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승전도… 패전도… 전쟁은 문화를 잉태한다

  • 동아일보

◇전쟁본능: 전쟁의 두 얼굴/마틴 판 크레펠트 지음/614쪽·2만7000원·살림

19세기 초반 영국군은 전투 외 다른 점에서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높이가 높고 색색의 깃털 장식으로 눈에 띄는 기병 모자는 무겁고 불편했다. 군복은 꽉 끼어 기병대원이 말에 오르기도 힘들었다. 목받침은 너무 빳빳해 끈을 잠그면 정면만 바라봐야 했다. 이들은 그렇게 입고 전투에 나섰다.

목숨을 걸고 싸우는 전투에서 무거운 모자와 움직임에 무리를 주는 꽉 끼는 옷은 비효율적이다. 논리적으로 따지면 이런 부적절한 것은 모두 제거해야 한다. 그러나 병사들은 장식과 치장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예술적 요소들은 젊은이들을 군대로 이끌고 사기를 북돋았다. 콜린 파월 전 미 합참의장도 자서전을 통해 멋진 군복에 반해 군인의 길에 들어섰다고 고백해 전투력 외 다른 요소가 전쟁과 관련 있음을 보여준다.

이스라엘 히브리대 역사학 교수인 저자는 전쟁을 문화적 관점에서 바라봤다. 그는 비극의 상징인 전쟁에서 파생된 문화가 인간사에 꼭 필요한 요소라고 봤다. 전쟁에 매혹된 인간이 전쟁 문화를 발전시켰고, 전쟁 그 자체도 문화 속에 동화됐다는 것이다. 전쟁 문화가 만든 부수적인 것들이 실은 전쟁을 유지시키는 기틀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군복에는 전투력 향상이라는 기본적 목표 외에 다른 요소가 반영됐다. 반짝이는 금속제 단추와 견장, 무거운 모자와 형형색색의 깃발은 비실용적이고 전투에 도움이 안 됐지만 군의 사기를 높이고 국민을 응집시키는 역할을 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군복에는 전투력 향상이라는 기본적 목표 외에 다른 요소가 반영됐다. 반짝이는 금속제 단추와 견장, 무거운 모자와 형형색색의 깃발은 비실용적이고 전투에 도움이 안 됐지만 군의 사기를 높이고 국민을 응집시키는 역할을 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책은 일상생활에서 볼 수 있는 전쟁 준비 과정과 실제 전쟁의 발발과 전개 과정, 전쟁이 끝난 뒤의 전쟁 문화 등을 다뤘다.

전쟁이 기록되기 시작하면서 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슬픔은 학문과 문학 형태로 나타났다. 군사자료로 축적된 전쟁 회고록은 전쟁사 강의에 반영됐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 에밀 졸라의 역사 소설 ‘붕괴’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등이 나왔다. 저자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쟁은 뛰어난 문학의 주제라고 평가했다. ‘콘스탄틴 전투’ ‘게르니카’와 같은 미술 작품들도 전쟁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했다.

세월이 지남에 따라 전쟁 문화도 변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다음엔 전쟁 중 희생자를 추모하며 비석을 세우기 시작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핵무기는 가장 강력한 전쟁무기의 위력을 알리는 동시에 앞으로 대전쟁은 막아야 한다는 메시지에 힘을 실어줬다. 국가 간의 전쟁이 줄어든 반면 게릴라, 테러리스트 등과의 전투가 늘면서 국가 간 전쟁에서 하는 선전 포고 절차도 자취를 감췄다.

1945년 이후 강대국 간의 대전쟁이 사라지면서 평화가 찾아왔다고 보는 시각에 대해 저자는 “그렇게 볼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잘라 말한다. 사람들은 아직도 전쟁과 관련된 영화와 책을 본다. 또 17세기에 전술을 익혔던 체스 대신 컴퓨터로 전투 게임을 하기 때문이다. 점점 실전 같아지는 비디오 게임 등 놀이가 전쟁 속에 흡수되고 전쟁이 놀이로 바뀌면서 전쟁 문화가 점차 진짜 전쟁과 같아지고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저자는 전쟁 문화를 잘 아는 것이 전쟁 징후를 포착하고 전쟁을 파악하는 데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글의 말미엔 ‘손자병법’의 저자 손빈의 말을 인용하며 전쟁 문화 보전의 이유를 설명한다. 모순적이지만 현실적이다. “나라가 비록 크더라도 전쟁을 좋아하면 반드시 망한다.” “전쟁이 100년 만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하더라도, 내일 전쟁이 일어날 것처럼 대비해야 한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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