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pping]‘미와 건강을 추구하는 과학’ 모토… 지구촌 化粧문화 선도

  • 동아일보

1872년 약국으로 출발, 세계 70여국 진출 브랜드로 성장
색상-디자인 특화… ‘아넷사’는 자외선 차단제 대표 상품

서울의 한 백화점에 들어서 있는 시세이도 매장. 1872년 문을 연 시세이도는 아시아를 넘어 유럽, 미국 등에도 진출해 아시아를 
대표하는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사진 제공 시세이도
서울의 한 백화점에 들어서 있는 시세이도 매장. 1872년 문을 연 시세이도는 아시아를 넘어 유럽, 미국 등에도 진출해 아시아를 대표하는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사진 제공 시세이도
《‘미(美)와 건강을 추구하는 과학.’

일본인 후쿠하라 아리노부가 만든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 시세이도(資生堂)의 기업철학이다. ‘자생당’ 이라는 한자 이름에서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지만, 시세이도는 원래 약국이었다. ‘자생’은 중국 고전 ‘역경’의 ‘지재곤원 만물자생 급순승천(至哉坤元 萬物資生 乃順承天·대지의 덕에 의해 모든 사물은 생성 된다)’에서 따왔다. 자연에서 미의 원료를 찾는 시세이도의 기업 활동과 맞닿아 있다.

의사인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약학에 많은 관심을 보인 후쿠하라 씨는 도쿄대 의학부를 졸업한 후 해군병원의 약국장으로 근무했다. 이때 일본 근대화의 시작인 메이지 유신을 경험하게 되고,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서양의학과 동양의 한방을 융합하려고 만든 것이 약국 시세이도다.》

○ 약국에서 화장품 회사로

1872년 일본 도쿄의 한복판 긴자(銀座)에 등장한 일본 최초의 서양식 조제 약국 시세이도는 소다를 이용해 이를 닦던 시절에 치약을 팔고, 탄산음료인 ‘소다 파운텐’도 내놓는 파격을 실험한다. 아이스크림을 일본에 최초로 소개한 것도 후쿠하라 아리노부다.

그는 일본인들에게 서양 문화를 소개하는 데만 열정을 쏟은 게 아니다. 1897년 서양 의약을 바탕으로 과학적인 제조법을 동원해 개발한 당대 최고의 히트 상품이자 훗날 시세이도의 상징이 된 화장수 ‘오이데루민’을 선보인 것. 오이데루민은 그리스어로 ‘좋은 피부’라는 뜻이다. 이를 계기로 시세이도는 화장품 비즈니스에 진출하고, ‘미와 건강을 추구하는 과학’이라는 철학으로 화장 문화를 선도하는 기업으로 성장한다. 동양과 서양의 의학과 미를 융합시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온 시세이도는 1957년 대만을 시작으로 동남아시아, 유럽, 미국 등 세계 70여 개국으로 진출했다.

○ 화장품 자체도 아름다워야

후쿠하라 아리노부의 아들 후쿠하라 신조는 탁월한 미적 감각과 과학적인 경영 방식으로 시세이도의 도약을 이끌어낸다.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약학을 전공한 후 약제사로 일하던 후쿠하라 신조는 미술을 공부하기 위해 훌쩍 프랑스 파리로 떠났다. 파리에서 일본 예술가들과 함께 지냈던 그는 ‘빛의 도시’라는 사진집을 출판할 만큼 예술적 재능이 있었다고 한다. 그가 시세이도에 의장부(광고창작부)를 만든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시세이도의 혁신적인 포스터와 트레이드마크인 동백꽃 엠블럼 디자인에 그의 미적 감각을 발견할 수 있다.

당시 작은 매장 하나만 있던 시세이도가 예술 부서를 설립했다는 것은 후쿠하라 회장의 경영 마인드가 어떠했는지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인간을 아름답게 하는 화장품이라면, 화장품 그 자체도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한 것. 1980년대 프랑스에 진출한 시세이도는 거장 세루즈 루탕스를 기용해 시세이도만의 독특한 기업 이미지를 창출했다. 19세기 프랑스 살롱 문화의 대를 잇는 ‘르 살롱 드 팔레이스 로얄 시세이도’가 대표적인 사례. 1992년 파리에서 오픈한 로얄 시세이도는 동양의 정적인 감성이 물씬한 공간으로, 세계적인 저명인사들이 한 번씩은 들르는 명소가 됐다. 지금도 시세이도 미학을 세계에 알리는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 시세이도의 상징 동백꽃 마크


시세이도의 상징인 카멜리아(동백꽃) 마크는 1915년에 만들어졌다. 당시 최고의 히트상품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던 것이 동백꽃 헤어 오일이었다. 동백꽃 하면 시세이도가 연상돼 아예 회사의 마크로 채택한 것이다. 서양식 조제 약국이던 시절(1868∼1912)의 시세이도 트레이드 마크는 용맹한 매였다. 용맹한 매는 후쿠하라 위생치약 용기와 매장 앞에 진열된 큰 간판에서도 볼 수 있다. 약국에서 화장품 회사로 변신하면서 매의 단호한 이미지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해 동백꽃으로 바꾼 것. 사진작가이기도 한 후쿠하라 회장이 카멜리아 마크를 직접 디자인했다고 한다.

○ ‘건강하고 아름답게 나이 먹자’

시세이도가 추구하는 스킨케어의 궁극적인 목적은 신체 내면의 건강함과 외면의 아름다움을 함께 가꾸어 인생을 행복하게 만드는 데 이바지하는 것이다. 이를 건강하고 아름답게 나이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그레이스풀 에이징(Graceful Aging)’으로 정의한 시세이도는 그 해답을 얻기 위해 기미, 주근깨, 주름, 자외선 차단 등의 노화 방지를 위한 4가지 테마를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일본, 미국, 유럽 등지에 설립한 10여 개 연구소와 1989년 설립한 하버드대 피부과학연구소는 화장품 과학을 실현하는 토대가 되고 있다.

시세이도는 1980년 일본에서 처음으로 자외선차단 지수(SPF)를 화장품에 표기했다. ‘시세이도 아넷사’는 뷰티 에디터와 소비자들이 함께 진행한 각종 테스트와 뷰티 어워드에서 최근 11년간 1위를 지키고 있는 대표적인 자외선 차단제이다. 에센스처럼 부드럽고 촉촉하게 스며드는 산뜻함과 땀과 피지에 강하면서 물에 젖어도 하얗게 일어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시세이도 선스크린은 레저 활동에서 사용하는 자외선 차단제부터 민감한 얼굴용 자외선 차단제까지 다양한 제품군을 갖추고 있다.

시세이도는 색깔을 강조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1900년 대 초 하얀색 페이스 파우더밖에 없던 시절에 7가지 색상(화이트, 옐로, 로즈, 그린, 퍼플, 연분홍, 연홍색)의 레인보 파우더를 출시해 주목을 받았다. 색에 대한 자신감은 립스틱으로도 이어졌다. 올해는 시세이도 립스틱이 처음으로 발매된 지 82주년이 되는 해. 작은 볼에 담겨 있던 ‘베니 자라(beni-zara)’라고 불린 시세이도의 첫번째 립스틱부터 곧 선보일 예정인 ‘마끼아쥬 루즈 에나멜 글래머’까지 시세이도의 립스틱은 전 세계 여성들의 마음을 흔들어 왔다.

[1] 1872년 시세이도를 창립한 창업주 후쿠하라 아리노부[2] 1897년 선보인 시세이도 최초의 화장수 ‘오이데루민’[3] 1919년 시세이도 매장 내부[4] 1961년 ‘캔디 톤 립스틱’ 광고 포스터[5] 2010년 7월 23일 선보일 예정인 시세이도 립스틱 ‘마끼아쥬 루즈 에나멜 글래머’ 사진 제공 시세이도
[1] 1872년 시세이도를 창립한 창업주 후쿠하라 아리노부
[2] 1897년 선보인 시세이도 최초의 화장수 ‘오이데루민’
[3] 1919년 시세이도 매장 내부
[4] 1961년 ‘캔디 톤 립스틱’ 광고 포스터
[5] 2010년 7월 23일 선보일 예정인 시세이도 립스틱 ‘마끼아쥬 루즈 에나멜 글래머’ 사진 제공 시세이도
김기용 기자 k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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