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계절’ 사라진 출판계 ‘위기의 계절’

  • 입력 2008년 10월 23일 02시 59분


■ 불황 장기화에 신음

종이 가격 - 인쇄비용 급증에 고환율까지 충격

올해 신간 발행부수 지난해보다 22%나 줄어

잇단 매각설에 뒤숭숭… “매출 50%감소 최악”

“이런 불황은 처음입니다. 올해 내내 그래요. 여름 특수(特需)는 아예 없었고 지금으로선 겨울 특수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매출이 예년보다 30∼50% 줄었어요. 대부분 출판사들이 최악의 상황을 맞았습니다.”(주연선 은행나무 대표)

올해 출판계 불황이 이어지고 있다. 출판계 불황설은 최근 몇 년간 줄곧 나왔지만 올해는 그 실태가 구체적으로 드러날 정도로 심각하다.

최근 출판사 구조조정과 서점 부도가 이어지고 있으며 발행부수 등 출판 관련 통계에서도 위기 상황을 실감할 수 있다. 게다가 출판사들은 종이 값과 인쇄비가 오른 데다 환율까지 뛰어 이중 삼중고를 겪고 있다.

출판계에서는 현재의 불황을 지나가는 소나기로 보기엔 사태가 장기화 조짐을 보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 중앙북스 구조조정 단행

최근 들어 대형 출판사의 구조조정과 매각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중앙일보의 출자로 출범한 출판사인 중앙북스는 지난달 부도설에 휩싸인 끝에 강력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 회사는 최근 직원 대부분을 내보낸 뒤 그들이 회사와 계약을 해서 책을 내는 임프린트 방식으로 전환을 꾀하고 있다.

10대 메이저 출판사 중 하나로 꼽히는 A사와 전통 있는 인문 출판사로 인정받던 B사에 대해서도 위기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직원을 감축한 출판사도 여러 곳이다. ‘마법 천자문’ 시리즈 1000만 부 판매를 넘어선 21세기북스도 지난해 160명에서 올해 120명으로 줄였다. 이양종 이사는 “특별히 구조조정을 하진 않았지만 빠져나간 인원을 충원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출판물 물량에서도 출판계의 불황이 얼마나 심각한가가 드러난다. 단행본 교과서 만화 등 장르와 상관없이 발행 부수가 대폭 감소했다.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조사한 ‘전국 납본통계’에 따르면 2007년 초판과 개정판을 아우른 전체 신간 발행부수는 월평균 약 1217만 부. 하지만 올해 9월까지 집계된 발행부수는 월평균 약 961만 부에 그쳤다. 약 22% 줄었다.

만화도 마찬가지. 지난해 매달 평균 180만 부가량 발행됐지만 올해는 약 147만 부 수준으로 18%가량 줄었다. 이미현 민음사 홍보부장은 “어려운 시기에 위험을 피하고 싶어 많은 출판사들이 신간 발행 부수를 줄이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 서점 부도, 환율 상승…출판 환경도 악화

불황의 그림자는 출판사 바깥에도 깊게 드리웠다. 최근 부산에서 30년 전통을 자랑하던 대형서점 ‘면학도서’와 보유 서적이 20만 권이 넘던 ‘청하서림’이 잇따라 부도 처리됐다. 인터넷서점 강세와 중앙대형서점 진출도 한몫했지만 출판계 전체의 침체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서점가의 ‘경기 체감 바로미터’라 불리는 여행서 판매가 준 것도 눈에 띈다. 여름 특수를 노리고 많은 여행 관련 도서가 쏟아졌으나 예년에 비해 판매량이 20∼30% 줄었다. 박영준 교보문고 광화문점장은 “출판계 경기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분야가 여행서와 잡지”라면서 “여행서 판매량이 준 것은 물론 잡지들도 부록 규모를 줄여 불황의 분위기가 짙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경제위기 속에 원자재비 급등과 환율 상승은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대한출판문화협회의 장영태 차장은 “종이 값만 쳐도 지난해보다 평균 50% 이상 올라 도서 제작 부담이 커졌다”고 말했다. 기름을 써야 하는 인쇄 역시 최근 유가가 하락했지만 환율 상승으로 결과적으론 비용이 상승했다.

환율 상승은 저작권료나 인세 지불에도 악영향을 끼쳤다. 해외 판권 계약이 대부분 달러나 엔화 기준으로 이뤄져 비용이 훨씬 커진 셈.

김수진 아시아네트워크 대표는 “환율 상승 전에 계약한 책이 12권인데 달러 가격이 올라 돈이 30∼50% 더 들게 생겼다”면서 “대부분 출판사들이 해외 지급기한을 최대한 연기하려 애쓰는 상황”이라며 답답해했다.

정부 측은 지속적인 지원사업으로 출판계의 어려움을 돕겠다는 계획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출판인쇄산업과의 최장헌 사무관은 “지난해 시작한 출판지식산업 육성방안을 5개년 계획으로 추진하고 국내 출판물 해외 마케팅 활동도 지원하겠다”면서 “장기적으로 산업 기반을 다져 나가는 것만이 불황을 타개할 해결책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위기탈출 해법은

“공격적 마케팅으로 새 트렌드 만들어야”

“종이책 한계 벗고 e-북 적극 나설때” 지적도

“장기 불황이란 위기가 오히려 새로운 타개책을 찾는 기회일 수도 있다.”(한성봉 한국출판인회의 대외협력위원장)

출판계 불황 우려 속에서도 다양한 해법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 건강한 출판 구조를 마련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단 서점가에선 경비는 절감하되 적극적인 마케팅을 유치해 불황에 맞선다는 입장이다. 남성호 교보문고 홍보팀장은 “외환위기 때도 경제경영 자기계발 중심으로 어려움을 극복했듯 최근 트렌드로 형성된 ‘자기 치유’ 바람을 마케팅에 끌어들이겠다”면서 “출판사와 연계한 다양한 이벤트를 벌일 계획”이라고 전했다. 인터넷서점 YES24의 임수정 마케팅파트장도 “어려운 시장상황을 극복하는 해법을 전하는 도서 저자들의 릴레이 강연회 등을 마련해 독자들의 관심을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

도서 제작 자체의 경비를 절감하는 곳도 많다. 책 표지에 입체적인 문양을 넣거나 특수 처리하는 것을 통칭 ‘수가공’이라 부르는데 이를 생략하고 소박하게 책 표지를 만드는 출판사가 늘고 있다. 이럴 경우 권당 1000원가량의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속 종이도 그간 독자들의 취향을 반영해 최고급 용지를 선택해 왔으나 최근엔 1, 2단계 아래 것을 쓰기도 한다.

지속적인 스테디셀러 발굴도 불황을 넘기는 힘이 된다. 박은주 김영사 대표는 “올해 불황 탓인지 별다른 베스트셀러는 없었지만 ‘백 리스트(back list·통상 1년에 1000부 정도씩 나가는 스테디셀러)’ 덕분에 오히려 지난해 같은 시기보다 매출은 늘어났다”고 말했다. ‘에코의서재’의 조영희 대표도 “꾸준하게 독자들이 찾아주는 ‘생각의 탄생’과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가 효자 노릇을 해 회사 운영에 크게 어려움은 없다”고 말했다.

해외 시장 등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시기라는 의견도 있다. 기본적으로 국내에서 책을 소화하는 양이 한계가 있으니 해외에 저작권을 수출해야 한다는 것. 문화체육관광부가 이전 국제교류 차원의 지원에서 벗어나 국내 불황 극복을 위한 산업적인 수출 활성화를 목적으로 태스크포스를 최근 꾸린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전자책 시장도 마찬가지. 한성봉 위원장은 “그간 출판계가 누려 왔던 지위와 특권을 과감하게 버리고 근본적으로 ‘책의 미래는 무엇인가’라는 고민을 해야 할 시점”이라며 “종이책의 한계를 인정하고 전자책 개발 등에 출판계가 적극적으로 나서 출판 구조 개선에 주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바로잡습니다]

본보 2008년 10월 23일자 A20면 '출판계 위기의 계절' 기사와 관련, 중앙북스가 부도설에 휩싸인 끝에 구조조정을 단행했다고 보도하였으나 중앙북스는 최근 위급한 경영상황에 처한 적이 없으며, 부도설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져 바로잡습니다. 또 중앙북스는 직원 대부분을 내보낸 것이 아니라 일부 직원을 기획출판 방식인 임프린트 계약으로 전환한 것으로, 경영위기에 따른 구조조정이 아니었다고 밝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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