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대 조선전기 신도비展…퇴계가 손수 지은 묘갈 탁본 처음 공개

동아일보 입력 2010-09-16 03:00수정 2010-09-16 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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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 박물관에 전시된 퇴계선생묘갈명(退溪先生墓碣銘·왼쪽) 탁본. 사진 제공 성균관대 박물관
‘태어나서는 크게 어리석었고 장성하여서는 병이 많았네. 중년에는 어찌 학문을 즐기게 됐고 말년에는 어찌 벼슬에 올랐던고(生而大癡 壯而多疾 中何嗜學 晩何도爵·생이대치 장이다질 중하기학 만하도작).’

퇴계 이황(1501∼1570)은 생전에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며 무덤 앞에 놓일 묘비(묘갈·墓碣) 문구를 이같이 지었다. 높이 1.2m의 이 묘비 탁본(사진)이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됐다. 서울 성균관대 박물관이 12월 13일까지 개최하는 ‘조선전기 신도비전’. 태종 세종 등 국왕의 신도비(神道碑) 탁본 4점을 비롯해 퇴계의 묘갈 탁본, 율곡 이이와 한명회 등 조선 문인의 신도비 등 30여 점이 전시된다.

신도비는 왕이나 고관의 무덤으로 가는 길목이나 마을 입구에 세워 그들의 공덕을 기리는 비석으로 고인의 덕망과 공훈 행적 등을 기록했다. 크기는 대개 1.5∼2m이며 태종 신도비는 4m에 달한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경북 안동시에 있는 퇴계의 묘비다. 퇴계는 후손들에게 무덤 주변에 신도비나 의물(儀物)을 일절 세우지 말라고 당부했다. 박물관의 김대식 학예실장은 “당연히 신도비를 세울 정도의 입지였지만 이를 고사하고 자신의 묘비에도 스스로를 낮출 정도로 겸손했던 퇴계 선생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묘비 탁본을 전시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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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신도비 제작을 만류한 퇴계는 다른 이의 신도비 제작을 위해 직접 붓을 들기도 했다. 영의정을 지낸 정광필의 신도비 탁본에서 또박또박 써내려간 퇴계 특유의 글씨체를 볼 수 있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신도비는 세월이 지나 풍화되면서 글자가 마모된 경우가 많다. 경기 파주시에 있는 율곡 이이의 신도비는 6·25전쟁 때 총에 맞아 훼손됐다. 전시된 탁본에도 예닐곱 군데의 총탄 자국이 허옇게 나왔다. 세종대왕의 신도비는 아들 안평대군이 직접 글을 써 눈길을 끈다. 02-760-0216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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