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상의 섹시한 와인이 좋다! 6] 페라가모, 구찌, 보테가 베네타가 만드는 와인 마셔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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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9월 15일 16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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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패션 그룹, 와인에 빠지다

▲ 페라가모가 만드는 ‘일 보로’.
▲ 페라가모가 만드는 ‘일 보로’.

세계적인 명품 그룹 페라가모에서 와인도 생산하고 있는 사실을 아는가.

페라가모 그룹은 이탈리아 토스카나에서 ‘일 보로’(Il Borro)를 만들어 시장에 내놓고 있다. 일 보로는 원래 메디치 가문이 1860년부터 와인을 생산한 마을의 이름. ‘개울’이라는 뜻으로 중세의 느낌을 여전히 내고 있는 고요한 마을이다. 그런데 이곳에 ‘필’이 꽂힌 페라가모 그룹은 1993년 마을의 땅을 통째 사들였다. 명품 그룹답게 통이 다르다. 그리고 포도밭을 새로 일구기 시작했다.

▲ 구찌의 모회사 PPR이 만드는 ‘샤토 라투르’.
▲ 구찌의 모회사 PPR이 만드는 ‘샤토 라투르’.
좋은 와인을 내놓기 위해 서둘지도 않았다. 밭에 새 생명을 불어 넣고, 낡은 저장고를 바꾸면서 6년 후인 1999년에서야 첫 빈티지를 생산했다. 그리고 2004년 대대적인 양조장 리모델링으로 자신의 마음에 딱 드는 양조장을 구축하면서 와인에 페라가모 그룹만의 색깔을 입히기 시작했다.

페라가모는 이탈리아의 명품 그룹이지만 이탈리아 컬러만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대신 국제적인 트렌드와 감각에 맞춰 이탈리아의 분위기를 낸다. 일 보로 또한 마찬가지다. 이탈리아 토착 품종인 산지오베제와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시라 등 국제적인 품종을 함께 재배해 와인을 만든다. 한 병의 와인 안에서 이탈리아와 세계가 만나는 거다. 일 보로 와이너리는 2001년 일 보로 1999 빈티지를 세상에 처음 내놨고, 페라가모의 명성에 걸맞은 와인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아는 쟁쟁한 명품 그룹이 와인을 만드는 곳은 비단 페라가모 그룹만은 아니다.

구찌, 보네가 베네타, 입생 로랑의 모회사인 프랑스 유통그룹 PPR은 ‘샤토 라투르’를 갖고 있다. PPR 창업자인 프랑수아 피노 회장은 1963년 영국으로 넘어갔던 소유권을 1993년 프랑스로 되찾아온 인물. 그는 영국에서 샤토 라투르를 매물로 내놓았다는 소식을 들은 후 48시간도 안 돼 자신이 와이너리를 사야겠다는 결심을 했단다.

피노 회장은 여러 명품 브랜드를 거느리고 있지만(그 유명한 크리스티 옥션도 그의 소유다) 특히 샤토 라투르를 아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와인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최고의 와인을 만든다는 자부심 때문 아닐까.

▲ 토즈가 생산하는 ‘피아니로시’. 라벨에 빨간 점이 인상적이다.
▲ 토즈가 생산하는 ‘피아니로시’. 라벨에 빨간 점이 인상적이다.
토즈(Tod's) 그룹은 이탈리아 토스카나 마렘마 지역에서 ‘피아니로시’(Pianirossi)를 생산한다. 직원으로 입사해 전문 경영인 자리까지 오른 토즈의 스테파노 신치니 CEO는 1999년 땅의 아름다움에 매료돼 이탈리아 양조 대가로 꼽히는 카를로 페리니, 조이아 크레스티로 팀을 꾸려 포도밭을 만들었다.

피아니로시는 산지오베제, 몬테풀치아노, 카베르네 소비뇽, 프티 베르도 등 네 가지 품종을 블렌딩해 만든다. 그런데 이 블렌딩에는 한 가지 재미난 사실이 숨어있다. 토스카나 지역은 전통적으로 대표 품종인 산지오베제를 베이스로 와인을 만든다. 그런데 신치니가 몬테풀치아노 품종을 블렌딩에 살짝 밀어 넣었다. 신치니의 고향 사랑이 이유다.

신치니는 토스카나 인근에 위치했지만 토스카나의 명성에 가려 진가를 드러내지 못한 마르케 지역 출신이다. 마르케 지역의 대표 품종은 산지오베제가 아닌 몬테풀치아노. 신치니는 피아니로시를 만들 때 꼭 몬테풀치아노 품종을 넣어줄 것을 요구했고, 이렇게 해서 몬테풀치아노의 풍미를 함께 느낄 수 있는 와인이 탄생했다.

피아니로시의 라벨에 그려진 붉은 점은 붉은 점토질 토양으로 이뤄진 포도밭을 의미하면서 동시에 신치니의 와인에 대한 열정을 상징한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건 신치니가 직접 말했던 것처럼 와인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쉽게 기억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는 점이다.

▲ 샤토 라투르 와이너리의 입구.
▲ 샤토 라투르 와이너리의 입구.

스와로브스키 그룹도 아르헨티나 멘도사 지역에서 ‘노통’(Norton)을 내놓고 있다. 스와로브스키 그룹의 오너인 게르노트 랑게스 스와로브스키는 여행 도중 우연히 노통 와이너리를 발견하고 그 자리에서 바로 와이너리의 일부를 샀다. 그리고 얼마 후 나머지 돈도 모두 지불하고 전체를 사들였다.

따사로운 태양과 미네랄이 풍부한 토양의 매력을 거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스와로브스키는 1989년 아르헨티나에서 처음으로 와이너리를 매입한 외국인이 된다.

LVMH 그룹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모엣 헤네시’를 만든다. 뿐만 아니라 ‘돔 페리뇽’ ‘뵈브 클리코’도 역시 생산한다. 상류층 고객을 타깃으로 하는 루이 비통은 주 고객이 고급 주류를 소비하고 있다는 사실에 착안, 1987년 최고급 샴페인과 코냑을 생산하는 모엣 샹동, 헤네시와 합병하면서 이름을 현재의 LVMH로 바꿨다.

사업은 예상대로 잘 됐고, 이에 탄력 받은 그룹은 1996년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스위트 와인인 ‘샤토 디켐’을 인수하면서 날개를 단다. 이름만 들어도 입이 쩍 벌어지는 ‘돔 페리뇽’ ‘뵈브 클리코’ ‘크뤼그’ 등이 모두 다 LVMH에서 만드는 와인이다.
글·이길상 와인전문기자
사진제공·나라식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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