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산업화 상징 세운상가를 역사에 남기자”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7월 21일 03시 00분


서울역사박물관 연구원들이 16일 세운상가를 기록에 남기기 위해 상인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오른쪽은 전자제품과 조명·음향기기
 가게가 들어선 골목 풍경. 사진 제공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 연구원들이 16일 세운상가를 기록에 남기기 위해 상인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오른쪽은 전자제품과 조명·음향기기 가게가 들어선 골목 풍경. 사진 제공 서울역사박물관
“업종을 밖에 써 놔야 해. 그래야 사람들이 찾아오지. 가게 밖에 왜 ‘로터리 연마’라고 떡 하니 써놨겠어? 이걸 보고 사람들이 와서 ‘이 부분을 더 얇게 깎아 달라’고 물건을 들고 왔다고.” 16일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에서 이동식 씨(65)가 운영하는 ‘형제연마사’. 8평 남짓한 가게 한쪽은 텅 비었고 로터리 연마기 한 대와 숫돌 한 상자만 남아있었다. 그는 “슬슬 가게를 정리하려던 참”이라고 했다.

이 씨는 구석 선반에서 폭 50cm, 높이 20cm 정도 크기의 빛바랜 녹색 천가방을 꺼내왔다. 희미하게 ‘US’라고 적힌 덮개를 들추자 겉이 군데군데 녹슬어 빨갛게 된 인두와 캘리퍼스 등 공구 10여 개가 나왔다.

“내 선배가 위 선배에게 받았다니까, 50년은 넘지 않았을까? 예전엔 뜨겁게 달군 인두 끝에 접착제를 발라 난로 연통 등을 납땜했지. 이렇게 슥, 슥 하면서.”

이 씨는 서울역사박물관 김유경 연구원(27)이 조심스레 들춰보자 “필요하면 갖고 가. 난 이제 쓰지도 않아”라고 말했다. 이 모든 과정은 비디오카메라로 녹화됐다.

1968년 2층 상가단지로 조성된 세운상가는 1987년 용산전자상가가 들어서기 전까지 국내 유일의 전자종합상가였다. 그러나 건물 노후와 도심 속 숲길을 조성하는 정책으로 2008년 12월부터 철거가 시작됐다. 2015년 철거가 마무리되면 이 일대는 폭 90m, 길이 약 1km의 녹지로 바뀐다.

서울역사박물관 연구원들
점포모습-상인애환 기록 분주


역사 속으로 사라질 세운상가와 상인들의 일상을 기록하기 위해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3월부터 세운상가의 건축 구조와 판매 상품, 상인들의 삶과 애환 등을 조사해 기록하고 있다. 조사원들은 일주일에 사나흘씩 세운상가를 찾아 상인들과 만나 이야기를 듣고, 과거 물건을 기증받고, 일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기록한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전에 말씀하신 저 간판요, 오늘 가져가도 되나요?”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익숙하게 찾아들어간 유원지 조사원(28)이 ‘극동판금’이란 간판 앞에 섰다. 가게 주인은 “주말에 문래동으로 이사 가니 그 이후에 가져가라”고 했다. 돌아오는 길에 형제연마사 이 씨에게서 서울올림픽 때의 세운상가 화재 사진도 한 장 얻었다. 붓으로 직접 글씨를 쓴 간판과 옛 모습을 찍은 사진 모두 서울의 근대사를 짐작할 수 있는 소중한 유물이다. 유 조사원은 “이렇게 친밀한 관계를 만들기까지 매일 찾아가 인사하고 함께 술 마시며 두세 달을 보냈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삶의 현장에 직접 참여해 관찰 조사하는 연구가 늘어나고 있다. 통계수치로 나타낼 수 없는 생활상을 통해 당대의 여러 문화적 산업적 면모를 기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세운상가는 1970, 80년대 고속성장시대의 상징적인 공간. 서울역사박물관의 이번 조사는 세운상가에 담겨 있는 한국 근대화의 흔적을 기록해 보존하기 위한 작업이다. 서울역사박물관 권혁희 학예연구사는 “세운상가와 이 일대 자체가 한국 산업화를 표상하는 콘크리트 구조물”이라며 “이곳을 다각도로 연구하고 기록해 경제 성장의 주인공들의 역사를 조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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