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714년 영국인 밀 타자기 특허

  • 입력 2009년 1월 7일 02시 59분


5·16군사정변으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 정권은 1961년 난립한 학원들을 정리한다는 취지로 ‘사설 강습소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이전부터 영업하던 모든 사설학원도 새로 인가를 받도록 했다. 이 법에 따라 1호로 인가받은 곳은 ‘뉴타자학원’.

당시만 해도 타자로 문서를 작성하는 것은 웬만한 사람은 하지 못하는 고급 기능이었다. 타자에 능숙한 젊은 여성들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화이트칼라 직종에 진출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주산, 부기(簿記) 등을 함께 가르치는 타자학원은 서울의 중심가에서 1980년대까지 성업했다.

타자기는 문자의 자모(字母), 숫자, 기호 등의 활자가 붙어 있는 키를 손가락으로 눌러 종이 위에 문자를 찍는 기계. 1714년 1월 7일 H 밀이 영국에서 타자기 특허를 받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후 많은 발명가가 타자기를 개량했지만 1874년 총기를 생산하던 미국의 레밍턴 총포회사가 만든 것을 실용적 타자기의 효시로 친다.

오늘날 가장 널리 쓰이는 개인용 컴퓨터(PC) 키보드의 영문 자판인 ‘쿼티 자판’도 비슷한 시기에 선보였다. 문자판 상단 왼쪽부터 알파벳이 ‘QWERTY…’ 순으로 배열된 이 자판은 미국인 크리스토퍼 숄스가 1873년에 발명했다. 1932년 어거스트 드보락이 인체공학적으로 더 효율적인 자판을 개발했지만 이미 사람들의 손에 익숙해진 쿼티 자판을 넘어서진 못했다.

개량된 타자기가 널리 보급됨에 따라 문서를 작성하는 시간은 크게 단축됐고 글씨 쓰기를 업(業)으로 삼던 많은 사람은 일자리를 잃어야 했다.

최초의 한글 타자기는 서울 종로 ‘공안과’의 창립자인 고(故) 공병우 박사가 발명했다. 평북 벽동 출생인 공 박사는 1936년 일본 나고야대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한국인 최초의 안과의사.

공 박사는 1938년 눈병 치료를 받으러 온 한글학자 이극로 선생을 만나 한글기계화운동에 관심을 갖게 됐다. 오랜 연구 끝에 한글 타자기를 발명한 것은 1949년. 이후 그는 초성 중성 종성을 따로 입력할 수 있는 세벌식 타자기도 개발했다. 하지만 정부는 네벌식 자판을 표준으로 삼았고 1982년 여기서 개량된 두벌식이 나와 지금까지 널리 쓰이고 있다.

타자기와 타자학원에 대한 도전은 정보기술(IT) 분야에서 나왔다.

1980년대 말부터 한국에서도 PC가 급속히 확산되기 시작했다. 1989년 한메소프트가 타자연습 프로그램인 ‘한메타자교실’을 만들어 보급하자 PC를 갖춘 사람은 누구든 ‘베네치아’ 등 게임까지 즐기며 쉽게 타자를 익힐 수 있었다. 타자를 배우러 학원을 찾는 사람이 크게 줄었고 타자학원들은 문을 닫거나 업종을 바꿔야 했다.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