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그리움을 그린 그림, 가족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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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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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춤추는 가족’ (종이에 유채, ‘1953∼1954년’) 그림 제공 바다출판사
이중섭, ‘춤추는 가족’ (종이에 유채, ‘1953∼1954년’) 그림 제공 바다출판사
◇ 가족을 그리다/박영택 지음/286쪽·1만3800원·바다출판사

손을 맞잡은 가족이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춘다. 벌거벗어 황갈색으로 그을린 피부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표정은 넌지시 미소 짓고 있다. 계속 바라보면 네 명이었던 가족은 어느새 빙빙 도는 하나의 원, 한 덩어리로 보인다.

이중섭의 작품 ‘춤추는 가족’이다. 1952년 생활고로 부인과 두 아들이 일본으로 건너간 뒤 이중섭은 죽을 때까지 가족과 만나지 못했다. 이 그림은 가족과 다시 하나가 되기를 바라는 그의 염원을 담고 있다. 동시에 그와 마찬가지로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거치며 생이별을 겪어야 했던 또 다른 가족들의 아픔을 어루만진다.

고대부터 현재까지, 특히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산업화 등 근·현대를 거치며 한국에서 가족은 수많은 역사적 굴곡을 넘어야 했다. 저자는 이 같은 ‘가족의 변천사’를 그림을 통해 읽어낸다.

조선시대에는 가족을 한 화폭에 담는 경우가 드물었다. ‘조 씨 삼형제’는 그런 점에서 예외적인 작품이다. 18세기 형양 조씨 집안의 조계, 조두, 조강 형제를 그린 이 그림은 삼형제 모두가 과거에 합격한 경사를 기념해 그렸다고 알려져 있다. 깐깐해 보이는 눈매와 입꼬리가 꼭 닮았다. 저자는 전통적인 가족제도가 변하기 시작한 것을 1920년대로 본다. 일제강점기 배운성의 ‘가족도’는 3대에 걸친 가족 17명을 그린 화가 가족의 초상이다. 저자는 “이 그림은 거의 마지막 잔해처럼 간직된 대가족의 초상”이라고 설명한다. 이 같은 그림을 그린 것 자체가 과거의 전통적 대가족이 보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가족이 본격적으로 미술 표현의 주제가 된 것은 1950년대였다. …‘개인의 실존을 위협하는 체제의 폭력과 광기에 대한 미학적 반응물’이 그 당시 그려진 가족 그림일 것이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친 한국의 현실은 피폐했다. 가족 간 결속이 강조된 것은 현실을 극복하고 정서적으로 위안받기 위한 필연적 결과였다. 전쟁 중 가족을 잃은 장욱진의 작품 ‘마을’에는 집 안에 덩그러니 남아 화폭 너머를 응시하는 여인들이 등장한다. 전쟁으로 아버지와 아들을 잃은 아픔을 형상화했다.

박수근의 그림에는 전후 살아남은 가족의 이미지가 등장한다. ‘나무와 두 여인’에는 잎사귀가 다 떨어진 나무와 아이를 업은 어머니, 행상을 떠나는 동네 아낙이 등장한다. 아버지가 전쟁으로 희생되고 어머니가 생계를 떠맡은 당시 현실을 담았다.

1970년대 산업화는 농촌의 대가족제가 무너지고 사람들이 도시로 이주하는 동인(動因)이었다. 오윤의 판화는 당시 도시 빈민의 삶을 담아낸다. 자신의 가족을 그린 ‘범 놀이’에는 아이를 등에 태우고 호랑이 흉내를 내는 아버지, 이를 보며 웃음 짓는 할아버지와 아내의 모습이 등장한다. 단란한 한때이지만 남루한 복장에서 가난의 흔적이 묻어난다.

이후 가족 해체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미술에서도 가족은 끌어안아야 할 대상이기보다는 질문과 의심의 대상이 됐다. 안창홍의 ‘가족사진’(1982년)은 이 같은 변화를 충격적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언뜻 평범한 가족으로 보이지만 실은 아버지와 어머니, 자식 모두 흰색 가면을 뒤집어쓴 허깨비다. 어머니의 가출과 아버지의 재혼이라는, 작가의 개인적 사연이자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가족사를 죽음의 이미지를 차용해 묘사했다. 1990년대 이후 페미니즘 미술 역시 여성에게 억압적이었던 한국 가족 제도에 물음표를 던진다.

그러나 작가들은 돌고 돌아 결국 가족으로 회귀한다. 공동의 신화가 부재하는 현대사회에서 가장 근원적 공동체인 가족을 통해 자신의 신화, 자신만의 이야기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대신 과거와는 조금 다른 가족이 등장한다. 국제결혼을 한 부부(김옥선, ‘Happy Together’ 시리즈), 동성애 커플(‘You and I’ 시리즈), 다문화 가정 부부(신혜순), ‘1인 가족’을 택한 독신여성(백지순) 등이다. 저자의 말대로, 여전히 가족을 다룬 작품 속에는 한국 사회의 모든 것이 응축되고 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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