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책]거짓말 해보기, 너무 힘드네요

  • 입력 2008년 3월 29일 02시 59분


◇우리 가족의 거짓말하는 날!/앙네테 랑겔 글·슈테피 베커 그림·이루리 옮김/36쪽·9000원·창조아이(6세∼초등 2년용)

“너 또 몰래 군것질했지?”

“아아… 아니에요, 안 했어요.”

“엄마 립스틱이 왜 갑자기 눈곱만큼 작아졌지?”

“난 몰라요….”

웬만큼 머리가 큰 아이들이 곤란한 상황에 처하면 둘러대거나 거짓말하는 건 어느 집이나 겪게 되는 일. 그런데 이런 상황, 아이들뿐일까?

‘우리 가족의 거짓말하는 날!’은 온 가족을 위한 책이다. “왜 거짓말을 하니!”라고 다그치는 엄마 아빠의 말에, 아이들은 웬만해선 수긍이 가질 않는다. 거짓말이 나쁘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 부모가 모범을 보여야 하지만, 부모의 ‘거짓말’도 만만치 않기 때문.

가령 엄마의 이런 얘기. “내일부터는 건강하게 살아야지. 이제부터 저녁에는 단것을 먹지 않겠어!” 수없이 다짐했으니 믿을 수 없는 말이다.

만화풍의 개성적인 그림과 함께 가족들의 거짓말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누가 마룻바닥에 물감 자국을 만든 거야?”라는 아빠의 물음에 “내가 안 그랬어요”라고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거짓말을 하는 딸 막시, 회사 사장님이 밤에 전화하면 “나 없다고 말해”라고 엄마한테 속삭이는 아빠…. 이래서야 서로 거짓말 더 잘하는 방법을 짜내기만 할 것 같다.

그래서 아이들이 내놓은 묘안은 ‘우리 가족의 거짓말하는 날’ 만들기. 아침을 준비해 놓고는 엄마 아빠한테 뛰어가선 “오늘은 생선요리예요!”라고 외친다. 물론 거짓말. 테이블엔 빵과 딸기잼, 우유, 생선 그림이 놓여 있다.

이번엔 엄마가 거짓말할 차례다. “내 신발 어디 있어요?”라는 아들 모리츠의 물음에 “아마 냉동실 안에 있을걸”이라고 답하는 엄마. 신발을 냉동실에 놓아둘 턱이 있나!

이렇게 ‘거짓말하는 날’의 하루를 좇다 보면 거짓말하기도 힘들구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들 듯싶다. 동물원에 가서는 “얼룩말이 멋지게 으르렁거리는구나”, “코끼리가 알을 낳네” 같은 거짓말을 머리를 써서 해야 한다. 아이스크림이 너무너무 먹고 싶은데, 어떻게 ‘거짓말’을 해야 엄마 아빠가 사줄지 모르겠다. 하루가 다 지날 무렵엔 거의 울 것 같은 기분이다.

‘거짓말은 좋지 않은 것’이라는 틀에 박힌 교훈을 주려고 하기보다는, 재미난 상황을 만들어 거짓말을 하지 않도록 이끄는 책. 엄마 아빠가 읽어주다 보면 얼굴이 빨개질지도 모르지만, “그러니깐 우리 같이 거짓말하지 말도록 하자!”고 함께 손가락을 걸면, 아이들의 부담은 훨씬 줄어들 듯싶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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