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눈높이 담장, 무대-객석 경계 허물다

  • 입력 2009년 6월 8일 02시 50분


한국적 눈높이를 절묘하게 구현한 서울 명동예술극장의 개관 기념작 ‘맹진사댁 경사’. 전통한옥 구조를 변형한 무대세트는 대청마루에 앉을 때와 마당에 설 때 배우들의 머리가 나란히 야트막한 담벼락에 걸리는 한국적 미장센을 보여준다. 사진 제공 명동예술극장
한국적 눈높이를 절묘하게 구현한 서울 명동예술극장의 개관 기념작 ‘맹진사댁 경사’. 전통한옥 구조를 변형한 무대세트는 대청마루에 앉을 때와 마당에 설 때 배우들의 머리가 나란히 야트막한 담벼락에 걸리는 한국적 미장센을 보여준다. 사진 제공 명동예술극장
한국형 세트미학 구현 연극 ‘맹진사댁 경사’

《맹 진사(신구·사진)는 지독한 속물이다. 돈으로 진사 자리를 산 그는 외동딸 갑분(장영남)을 명문세도가 김 판서 댁에 시집 보내기 위해 온갖 잔꾀를 내 성공한다. 그러나 아뿔싸, 천려일실(千慮一失)이라고 김 판서 댁에 가서 정작 신랑감 미언(서상원)의 인물은 보지도 않고 돌아온다. 가문의 어른들은 “경주 돌이면 다 옥돌이더냐”라며 맹 진사를 나무라지만 바리바리 실려 온 결혼예물에 취한 맹 진사는 족보 위조에만 열심이다.》

명동극장 복원개관 기념공연

장민호-신구 등 노장 불꽃연기

장애우 편견 등 재연엔 아쉬움

그때 들려오는 비보가 있었으니 미언이 타고난 절름발이란 풍문이었다. 아연실색한 맹 진사, 다시 잔꾀를 내 갑분의 몸종 입분(송인성)을 갑분으로 바꿔쳐 혼례를 올리려 한다. 그러나 갑분과 미언의 혼례식 날 또 다른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34년 만에 복원된 서울 명동예술극장이 5일부터 개관 축하공연으로 선보인 ‘맹진사댁 경사’(오영진 작, 이병훈 연출)는 1944년부터 연극과 영화, 뮤지컬 등으로 수없이 제작된 작품이다. 그만큼 이 작품은 고전연희 ‘춘향전’에 필적할 만한 근대적 희극으로 손꼽혀왔다. 영화 ‘시집가는 날’로도 유명한 이 작품을 재개관 첫 공연으로 선택한 것은 한국 연극의 고전으로 이 작품을 새롭게 자리매김하려는 의지가 숨어있다.

신구 씨가 잔꾀만 부리다 제 꾀에 속아 넘어가는 맹 진사 역을 능청스럽게 소화한 것이나 귀 먹고 총기도 흐려진 맹 진사의 아비 맹 노인 역을 맡은 장민호 씨가 팔순이 넘은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똑 부러지게 소화한 연기는 이 작품에 대한 오마주(경의)로서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몇 가지 아쉬움이 남는다. 광복 전에 집필된 이 작품은 몇 가지 한계를 지닌다. 절름발이라는 이유만으로 미언을 마다하고 무남독녀를 머슴에게 시집보낸다는 내용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엿보인다. 미언이 절름발이란 설정이 본디 낮엔 뱀, 밤에는 인간으로 변하는 뱀서방 설화를 근대적 정서에 맞게 변이시킨 것이었음을 상기한다면 이런 설정은 현대적 정서에 맞게 바꿨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권문세가 출신의 미언이 몸종인 입분을 신부로 선택하기까지 개연성도 여전히 부족하다.

이번 공연의 압권은 한국형 무대미학에 있다. 박동우 중앙대 교수는 한국형 전통가옥 세트는 일본의 영화감독 오즈 야스지로가 다다미에 앉아 생활하는 일본인의 눈높이에 맞춰 구현한 ‘다다미 샷’에 필적할 만한 ‘한옥 담장 샷’을 구현했다.

기와지붕을 들어내고 정자와 대청마루, 사랑방을 하나로 연결한 이 작품의 무대세트는 자연스러우면서도 편안한 한국형 미장센을 선보였다. 이 무대세트에선 배우들이 대청마루에 앉아 연기할 때와 마당에 서서 연기할 때 머리의 높이가 담장 높이와 일치한다. 또한 담장 너머에서 끊임없이 기웃거리는 동네사람과 하인의 시선을 끌어들이는 등 타인의 시선에 노출되기 쉽지만 오히려 겉으로 드러나는 체면에 집착하는 한국인의 집단의식을 절묘하게 시각화했다.

이는 무대에서 객석을 바라보면 “객석이 품에 폭 안기는 것처럼 아늑하게 한눈에 들어온다”는 명동예술극장 특유의 객석미학을 무대미학에도 적용해 무대와 객석의 시각적 합일을 끌어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한 성과다. 21일까지. 1만5000∼4만 원. 1644-2003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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