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계간 ‘문학과 사회’로 등단한 소설가 박혜상 씨의 첫 번째 소설집. 계약직 근로자, 수능을 끝낸 여고생, 만년 과장, 고철 도둑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군상의 삶을 독특한 상상력과 무게감, 정제된 언어를 통해 보여준다.
표제작인 ‘새들이 서 있다’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변용한 작품. 아버지로부터 오랫동안 성추행을 당해온 여고생 딸, 그리고 그로 인해 회복되기 힘든 충격에 휩싸인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다. 아버지와 딸 간의 도착적인 관계는 사회적 금기를 위태롭게 오가면서 소설적 긴장과 비극을 고조시킨다. 낯설고 불편한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음울한 상징들과 서사의 밀도는 끝까지 시선을 붙든다.
‘일렬로 행진해’는 지역의 케이블 방송국에서 일하는 계약직 직원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이다. 주로 자막을 만드는 등의 자질구레한 일을 하고 있는 그는 자체 계약직이 파견직으로 바뀌는 위기에 처했다. 파견직은 회사 조직과 무관한 제삼자다. 이른바 ‘용병시대’인 상황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에서마저 제삼자가 돼 가는지도 모른다. 이런 인생을 견디는 방법은 ‘자기만의 폭탄’을 하나씩 품고 사는 것뿐이다. 주인공이 가진 ‘폭탄’은 벽이나 열차에 몰래 낙서하는 것이다.
이 밖에 한때 기승했던 고철 도둑들의 삶을 다룬 ‘쇠붙이들’, 경제공황 이후 폐허가 된 미래사회의 모습을 사이버 세계와 난민수용소란 대비적 공간을 통해 보여준 ‘토마토 레드’, 어린이대공원에서 벌어졌던 코끼리 탈주 사건을 다룬 ‘코끼리 한 마리는 어디에 있나’ 등이 수록됐다. 문학평론가 이수형 씨는 해설에서 “기성의 가치 체계가 구획해 놓은 경계를 넘나드는 상상력, 좀 더 구체적으로 카니발화의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다”며 “지금 우리 사회의 세태를 젊은 감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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