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가 본 이 책]강호순 김길태 유영철 누가 더 악할까

동아일보 입력 2010-09-04 03:00수정 2010-09-0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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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의 해부학/마이클 스톤 지음·허형은 옮김/644쪽·2만8000원/다산초당

범죄심리학의 아인슈타인…美강력범죄 600여건 분석
인간의 악 22단계로 분류…공격충동의 뿌리 파헤쳐
2003년 달리는 대구 지하철에서 인화물질에 불을 붙여 300여 명의 사상자를 낸 방화살인범 김대한, 2004년 22명의 여성과 노인을 연쇄살해하고 시체를 훼손한 유영철, 2007년 두 초등학생 여자 어린이를 유인해 성폭행하고 살해한 정성현, 2008년 서울 논현동 고시원에 불을 지르고 대피해 나오던 사람들을 칼로 마구 찔러 13명을 사상한 정상진, 2006년부터 2009년까지 버스정류장에서 귀가하던 여성 7명을 승용차로 납치해 무참하게 살해한 뒤 암매장한 강호순, 2010년 집에 있던 여중생을 납치해 성폭행한 뒤 살해한 김길태….

이들 중 누가 더 악한가? 이들은 왜 그렇게 악한 짓을 저질렀을까? 이런 극악무도한 범죄자들은 왜 대부분 남자이고 그 피해자들은 여자일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사람이라면 미국의 정신과 의사이면서 유명 텔레비전 진행자인 ‘마이클 스톤’이 쓴 ‘범죄의 해부학’을 읽어 보길 권한다.

저자는 미국에서 발생한 600건이 넘는 강력범죄사건을 분석한 뒤 ‘인간의 악’을 22단계로 분류했고, 이 책에는 그중 200여 건이 소개돼 있다. 스톤의 22단계 ‘악의 등급’ 분류체계에 따르면 가장 ‘약한’ 1단계의 ‘악’은 ‘정당화될 수 있는 살인’이고, 가장 ‘강한’ 22단계의 ‘악’은 피해자에게 고통을 주고 괴롭힘으로써 병적인 쾌감을 맛보기 위해 행하는 ‘사디즘적 고문 살인’이다.

같은 연쇄살인이라도 그 동기와 범행 방법, 피해자를 괴롭힌 정도, 범인의 심리 등에 따라 등급이 나뉜다. 이미 강호순 사건과의 유사성 때문에 언론에 소개되어 우리에게도 익숙한 연쇄살인범 ‘테드 번디’는 17등급이고, 버지니아공대 총기살인범 조승희 사건으로 재조명된 텍사스대 망루 다중 저격 살인범 ‘찰스 휘트먼’은 8등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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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다산초당
살인사건과 그 범인들을 통해 ‘인간의 악’을 탐색한 저자가 주목한 2가지 인간 욕구의 특성은 ‘이기적 자기애’와 ‘권력욕이 빚어낸 분노’다. 우리가 극악무도하다고 부르는 살인범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지나치게, 그리고 오직 자신만을 생각하기 때문에 피해자가 겪는 아픔과 고통, 그 주변 사람이 느끼게 될 분노와 상실감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자신에게 더 큰 쾌감을 주기만 한다면, 피해자에게는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을 안긴다 해도 상관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극단적 행동들은 일상생활에서는 전혀 충족되지 않는, 남보다 우월하다고 느끼고 싶고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고 싶은 권력욕과 통제욕이 쌓이고 쌓인 결과다. 그 권력욕이 남을 괴롭히고 모욕하고 살해하고 싶은 공격 충동으로 발현된 것이다.

저자는 ‘악행’의 부수적인 원인으로 유전, 성장환경, 뇌손상, 정신장애, 그리고 약물중독 등을 제시한다. 저자와 다른 많은 범죄심리학자들이 악몽의 괴로움을 감수하면서까지 극단적인 악인들과 그들의 악행을 분석하고 ‘해부’하는 이유와 의미는 무엇일까? 저자는 악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한다. 악에 대해 제대로 이해해야 각 악행에 대한 적절한 처벌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범죄자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욕구와 심리의 심각성보다는, 그 범죄가 낳은 결과에 따라 처벌의 수위를 결정해 왔다.

김길태는 이미 과거에 한 여성을 10일간 감금하며 지속적으로 극악한 성폭행을 한 죄로 검거되었지만, 살해하거나 중상을 입히지는 않았다는 이유로 8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뒤 출소하자마자 여중생을 납치해 성폭행한 뒤 살해했다. 반면에 그 욕구와 심리의 악성(惡性)은 약하지만 결과가 심각했던 범죄자들의 경우 극형을 피할 수 없었다. 저자는 우리가 악에 대해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되면 결과가 아닌 욕구와 심리의 악성에 따라, 적절한 치료와 교정을 통해 재활의 기회를 부여할 자와 결코 사회에 다시 내보내서는 안 될 자를 구분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나아가 어린이에게서 이기적 자기애와 공격성의 징후를 발견해 미리 치료하고 교정함으로써 문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매우 논란의 여지가 있는 주장이다. 특히 과학보다는 윤리적 규범과 종교적 신념을 더 중요시하는 우리 사회에서, 대구 지하철 방화참사 범인 김대한을 ‘등급 3’ 정도로 낮게 평가하고, 법정 최고형이 아닌 치료감호와 재활교정 과정을 거쳐 사회에 복귀시켜야 할 대상이라고 주장한다면 어떤 반응이 나올지 궁금해진다. 아동을 성폭행했지만 살해하거나 중상을 입히지 않은 자를 ‘등급 20’으로 평가하고 사형이나 무기징역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반발할 법학자들의 표정이 눈에 선하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주의할 점도 있다. 정신의학자가 쓴 책이라는 선입견에 아주 새로운, 그리고 깊고 전문적인 학술적 분석 등을 기대하는 독자라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저자 스스로도 밝히고 있지만 정신의학자의 연구보다는 방송 진행자로서의 경험과 인식을 더 많이 담고 있기 때문이다. 마니아라면 이미 읽은 연쇄살인, 프로파일링, 사이코패스 관련 책들과의 차별성을 크게 발견하지 못하겠다고 불평할 수도 있다. 또 한 가지, 제목 번역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악의 해부(anatomy of evil)’라는 매우 분명한 메시지를 담은 원제목이 왜 ‘범죄의 해부학’이라는 정체불명의, 애매모호하고 이상한 용어로 바뀌어야 했을까? 다만, 혹시 저자의 다음 책이 전쟁 상황에서의 인간의 악과 악행을 다룰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 선정이라면 고개를 끄덕여주고 싶다.

표창원 경찰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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