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을 최고권력’ 사또의 동헌 밖 일상은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7월 28일 03시 00분


새벽 5시 출근… 환곡 땐 밤늦게까지 창고 점검…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조선시대 수령들은 재판이나 환곡 등의 업무로 하루 8∼12시간씩의 근무시간을 엄격히 지켰다. 19세기 말 재판을 진행하고 있는 수령.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조선시대 수령들은 재판이나 환곡 등의 업무로 하루 8∼12시간씩의 근무시간을 엄격히 지켰다. 19세기 말 재판을 진행하고 있는 수령.
사또나 원님으로 불린 조선시대 지방관에 대한 연구는 지금까지 주로 통치기구나 제도의 관점에서 다뤄져 왔다. 이와 달리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은 문집이나 일기, 서찰 등을 통해 수령 개인의 삶을 세세하게 들여다보는 ‘생활사’의 관점에서 연구해 오고 있다. 한 인간으로서 수령의 삶 속에 녹아 있는 시대상을 읽기 위해서다. 영남문화연구원은 ‘수령 연구’에 참여한 연구자 10명의 논문 13편을 집대성해 ‘수령의 사생활’(경북대출판부)을 8월 초 발간한다.

수령은 군현의 행정 사법 치안 군사 등에 관한 모든 권한을 가졌던 최고 권력자였다는 점 때문에 하루 일과도 자의적으로 보냈을 것으로 인식하기 쉽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이선희 한국학중앙연구원 전임연구원은 ‘수령의 출퇴근과 근무방식’에서 수령의 업무일기와 관안(官案·관료의 업무평가 표) 등을 분석해 수령들도 관원들과 마찬가지로 묘시(오전 5∼7시)에 출근해 통상 신시(오후 3∼5시)에 퇴근하는 엄격한 공직 생활을 한 것으로 파악했다. 이 연구원은 “동헌에 앉아서 재판만 한 것이 아니라 환곡 업무를 볼 때는 고을의 멀고 가까운 창고에 직접 나가 ‘좌기(坐起·집무 개시)’하며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업무에 시달리기도 했다”고 밝혔다.

수령의 권한은 막강했지만 수령은 고을의 ‘주인’일 수도 있었고 ‘나그네’일 수도 있었다. 세습적으로 행정조직을 장악한 향리집단과 사족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관건이었다. 임금으로부터 권한을 내려받는 것을 국왕의 근심을 나눠가진다는 의미의 ‘분우(分憂)’로 불렸던 수령들은 선물과 시험, 제사 3가지를 통해 법치(法治)보다는 인치(人治)로 다스렸다.

김혁 영남문화연구원 HK교수는 ‘수령의 선물정치와 부채’에서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원칙으로 대해야 했던 향리들에게는 당시 인기 있는 부채 등을 선물하며 마음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1894년 경남 고성부사로 재직하던 오횡묵은 농민들에게까지 권농(勸農)을 명분으로 돈이나 바늘, 남초(담배)를 배분했다. 김 교수는 “조선의 수령들은 위력과 형벌을 앞세우다가도 선물로 다스리는 ‘통치의 기술’을 부렸다”고 밝혔다.

통치의 기술은 시험과 제사를 통해서도 구현됐다. 채휘균 영남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는 ‘시험의 힘, 교육을 통한 통치’에서 조선시대 지방관들은 과거와 공도회(소과 초시) 같은 국가시험 외에도 강회(講會) 백일장(白日場) 고강(考講) 같은 수령 주관의 시험을 자주 치르면서 시험 결과의 발표 시상 잔치 등을 통해 영향력을 유지했다고 밝혔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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