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뮤지컬에 ‘판소리의 날개’ 달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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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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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서편제’ 음악감독-주연
팔방미인 소리꾼 이자람 씨

‘사천가’ 동서양 악기-무용 곁들여
국제연극제서 최고여배우상 받아

7, 8월 판소리-뮤지컬 오가는 무대
“21세기형 판소리 윤곽 잡았어요”

21세기 판소리 공연양식을 실험한 ‘사천가’로 승승장구 중인 소리꾼 이자람 씨. 그는 뮤지컬 ‘서편제’의 음악감독 겸 주연배우를 맡으며 대중적 발판을 확장해가고 있다. 양회성 기자
21세기 판소리 공연양식을 실험한 ‘사천가’로 승승장구 중인 소리꾼 이자람 씨. 그는 뮤지컬 ‘서편제’의 음악감독 겸 주연배우를 맡으며 대중적 발판을 확장해가고 있다. 양회성 기자
소리꾼 이자람 씨(31)는 공연계가 주목해 온 다크호스다. ‘예솔이’란 어릴 적 예명보다 이제는 어엿한 소리꾼으로 더 유명한 그는 전형적인 ‘팔방미인’이다.

‘왜 그런지 가슴이 두근거려요, 그대만 보면’으로 시작하는 ‘짝사랑’을 불렀던 혼성듀엣 ‘바블검’ 출신 부모님 덕분에 다섯 살 때 가수로 데뷔했다. 아버지 이규대 씨와 함께 “예솔아∼ 할아버지께서 부르셔/예, 하고 달려가면/너 말고 네 아범”이란 가사의 ‘내 이름 예솔아’를 불렀다.

열한 살에 판소리에 입문했다. 서울대 국악과 학생이던 1999년에는 8시간짜리 동편제 판소리 춘향의 최연소 완창 무대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졸업 무렵 젊은 국악인 모임 ‘타루’의 결성을 주도해 국악뮤지컬 장르를 개척했다. 2004년부터는 포크록그룹 ‘아마도 이자람 밴드’의 보컬 겸 기타리스트로도 활약하고 있다. 2008년 국제현대무용제(모다페)에서 현대무용 공연도 펼쳤다.

다방면에서 활동을 펼치다 보니 ‘재능을 낭비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만의 예술 양식을 찾기 위한 암중모색이었음이 뚜렷해지고 있다. 그는 7월 3∼11일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 ‘사천가 2010’을 올린다. 이어 8월 14일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개막하는 뮤지컬 ‘서편제’의 음악감독과 주연으로 관객을 만난다. 뮤지컬 출연은 처음이다.

“뮤지컬 출연 제의는 여러 번 있었는데 다 사양했어요. 본업인 국악에 충실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게 있었죠. 지난해 ‘사천가’를 3주나 공연하면서, 찾아 헤매던 ‘21세기형 판소리’의 윤곽이 잡혔다는 확신이 들고서는 마음이 자유로워졌어요.”

2008년 제작한 ‘사천가’는 브레히트의 연극 ‘사천의 선인’을 판소리 양식으로 재창작했다. 동서양 악기가 섞인 반주와 현대무용을 곁들인 무대에서 소리꾼 1명이 온갖 캐릭터를 연기하거나 해설자로서 촌평을 하며 이야기를 끌고 간다.

‘사천가’에 대한 반응은 해외에서 더 뜨겁다. 지난달 폴란드 콘탁 국제 연극제에 초청돼 최고여배우상을 탔다. 9월엔 미국 워싱턴과 시카고 초청공연이 잡혔고 내년 3월에는 프랑스 민중극장과 파리시립극장에 선다. 2009년부터는 후배인 이승희 김소진 씨가 참여해 3인 3색 무대를 펼쳤다. 막내인 김소진 씨는 22일 동아국악콩쿠르 판소리부문 일반부 금상을 수상해 경사가 겹쳤다.

뮤지컬 ‘서편제’의 연출을 맡은 이지나 씨도 ‘사천가’를 본 뒤 이자람 씨의 매력에 빠졌다. 작년 처음 만나자마자 “‘서편제’에선 결코 없어선 안 될 사람”이라며 설득전을 펼쳤다고 했다.

그러나 ‘서편제’는 국악뮤지컬이 아니라 ‘국악하는 사람에 대한 뮤지컬’이다. 전통소리가 등장하는 장면은 서너 장면뿐이다. 나머지는 윤일상 씨가 작곡한 록발라드풍 음악으로 채웠다. 여주인공 송희 역으로는 뮤지컬 여가수 중에서도 노래 잘하기로 유명한 차지연 씨가 함께 캐스팅됐다.

“노래 하나는 자신 있었는데 차지연 씨 노래를 듣고 놀랐어요. 옥주현 씨가 이지나 선생님에게 ‘이자람 씨를 그렇게 아낀다면서 왜 형극의 길로 내모시느냐’고 했다던데 걱정이 태산이에요.”

말은 걱정이라는데 어투나 표정에선 초조한 기미를 찾을 수 없다. 재기 넘치는 사람은 지름길을 좋아하기 마련인데 그는 에둘러 갈 줄 안다. 느릿한 소걸음이지만 자신이 거쳐야 할 곳을 놓치는 법이 없다.

‘사천가’의 후속 작업으로는 ‘아버지와 딸’에 대한 이야기를 2년간 구상해 왔는데, 이 시대를 살아가는 딸로서 자신의 이야기가 될 것 같다고도 했다. 딸을 뮤지컬 가수로 키우려던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고 소리꾼의 길을 갔다는 그에게 ‘결국 아버지 꿈도 이뤄 드린 것 아니냐’고 묻자 “어, 그러네요”라며 슬쩍 능청을 부린다.

판소리 연구가 신재효는 좋은 소리꾼의 첫째 조건으로 인물을 꼽았다는데 이자람 씨야말로 ‘보면 볼수록 인물’이란 말에 딱 들어맞는 소리꾼이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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