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이맛!]쫄깃한 입맞춤 ‘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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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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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념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그대로도 꼬막은 훌륭한 반찬노릇을 했다. 간간하고, 졸깃졸깃하고, 알큰하기도 하고, 배릿하기도 한 그 맛은 술안주로도 제격이었다.…제대로 꼬막 맛을 갖추려면 고추장을 주로 한 갖은 양념의 무침을 거쳐야 한다. 이 단계에서 꼬막 맛이 제각기 달라지는 것이었다. 집집마다 김치 맛이 다르듯이 꼬막 맛도 제각각이었다.…벌교에서 물 인심 다음으로 후한 것이 꼬막 인심이었고, 벌교 5일장을 넘나드는 보따리 장꾼들은 장터거리 차일 밑에서 한 됫박 막걸리에 꼬막 한 사발 까는 것을 큰 낙으로 즐겼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에서>

꼬막 살이 통통 올랐다. 겨울바다가 버무려진 쫄깃쫄깃하고 달짝지근한 감칠맛. 살이 배춧속처럼 꽉 찼다. 입안에 들어가면 혀가 자꾸 밀린다. 잇몸 날이 뭉개져 아픔이 뭉툭하다. 벌교 앞바다 개흙은 차지다. 모래나 황토가 거의 섞이지 않았다. 꼬막은 그 속에서 3, 4년 동안 입을 앙다물고 벼르고 벼른다.

꼬막은 삼국시대 무사들의 투구를 닮았다. 언뜻 조선 무인의 벙거지 같기도 하다. 빗살무늬 기와처럼 껍데기에 줄이 파였다. 벌교 사람들이 말하는 꼬막은 참꼬막이다. 새꼬막은 “개꼬막, 똥꼬막”이라며 쳐주지 않는다.

참꼬막은 껍데기 줄이 17∼20개, 새꼬막은 30개 안팎, 피조개는 40개 정도이다. 새꼬막은 대체로 서울 사람처럼 희멀건하다. 참꼬막은 전체적으로 굴뚝에서 나온 새처럼 거무튀튀하다. 새꼬막은 영양이 풍부한 개펄 안쪽 깊은 곳에서 자란다. 1, 2년이면 먹을 수 있다. 참꼬막은 얕은 개펄에서 자란다. 성장이 더뎌 적어도 3년은 지나야 한다.

참꼬막이 햅쌀 맛이라면, 새꼬막은 묵은쌀 맛이다. 참꼬막은 살이 야들야들하면서도 쫄깃하다. 갯내가 멍게만큼 은은하다. 입안 가득 향긋하다. 새꼬막은 질겅물컹하다. 껌이 처음 입안에서 씹힐 때 같다. 짠 바닷물 냄새가 강하다.

벌교 사람들은 툭하면 주전부리로 참꼬막을 까 먹는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해바라기 씨 까 먹는 거와 같다. 재미가 보통 쏠쏠한 게 아니다. 껍데기가 커다란 냉면그릇에 수북이 쌓이는 즐거움도 그에 못지않다. 밥상 옆에 고봉으로 쌓인 껍데기는 그 옛날 전사들의 전리품이다.

선사시대 사람들도 그렇게 꼬막을 까 먹으면서 조개무지를 남겼으리라. 꼬막은 저지방 고단백 식품이다. 원시인들에게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이렇다 할 먹을 것이 없을 때 손쉽게 구할 수 있었던 것은 개펄의 조개였을 것이다. 그들은 꼬막으로 주린 배를 채운 뒤 전복이나 진주조개 껍데기는 화폐로 쓰거나 목걸이 등 장신구로 썼다.

‘꼬막의 껍질은 수없이 많은 골이 패어 있었다. 기와지붕과 똑같은 골이 쥘부채의 살처럼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 골마다 갯뻘이 끼어 있으니 씻는 것만도 보통일이 아니었다. 그 다음이 삶는 일이었다. 감자나 고구마를 삶듯 해버리면 꼬막은 무치나마나가 된다. 시금치를 데쳐내듯 핏기는 가시고 간기는 그대로 남아있게 슬쩍 삶아내야 한다. 그 슬쩍이라는 것이 말 같지 않게 어려운 일이었다. 알맞게 잘 삶아진 꼬막은 껍질을 까면 몸체가 하나도 줄어들지 않고, 물기가 반드르르 돌게 마련이었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에서>

꼬막 맛은 어떻게 삶느냐에 달렸다. 너무 오래 삶으면 질겨진다. 그렇다고 삶는 둥 마는 둥 하면 개흙 냄새가 난다. 한마디로 ‘데치듯 익혀라’가 정답이다. 너무 익으면 ‘삶은 채소’ 같아 영 맛이 안 난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사람마다 비장의 노하우가 있다.

어떤 이는 끓는 물에서 공기방울이 생길 때 꼬막을 넣었다가, 다시 공기방울이 올라올 때 불을 끈다. 그런 다음 뚜껑을 닫은 채로 2, 3분 기다렸다가 꼬막을 꺼낸다. 또 다른 이는 물이 끓으려고 할 때 얼른 꼬막을 넣고, 이때 한 번 저어준다. 그 다음 뚜껑을 덮고 불을 끈 뒤 2, 3분 있다가 꺼낸다. 물이 펄펄 끓을 때 찬물을 한 바가지 부어 약간 식힌 다음, 꼬막을 넣은 뒤 다시 끓어오르기 시작할 때 건져내는 사람도 있다.

어떻게 삶든 붉은 핏기가 조금 남아있어야 쫄깃한 꼬막이 된다. 물을 너무 많이 넣지 말고 냄비의 4분의 1 정도만 채워 삶는 것도 한 방법이다.

꼬막은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가 제철이다. 벌교엔 어딜 가나 꼬막집이다. 맛도 어금버금하다. 꼬막정식엔 껍데기 벗겨 먹는 통꼬막, 반만 깐 양념꼬막, 완전히 까서 무친 무침꼬막과 꼬막파전, 꼬막회무침, 꼬막데침, 꼬막탕, 꼬막간장떡볶이, 꼬막된장국, 꼬막꼬치조림, 꼬막탕수육 등 식당마다 약간씩 조합이 다르다.

국일식당(061-857-0588), 제일회관(061-857-1672), 갯벌식당(061-858-3322), 종가집꼬막회관(061-858-1717). 소설 태백산맥을 떠올리게 하는 식당도 눈에 띈다. 벌교태백산맥꼬막맛집(061-858-6100), 외서댁꼬막나라(061-858-3330), 거시기꼬막식당(061-858-2255).

서울 강남구 청담동 무돌(02-515-3088), 종로구 낙원동 시인(02-735-8525), 중구 북창동 무안산낙지다래정(02-753-9497). 영화감독 이미례 씨가 운영하는 종로구 인사동 여자만(02-725-9829)과 경기 고양시 일산 여자만(031-901-2329). 여자만(汝自灣)은 전남 고흥과 여수 사이에 있는 바다 이름이다.

‘너는 안으로 안으로만 힘을 모으고/나는 밖으로 밖으로만 힘을 모은다/서로 힘이 다 빠져 균형이 흔들릴 때/그제서야 열리는 그대의 속내/모서리 나간 상 위에 투구 같은 몸을 던지며/너는 참 살뜰히도 몸을 비우는구나’

<김창균의 ‘꼬막백반’에서>

삶은 통꼬막은 꽁무니 부분에 숟가락이나 젓가락을 끼워 비틀면 껍데기가 엇갈려지며 열린다. 거무튀튀한 주름이 갈라지며 쫄깃한 살이 드러난다. 후루룩! 껍데기에 남은 짭조름한 국물도 맛있다. 꼬막나라는 버릴 게 하나도 없다.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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