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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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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베를린과 서울을 오가며 활동하는 설치미술작가 양혜규(37·사진) 씨가 2009년 6월 개막하는 제53회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의 초대 작가로 선정됐다.
서울대 조소과와 독일 프랑크푸르트예술아카데미를 졸업한 그는 미국과 유럽의 미술관에서 여러 차례 초대전을 열면서 주목받는 해외파 작가다. 거울, 전등, 블라인드 등의 오브제와 바람과 열 같은 비물질을 결합한 그의 작업은 시적이면서도 사색적이다. 국내 개인전은 2006년 인천의 폐가에서 선보인 ‘사동 30번지’가 유일하다.
23일 서울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린 간담회에 한국관 커미셔너 주은지(미국 뉴뮤지엄 큐레이터) 씨와 함께 참석한 양 씨는 “감각을 동원한 감성적 공동체가 나의 관심사”라고 말했다. 감각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그는 2년 전부터 감각의 개방성과 보편성에 매료됐으며 이제 감성적 개념주의(Emotional conceptualism)에 작업의 주파수를 맞추고 있다.
역사와 감성, 일상의 경험과 기억이란 주제를 파고드는 그의 작업은 추상적, 개념적이다. 말로 표현하기 힘들지만 관객이 촉각, 후각 등을 이용해 체험하는 동안 정서적으로 작품에 젖어들게 된다는 것이 커미셔너의 설명이다. 주 씨는 “양 씨는 미묘한 사유와 복잡한 층위를 지닌 이야기를 작품으로 풀어낸다”며 “사적 경험과 주관적 인식이 보편적으로 연결되고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작업”이라고 소개했다.
그의 작품에 다가서는 주요 키워드는 ‘연약함(vulnerability)’. “‘다치기 쉬운, 상처받기 쉬운’으로 번역되는 말이다. 2004년 내가 머물렀던 장소와 스쳐간 사람들 등을 담은 비디오 3부작을 만들면서 감정이 짙을수록 마음이 약해지는 것을 경험했다. 하지만 쓸쓸하고 슬픈 정서를 느끼는 어느 한 순간에 개별자들이 연결되는 통로가 열리더라.”
14년째 이방인으로 살면서 겪은 외로움과 소외가 작가로서 일할 수 있는 토대가 됐다고 털어놓는 양 씨. 그는 “작가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을 불러내려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한국관에 나올 작업을 묻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작업일지 아직 모르겠다. 나를 유목하는 작가라고 한다면 그건 내가 갖고 있는 영토를 떠나기를 주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전 작업이 녹아들 테지만, 동시에 내가 배우고 습득한 것을 철저히 잊어버리려고 한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