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독재에 눈감은 문학의 독백

  • Array
  • 입력 2010년 2월 13일 03시 00분


코멘트
◇칠레의 밤/로베르토 볼라뇨 지음·우석균 옮김/176쪽·9800원·열린책들

라틴아메리카의 암울했던 정치 상황에 대한 통렬한 성찰을 촌철살인의 위트와 결합해 풀어낸 칠레 출신 작가의 장편. 독재정권에 부합한 문학가에 대한 신랄한 냉소와 통찰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죽음을 앞둔 보수적인 우루티아 사제의 광기어린 독백으로 시작한다. 그 사제는 “나는 지금 죽어가고 있건만 아직도 하고픈 말이 너무도 많다. 나는 평화로웠단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평화롭지 않다”고 불평하며 이 모든 것이 ‘그놈의 늙다리 청년’ 때문이라고 비난한다.

작가는 보수적인 사제이자 문학비평가인 우루티아의 정치의식이 결여된 긴 독백을 통해 칠레의 암울했던 현대사와 기회주의적이었던 칠레 문단, 지식인들의 태도를 비판한다. 아바카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던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이기도 했던 사제는 칠레 현대사의 어지러운 상황을 외면하고 “될 대로 되라지”라며 방에서 독서에만 몰두한다. 피노체트가 주도한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고 아옌데가 쿠데타군에 저항하다 대통령궁에서 자살했는데도 “참 평화롭군”이라고 혼잣말을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피노체트를 필두로 한 군사평의회 의원들에게 부역하게 되면서 문단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은둔을 자처했던 그는 독재라는 새로운 질서에 적응하게 되고 그나마 남아 있던 비판적 지성은 억지스러운 자기 위안과 변명으로 흐려진다. 그는 피노체트 체제하의 정치범 고문실이기도 한 작가 지망생 마리아 카날레스의 집에서 문인들과 파티를 즐기다 우연히 발견하게 된 고문실의 피해자를 모른 척 한다.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고, 너무 늦게 그 사실을 알았다”고 옹색하게 변명하면서.

기회주의자이며 위선자였던 우루티아 사제에게 나타난 ‘늙다리 청년’은 결국 자기 자신이었음이 드러난다. 그는 “혼자서는 역사에 대항하기 힘들다”고 자신의 인생을 강하게 옹호하지만 비판적 양심의 소산인 그 ‘늙다리 청년’을 설득하기는 힘들다. 그가 그토록 집요하게 옹호하고 추구하고자 했던 ‘평화’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우루티아 사제의 독백은 결국 칠레문학에 대한 강한 조소로 끝난다.

“칠레에서는 이렇게 문학을 하지. 하지만 어디 칠레에서만 그런가. 아르헨티나, 멕시코, 과테말라, 우루과이, 스페인, 프랑스, 독일, 푸르른 영국과 즐거운 이탈리아에서도 그런걸. 문학은 이렇게 하는 거라고. 아니 우리가, 시궁창에 처박히기 싫어서, 문학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렇게들 한다고.”

‘열린책들’ 출판사는 ‘칠레의 밤’을 시작으로 볼라뇨의 전집을 출간할 예정이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