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5월 마더 테레사 수녀가 방한했다. 그가 머문 명동성당에 사람들이 밀물처럼 몰려들었다. 테레사 수녀는 이들에게 물었다. “여러분은 이 나라의 가난한 이들에 대해 알고 있나요. 나를 만나려는 열정으로 그들을 만나고 있습니까?” 그 순간 사람들의 얼굴은 굳어졌다.
인도 캘커타에 사랑의 선교회를 설립해 가난하고 아픈 이들을 돌본 테레사 수녀에게 힌두교도들은 적대감을 보였다. 한 힌두교도가 수녀를 몰아내겠다며 찾아왔다. 하지만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살피며 얼굴 한번 찌푸리지 않는 수녀를 보고는 발길을 돌렸다. 힌두교도에게 돌아간 그는 말했다. “수녀를 꼭 쫓아내겠다고 다시 약속합니다. 그런데 그보다 먼저 여러분이 약속해 주세요. 당신들의 어머니와 누이에게 지금 수녀가 하는 일을 대신하게 말이오. 나는 살아있는 여신을 보고 오는 길이랍니다.”
사랑의 온정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연말. 이 책에는 봉사와 기부로 세상을 덥혀온 사람들의 따뜻한 이야기가 담겼다.
오웅진 신부가 충북 음성군에 꽃동네를 세운 계기는 최귀동 할아버지와의 만남이었다. 최 할아버지는 유복한 집안에서 자랐지만 일제의 강제징용에 끌려가 몸과 마음의 병을 얻었다. 고향에 돌아와 구걸로 연명했지만 “밥이면 충분하다”며 돈이나 옷가지, 과일은 받지 않았다. 동냥을 다니며 대문을 닫아주고 떨어진 빨래를 다시 곱게 널어줬다. 사람들은 거지가 아니라 천사라고 했다. 오 신부는 할아버지의 거처가 궁금해 가봤더니 18명의 걸인과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동상으로 부어터진 발을 종이와 새끼줄로 칭칭 감고 그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동냥을 다녔던 것이다. 오 신부는 여기서 깨달음을 얻어 꽃동네를 열었다.
임종국 씨는 국내 조림왕의 시초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으로 벌거숭이가 된 우리나라 산에 가장 먼저 나무를 심고 가꿨다. 사람들은 “먹고살기도 힘든데 무슨 나무를 심느냐”고 비아냥거렸다.
전남 장성군 축령산에 편백나무와 전나무 숲을 가꾸던 어느 해 심한 가뭄이 들었다. 그는 죽어가는 나무를 살리기 위해 밤새워 물지게로 물을 날랐다. 어깨가 피투성이가 된 그를 보고 가족과 동네 사람들도 감동해 횃불을 들고 도왔다. 정부도 그의 조림사업에 감명을 받아 숲을 가꾸기 시작했다. 나무를 심는 것이 나라 사랑의 길이라는 그의 말처럼 이제 조림은 지구별을 사랑하고 모든 생명체를 살리는 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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