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에서]“판박이 시사회 싫다”

  • 입력 2009년 4월 13일 02시 57분


‘똥파리’ 감독-관객의 포장마차 스킨십

“안녕하세요, 똥파리 상훈이에요! 자, 주문받겠습니다. 저렴하게 준비한 ‘4종 세트’에 주목해 주세요!”

10일 오후 8시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의 한 술집. 영화 ‘똥파리’(사진)의 개봉(16일)을 앞두고 열린 ‘관객과의 만남 일일포장마차’에서 양익준 감독(34)이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날랐다. 양 감독은 영화에서 주연 상훈을 연기했다. 이날 입은 옷은 영화 속 차림 그대로. 조연 김꽃비 이환 정만식도 부지런히 홀과 주방을 오갔다.

100여 명의 손님들은 네 차례의 시사회에서 초대받은 관객이었다. 수원에서 온 대학생 이정원 씨(26)는 “지금은 극단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영화를 만들고 싶다”며 “세상에서 사랑받을 방법이 영화뿐이라는 생각으로 모든 걸 쏟았다는 양 감독의 말에서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똥파리’는 최근 제38회 네덜란드 로테르담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타이거상을 받으며 해외에서 먼저 주목받은 독립영화다. ‘유럽의 선댄스’로 불리는 이 영화제에서 한국 영화가 타이거상을 받은 것은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홍상수), ‘질투는 나의 힘’(박찬옥)에 이어 세 번째다. ‘똥파리’는 밑바닥 인생을 사는 상훈을 중심으로 가정 폭력의 폐해를 진지한 시선으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손님 중 일부는 오전 2시가 넘도록 자리를 뜨지 않았다. 게임회사를 다니는 김유민 씨(27)는 “친구가 이 자리에서 소개해 준 여자는 일찍 집에 갔지만 내 꿈이 영화감독이어서 뜻깊다”며 “10년 뒤엔 삶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은 영화를 꼭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한쪽에서는 양 감독의 친구 여섯 명이 술잔을 주고받았다. 정태봉 씨(34)는 “고되게 영화 찍는 모습이 안쓰러웠는데 좋은 시작을 보게 돼 감개무량하다”며 소주를 들이켰다.

이날 밤 관객과 감독, 배우들이 부딪친 술잔 소리에선 극장에서 열리는 여느 시사회의 무대 인사와는 다른 ‘정(情)의 힘’이 느껴졌다. 위기에 빠진 한국 영화를 구해낼 힘을 작은 영화에서 찾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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