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있는 어휘가 늘면 사물에 대한 그리움이 커집니다. 말이라는 것이 생각의 재료인데 사물의 이름을 많이 알면 상상력이 풍부해집니다.”
신간 ‘도사리와 말모이, 우리말의 모든 것’(하늘연못)의 저자 장승욱 씨(48·사진)는 순우리말을 발굴하고 알려온 사람이다. 새 책 외에도 ‘한겨레 말모이’ ‘토박이말 일곱 마당’ 등 우리말에 관한 책을 여러 권 냈다. 책 제목 중 ‘도사리’는 바람이나 병으로 떨어진 열매를 뜻한다. 저자는 책머리에 “우리말 도사리를 한 광주리를 모아 팔겠다고 시장 귀퉁이에 나앉아 있는 심정으로 책을 냈다”고 말했다. 이 책에서 그는 생소한 우리말의 유래와 쓰임새를 재미있게 소개하고 2만5000여 개 단어의 뜻풀이를 담았다.
책에서 먹음새(음식을 먹는 태도)를 나타낸 말만 봐도 ‘걸쌍스럽다’(먹음새가 푸짐해 보기에 탐스럽다), ‘데시기다’(먹기 싫은 음식을 억지로 먹다), ‘조잔부리’(때를 가리지 않고 군음식을 먹은 일), ‘짓먹다’(지나치게 많이 먹다), ‘쩌금거리다’(입맛을 쩍쩍 다시며 맛있게 먹다) 등 낯익지는 않지만 친근한 말이 가득 담겼다.
장 씨는 1997년부터 남북한의 여러 국어사전과 용어사전을 ‘풀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 찾아가며 우리말을 갈피잡고 채집했다. “김주영 최명희 이문구 등 우리말을 잘 다루는 소설가의 작품에서 아름다운 말을 많이 찾았다”고 했다. 남영신 씨의 ‘우리말 분류사전’(한강문화사)도 큰 도움이 됐다.
그는 대학(연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하며 자연스럽게 우리말에 관심을 갖게 됐다. 군대를 다녀온 뒤 글 읽고 쓰기에 힘을 쏟기로 결심했는데 여러 책을 읽다 보니 모르는 우리말이 많았다. 그때부터 말 모으기를 시작했다.
1986∼98년 신문사와 방송사 기자로 일했다. 그 뒤 프리랜서 작가로 일하다가 3년 전부터는 출판사(지식을만드는지식) 편집주간을 맡고 있다. “그러고 보니 말로 먹고산 인생입니다. 말에 관심이 많은 저로서는 만족한 삶입니다.”
그는 50여 개국을 여행하며 20여 개 언어를 접했다고 했다. “그중에서도 순우리말의 어감이 가장 뛰어난 것 같아요. 입에 즐거운 말은 정신까지 맑고 기분을 유쾌하게 하는 효과가 있더군요.”
그는 요즘 몸에 얽힌 우리말을 정리한 책을 준비하고 있다. “몸의 부분을 묘사하는 말만 해도 책 한 권 분량이 됩니다. 손만 해도 손아귀, 손등, 손바닥 등등….” 그는 손금이 있는 부분만을 손바닥이라고 한다며 손가락 부분까지를 포함한 말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답은 손뼉입니다.”
그에게 우리말에는 한자말도 많은데 너무 순우리말만 고집하는 것은 아니냐고 물었다. “한자를 배척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자를 모르면 세상의 이치를 놓치는 것이 많아요. 북한 사람들은 한자를 안 써 말의 바탕을 모릅니다. 우리말도 세상 이치를 깨닫기 위한 여러 방편 중 하나로 파고든 거죠.”
그는 술을 좋아해 ‘술통’(박영률출판사)이라는 에세이도 냈다. 술 먹고 살아온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인터뷰 내내 단답형 대답을 한 그는 ‘과묵한 편인데 술을 먹으면 더 말이 없어진다’고 했다. “말주변 없고 말하기 싫어하는 제가 말에 관한 책을 여러 권 낸 것도 아이러니죠. 그런데 아이러니의 순우리말은 뭘까요? 아직 답을 못 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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