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 이상우의 행복한 아침편지] ”천사같은 당신, 진짜 고마워”

  • 입력 2008년 12월 23일 08시 34분


며칠 전 아내가 자기 대신 통장정리 좀 해달라며 제게 통장을 쥐어줬습니다. 그런데 결혼하고 제가 한번도 통장정리를 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동안 살림은 잘 하고 있었는지, 잔액은 얼마나 되는지 갑자기 궁금해졌습니다.

은행 자동화기계에 넣고 통장정리를 했는데, 그 내역을 보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지난 4년 동안 ‘강직성 척추염 환우회’로 매월 같은 날짜에 일정금액이 자동이체 되고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4년 전까지 강직성 척추염을 꽤 심하게 앓았습니다. 그리고 완치까지는 아니지만 일상생활이 가능하다고 판정을 받았습니다. 꾸준한 운동을 하면 병의 진행도 거의 멈출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환우회는 신경도 쓰지 않고 거의 잊고 살았는데, 아내는 그 곳에 계속 후원금을 내고 있었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가자마자 “아직까지 후원금을 내고 있었어? 난 거의 나아서 후원금은 이제 안 내는 줄 알았는데…”하니까 “당신, 아플 때 기억 안나? 아무리 건강해졌어도 그렇게 매정하게 끊으면 안 되지. 나는 옛날 생각하면 고마워서, 지금 이 정도 후원도 부족하다고 생각해” 라고 했습니다.

아내 얘기를 들으니, 잊고 있었던 옛날 생각이 났습니다.

제가 결핵성 늑막염의 후유증으로 강직성 척추염이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 기흉까지 생겨서 큰 수술을 두 번이나 했습니다.

그 때 아내는 둘째를 임신 중이었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태교는 생각도 못하고 눈물바람으로 하루하루 보내며 제 병수발을 들었습니다.

그때 우연히 환우회를 알게 됐고, 거기서 보내오는 소식지를 통해, 병세가 호전된 사람들의 희망적인 이야기도 읽었습니다. 좋은 약물요법, 좋은 운동방법 등 정보도 많이 얻게 됐습니다. 아내는 그 소식지를 매일 꼼꼼하게 읽으면서, 할 수 있는 건 다 실천해봤습니다.

덕분에 거동도 불편했던 제가, 지금 이렇게 자유롭게 걸으며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 됐고, 병도 거의 잊은 채 4년이란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겁니다. 사실 저는 그렇게 저를 괴롭히던 병마와는 다 끝났다는 생각에 환우회조차도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잊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 아내는 그 때의 절실함과 고마움을 전혀 잊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작은 후원금이나마 환우회 회원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꾸준히 후원을 하고 있었던 거지요. 그런 마음도 모르고, 저는 그걸 왜 후원하냐고 묻고 있었으니 병이 나았다고 그 고마움들을 한 순간에 싹 잊어버린 겁니다. 제 자신이 너무도 부끄러웠습니다.

그날 밤 저는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아내에게 “다음달부터 조금 더 액수를 늘려서 후원을 해주면 어떻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아내가 얼굴을 환하게 펴며, “그래도 되겠어? 정말 그렇게 할까?” 하며 좋아했습니다.

제 아내를 보니 “참 천사처럼 착한 사람이구나” 느꼈습니다.

다시 한번 감동이 일었습니다. 저희 부부는 2009년 새해 계획을 벌써 하나 세웠습니다. 두세 달에 한번씩은 환우회에 나가 봉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저를 낫게 해 준 환우회인데, 그걸 잠시나마 잊었다는 게 죄송할 뿐입니다. 지금도 강직성 척추염으로 고생하고 계신 많은 분들, 건강해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병마와 싸우시길 바랍니다.

언젠가 툭툭 털고 건강해질 날이 꼭 올 겁니다.

광주 농성 | 송명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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