에쓰 시내 조세이 중학교 운동장)였다. 호리우치 분지로 대령(당시 58연대장) 등 장교 12명이 레르히 소령 앞에 섰다. 드디어 첫 구령이 떨어졌다. ‘메트르 스키’(Mettre ski!·스키를 신어라). 일본 스키 100년 역사를 활짝 여는 첫마디다.

그런데 첫 명령은 프랑스어였다. 레르히는 슬로바키아에서 태어난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장교다. 그렇다면 독일어가 공식어다. 그럼에도 프랑스어로 강습한 이유. 거기엔 사연이 있다. 통역장교 야마구치 대위의 시원찮은 독일어 실력 때문이다. 레르히는 독일어보다는 프랑스어통역이 더 낫다고 판단해 프랑스어강습을 결정한 것. 레르히는 영어를 비롯해 6개 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군인이었다. 총 3년간의 일본 체류 동안 일본어를 습득하는 놀라운 실력을 보이기도 했다.

강습은 주 3, 4회씩 계속됐다. 장소는 다카다 외곽의 가나야 산. 대상은 대위급 이상 고급장교였다. 그런데 장교부인까지도 참여했다. 나가오카 중장의 결정이었다. 그는 판단이 빠른 군인이었다. 스키강습을 지켜보며 금방 깨우쳤다. 스키가 산악군단 작전에 그리 도움이 되지 못할 거라는 것을. 오히려 체력향상을 도울 국민스포츠로서 가능성을 본 것이다.

조에쓰=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 일본스키 100주년-전쟁이 맺어준 스키역사 ▼

그의 판단은 정확했다. 주민의 호응도 대단했다. 남녀노소 구별 없이 강습에 몰렸다. 이웃한 나가노 현에서도 찾아왔다. 강습 한 달여 만에 결성된 ‘다카다 스키클럽’이 그 열기를 증명한다. 세계 최초로 상트안톤(오스트리아 티롤 주 인스브루크에서 한 시간 거리 아를베르크 계곡의 산악마을)에서 스키클럽이 결성된 게 1901년이었으니 무척이나 빠른 것이었다.

○ 2011년 1월 14일 눈 덮인 가나야 산

가나얀 산은 일본 스키어에게 ‘스키성지’다. 100년 전 스키가 시작된 곳이자 동시에 ‘스키발상기념관’과 레르히 소령의 동상이 있어서다. 매년 1월 12일 동상 밑에서는 ‘스키의 날’ 기념식이 열린다. 스키의 날은 하코다 산 참사 100주년인 2002년에 제정됐다. 그날이 되면 전일본스키연맹(SAJ) 등 스키 관계자는 물론이고 다카다 스키클럽 회원도 참석한다. 회원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100년 전 스키복장을 하고 나와 가나야 산에서 장대 폴을 이용한 슈템보겐 기술로 시범을 보인다.

올해는 이틀 후인 1월 14일 가나야 산을 찾았다. 눈도 없이 바람만 쌩쌩 불던 3년 전과 달리 흰 눈에 덮여 있었다. 스키 발상 100주년 기념 이벤트로 기획된 어린이 스키강습도 한창이었다. 스피커로 연신 레르히 짱을 연호하는 로고송도 흘러나왔다. 레르히 동상은 가나야 산이 조망되는 맞은편 언덕 정상에 있다. 군복차림에 스키를 신고 긴 장대 폴 한 개를 든 채 오른쪽 스키를 약간 앞으로 내민 자세다. 수염이 인상적인 그의 얼굴은 산 아래를 향하고 있다. 눈은 아마도 첫 강습지이자 나가오카 중장의 관사가 있는 조에쓰 시내(옛 다카다)를 응시하리라.

그 언덕 아래 오스트리아 슐로스(작은 성)풍의 하얀 건물이 있다. ‘스키발상기념관’이다. 레르히로부터 비롯된 일본 스키 100년 역사가 고스란히 전시돼 있다. 기원전 시작된 인류의 스키역사와 더불어. 그중 돋보이는 게 있다. 일제가 1912년 함경도에서 수집했다고 밝힌 우리 전통 썰매(雪馬·설마에서 비롯된 ‘썰매’는 스키의 우리 식 이름)다. 4세기 것으로 추정(탄소연대)되는 귀중한 유물이다.

우리 썰매의 모습은 북유럽에서 발견된 4500년 전 스키와 형태가 비슷하다. 놀랄 일이다. 하지만 감탄은 아직 이르다. 설면에 닿는 바닥에 판 긴 홈을 보기 전까지는. 썰매는 바인딩이 가죽 끈이다. 바닥에 뚫은 구멍으로 끈을 넣어 발을 동여맨다. 그 경우 끈이 바닥에 노출돼 저항을 일으킨다. 홈은 그 방지 수단. 그런데 놀랍게도 4세기에 그런 ‘첨단스키’는 지구상에서 이것뿐이다. ‘일본 스키발상 100년’을 무색케 하는 우리 선조의 쾌거다.

○ 스키 발상 100주년 이벤트

◇니가타 현 ▽홈페이지: www.niigata-snow.jp ▽한국 스키어 대상으로 특별 프로모션: 여행사의 스키투어상품으로 니가타에 가서 호텔에 투숙할 경우 2박 이상 체류 시 1박당 리프트권 한 장(4000엔 내외)을 제공. 내일여행, 모두투어, 브라보 재팬컴, 스키익스프레스, 에나프투어, 여행달인, 일본스키닷, 투어&스키, 하늘땅여행, 한진투어.

◇일본스키발상기념관 ▽이용: 오전 9시∼오후 5시, 월요일 쉼. 입장료 300엔. △찾아가기(철도): 도쿄∼나가노신칸센∼나가노∼신에쓰혼센∼다카다(2시간 소요) △현지 전화 025-523-3766

○ 여행정보

◇조에쓰 시 ▽인터넷: www.city.joetsu.niigata.jp ▽위치: 현 남서쪽 동해안. 산과 바다, 평야가 두루 어울린 일본 최대의 적설량 지대. 주민 21만 명. 예부터 도쿄 오사카 나고야를 잇는 해상 육상 교통의 요지. 다카다 평야와 나오에쓰 항구를 중심으로 발달.

조에쓰=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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