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크엔드 카페]에르메스가 올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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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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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에르메스 스카프를 두른 여성에게

당신을 처음 만났던 날을 기억합니다. 당신은 어깨에 ‘에르메스’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죠. 그때 고 피천득 시인의 ‘맛과 멋’이란 시를 떠올렸던 것 같습니다. ‘맛은 감각적이요, 멋은 정서적이다. 맛은 적극적이요, 멋은 은근하다’는….

그날 이후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에르메스의 스카프는 맛보단 멋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게도 오래된 흰색 에르메스 실크 스카프가 있습니다. 세월과 함께 스카프의 말 문양이 비록 희미해졌지만 빈티지 실크가 선사하는 촉감은 어찌나 따뜻한지요.

에르메스 스카프는 신통방통합니다. 낡은 스웨터 위에 걸쳐도, 바빠서 메이크업을 완벽하게 못했어도 이 스카프 한 장만 두르면 행복해집니다. 그때의 감정은 에르메스 ‘켈리 백’이나 샤넬 ‘2.55 백’을 들었을 때 “저, 값비싼 명품 가방 들었어요. 그러니 절 좀 봐 주세요”란 자기 과시와는 한참 거리가 있습니다. 스카프란 어차피 대개는 접어서 두르는 것이라, 남들이 웬만해선 에르메스 상표를 알아보기 힘드니까요.

어느 날부터인가 전 에르메스 스카프 애호가가 됐습니다. 속물이어서일까, 아니면 월급을 아껴 에르메스에서 그나마 호기를 부릴 수 있는 아이템이 스카프여서일까. 모두 본질적 해답이 아닌 듯했습니다. 그리고 심사숙고 끝에 답을 찾았습니다.

에르메스 스카프는 제게 가만히 말을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아주 오랜 세월 소곤소곤….

당신도 아시겠지요. 에르메스는 1990년부터 매년 새로운 테마를 정해왔습니다. 야외의 해(1990년), 말의 해(1993), 나무의 해(1998), 손의 해(2002), 춤의 해(2007), 여행의 해(2009)…. 계절마다 15∼20종류씩 새롭게 선보이는 에르메스의 스카프는 이 테마에 맞춰 현대미술 작품 뺨치는 디자인을 선보입니다.

에르메스는 연간 테마를 내놓은 지 20주년이 되는 올해 테마를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로 정했습니다. 어쩌면 그동안 에르메스가 들려주었던 이야기들의 총체일 수 있습니다. 각 스카프는 이름도 있습니다. 천사들이 천지 창조의 노래를 하는 ‘연주의 진수’, 백설 공주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이 총출동한 ‘에르메스가 전하는 동화’(사진)….

당신은 에르메스의 어떤 이야기와 함께 살아 오셨나요. 이제 와 고백할게요. 에르메스 스카프를 두른 백발의 당신은 훗날 제가 닮고 싶은 모습이었음을. 우리 브랜드가 아닌 남의 나라 브랜드와 사랑에 빠진 몹쓸 죄책감을.

(※에르메스의 올봄 스카프 사진과 설명은 www.journalog.net/safille에서 더 보실 수 있습니다.)

김선미 산업부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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