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이맛!]바다가 물컹, 사랑이 살랑 ‘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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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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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상드로 뒤마(1802∼1870)는 1848년 파리교외에 으리으리한 ‘몬테크리스토 성(城)’을 지었다. 그의 소설 ‘몬테크리스토 백작(1845년)’이 나온 지 3년 뒤였다. 뒤마는 그의 호화저택에 수많은 예술가들을 초청해 시도 때도 없이 연회를 베풀었다. 직접 주방에 들어가 요리를 해서 내놓기도 했다. 그는 ‘대요리사전’이라는 책을 쓸 정도로 미식가였다.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거장 발자크(1799∼1850)는 식객으로 몬테크리스토 성에 드나들었다. 그는 대식가였다. 그는 밤 12시에 깨어나 다음 날 오후까지 하루 15시간 넘게 쓰고 또 썼다. 쓰디 쓴 블랙커피를 하루 40잔 가까이 마셔댔다. 그는 “몬테크리스토 성은 지금까지 인류가 저지른 어리석은 행위 중 최고 매력적인 것”이라며 부러워했다.

발자크는 평생 빚 속에서 살았다. 잠을 자다가도 빚쟁이가 들이닥치면 뒷담을 넘어 도망쳤다. 그만큼이라도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커피와 ‘바다에서 나는 우유’인 굴 덕분이었다. 그는 굴을 한번에 144개까지 먹었다.

그렇다. 서양에서 굴은 스태미나 음식의 상징이다. 사랑의 묘약이다. 날것을 싫어하는 그들도 굴만은 생굴을 즐긴다. 오죽하면 ‘굴을 먹어라, 그러면 더 오래 사랑하리라(Eat oysters, Love longer)’라는 속담까지 있을까. 이름깨나 날리는 남성들은 굴 많이 먹는 것을 은근히 으스댔다. 기록으로 남은 흔적이 그 좋은 예다.

독일의 명재상 비스마르크(1815∼1898)는 한번에 175개를 먹었고, 플레이보이로 이름난 이탈리아의 카사노바(1725∼1798)도 하루 50개씩 거르지 않았다. 프랑스 앙리 4세(재위 1589∼1610)는 식사하기 전에 300∼400개씩 먹었고, 로마황제 위테리아스는 한 번에 1000개까지 해치웠다는 설이 있다.

굴회, 굴물회, 굴무침, 굴보쌈김치, 굴겉절이, 굴깍두기, 굴해초샐러드, 굴조개두부미역, 굴구이, 굴새우구이, 굴숙회, 굴찜, 굴튀김, 굴전, 굴파전, 굴부추전, 굴산적, 굴부추볶음, 굴국, 굴죽, 굴탕, 굴해장국, 굴떡국, 굴칼국수, 굴순두부, 굴뚝배기, 굴짬뽕, 굴탕수육, 굴덮밥, 굴무밥, 돌솥굴비빔밥, 생굴비빔밥, 굴김치볶음밥, 굴전골, 굴칵테일, 굴스프….

굴은 날것으로 먹는 게 으뜸이다. 생굴을 노란배춧속이나 파래가닥에 싸서, 초고추장 듬뿍 찍어 아귀아귀 눈 흘겨가며 먹는 게 최고다. 그 알싸하고 상큼하며 약간 비릿한 맛. 짭조름한 바다냄새. 차르르∼ 찰싹! 남해바다 파도소리. 찔꺽∼ 찔찔! 서해바다 뻘밭 우는 소리. 코 천장을 토옥 쏘는 칼칼한 생마늘과 풋고추. 초간장을 찍어먹는 일본 사람들이 과연 알기나 할까? 일본에는 굴전이 없다. 일본 사람들은 굴에 빵가루를 묻혀서 튀겨먹는 걸 좋아한다.

통영 굴은 씨알이 굵다. 속살이 뽀얗고 물컹하다. 서산태안 굴은 작다. 굴은 플랑크톤을 먹고 큰다. 통영 굴은 바닷물 속에서 양식하므로 성장 내내 플랑크톤을 먹는다. 서산 태안 굴은 바닷물이 가득 찰 때만 플랑크톤을 먹을 수 있다. 바닷물이 빠지면 햇볕에 드러나 성장이 멈춘다.

서산태안 굴은 둘레에 돋은 잔털 같은 게 7, 8겹이나 된다. 그만큼 고춧가루 등의 양념이 골고루 잘 밴다. 씨알이 굵은 굴은 상대적으로 잔털이 드물다. 양념이 잘 배지 않는다. 서산 어리굴젓은 고춧가루가 굴에 충분히 배어 숙성되면, 맛이 고소하고 얼얼해진다. 그래서 어리굴젓이다.

통영 굴은 국내시장의 60∼70%를 차지한다. 통영사람들은 굴을 ‘꿀’로 발음한다. 그래서 ‘꿀(굴)맛이 꿀맛이다’. 시내엔 굴 천지다. 어느 음식점이든 굴이 빠지면 음식이 안 된다. 굴향토집(055-643-4808)이 오래됐다.

서산은 굴밥이 유명하다. 밤 버섯 당근 대추 굴 호두 은행 등을 넣어 돌솥에 앉혀 짓는다. 달래양념장 넣고 쓱쓱 비벼 어리굴젓을 밑반찬 삼아 먹는다. 간월도 입구의 춘자네(011-9838-7091), 간월도의 큰마을영양굴밥(041-662-2706)이 붐빈다.

보령 천북면 굴마을(서해안고속도로 광천나들목)엔 100여 개에 달하는 굴전문점이 있다. 은박지에 싸 은근한 불에 굽는 굴구이가 맛있다. 토박이집(041-641-9634). 선창(041-641-2092), 고래굴구이(041-641-7773).

서울에선 홍대앞 돌꽃(02-324-5894), 김명자굴국밥집 광화문점(02-392-9199) 등이 눈에 띈다.

굴은 우윳빛 바다인삼이다. 서양에서는 R자가 없는 달 5∼8월(May, June, July, August)엔 아예 먹지 않는다. 이땐 굴의 산란기라 맛이 아리다. 날씨가 더워 상하기도 쉽다. 보통 10월부터 3월까지 제철로 본다. R이 들어있지만 4, 9월(April, September)에도 꺼린다. 동양도 비슷하다. 보리이삭이 패거나(한국), 벚꽃이 지면(일본) 먹지 않는다.

굴은 씻을 때 너무 손으로 주물럭거리면 맛이 몽땅 달아난다. 맹물로 씻어도 영양분이 빠져나간다. 손으로 휘저어 씻어도 마찬가지. 무를 갈아 넣어 굴과 버무린 후 연한 소금물로 씻어내면 좋다. 무에 불순물이 배어나고, 싱싱한 게 유지된다. 망에 담아 소금물에서 살살 흔들어 씻는 것도 한 방법이다. 몸이 오돌오돌하고 통통하며, 유백색이고 광택이 있는 게 좋다. 손으로 살짝 눌러 탄력이 있어야한다. 짠맛이 남아있어야 하고, 살 가장자리의 검은 테두리가 뚜렷한 것이 좋다.

굴은 바닷가 바위에 붙어살아 석화(石花) 즉 ‘돌에 핀 꽃’이다. 레몬즙이 궁합에 맞는다. 신맛이 들어가야 비린내가 안 나고, 각종 균의 번식을 막을 수 있다. 요즘은 거의 양식이다. 자연산은 귀하고 비싸다. 굴은 살짝 익혀먹어야 맛있다. 김치에 굴이 들어가면 시원하다. 매생이 국에 굴이 없으면 어쩐지 허무하다.

굴은 미네랄 덩어리이다. 에너지원인 글리코겐이 많아 부드럽고, 각종 비타민, 철분 아연 구리도 풍부하다. 철분의 함량이 쇠고기의 두 배나 된다. 아연은 남성 정자를 만드는 데 도움을 주고, 구리는 빈혈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굴은 추워질수록 맛있고 영양분도 많다. 겨울 글리코겐 함량이 여름에 비해 10배 이상 많다. 여성들은 피부가 뽀얗게 된다. 고기잡이 집 딸은 얼굴이 까맣지만, 굴집 딸 얼굴은 하얗다.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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