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전쟁? 네 친구는 영원히 떠났단다

  • 입력 2008년 2월 16일 02시 57분


◇아이들아, 평화를 믿어라.림 하다드 지음·박민희 옮김/332쪽·1만5000원·아시아네트워크

2006년 7월 13일 새벽.

꿈속의 폭발에 뒤척이던 저자. 한껏 굳은 남편 표정에 어리둥절하다. 악몽도 전염이 되나. 그런데 심각하게 창밖을 주시하는 남편. 그리고 침실로 뛰어든 두 아이. “엄마, 천둥소리가 났어. 그런데 비는 어디서 와?” 비는 내리지 않았다. 악몽도 없었다. 정말, 진짜로, ‘전쟁’이 일어났다.

기독교도인 저자는 레바논에서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다. 남편은 영자신문 ‘데일리스타’에서 일하는 영국인 기자. 중동 지역 특성상 긴장은 끊이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행복했던 나날. 그러나 ‘그날’ 모든 게 바뀌었다. 인생 자체가 송두리째 날아갈 위협.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했다.

‘아이들아, 평화를 믿어라’는 2006년 이스라엘과 레바논 사이에 발발한 전쟁, 그 33일간의 기록이다. 남편 닉은 취재를 위해 전쟁 속으로 달려 나가고…. 마침 부모와 형제들은 해외에 체류 중. 두 아이를 지켜 내기 위한 엄마의 피나는 싸움이 시작된다.

아이들에게 전쟁의 참상을 숨기고픈 마음은 눈물겹다. 포격의 굉음은 천둥소리, 산속으로의 피란은 피크닉 가는 길이다. 스리랑카 유모의 귀국은 ‘몇 날 밤만 자면 돌아올’ 휴가. 저자는 되뇐다. “아이에게 말했다. ‘휴가가 끝나면 우린 멋진 핼러윈 파티를 할 거야.’ 또 거짓말을 한 것이다. 그렇지만 거짓말이 우리를 버티게 해 준다.”

‘아이들아…’는 일기 형식이지만 2중 구조를 지닌다. 포격소리가 끊이지 않긴 해도 격전지에선 조금 벗어난 저자와 두 아이. 두려움과 외로움 속에 싸우는 엄마의 심정이 한 축이라면, 다른 축은 거의 매일 걸려 오는 남편의 전화다. 영국인이기에 비교적 객관적 시각을 지닌 남편을 통해 전해지는 전쟁 현장. 가깝지만 먼 두 얘기가 교차 전개된다.

풍전등화에 놓인 조국 레바논을 대하는 저자의 심정은 복잡하다. 미국으로 이민 갔다 애끓는 조국애로 돌아온 땅. 이를 짓밟는 이스라엘의 군홧발은 분노의 대상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안전을 생각하면 버려야 마땅한 조국. 그렇다고 전쟁에 뛰어든 남편을 남겨 둘 수도 없고.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 운명이 원망스럽다.

저널리스트의 글이지만 감정적이다. 1183명이 목숨을 잃은 전쟁에 대한 분노 때문이다. 그 가운데 3분의 1 이상은 13세 미만의 어린이였다.

“지금도 죽은 아이들의 얼굴이 계속 나를 괴롭힌다. 자식을 둔 어머니로서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내 아이들은 지켰지만 다른 아이들을 살리는 데는 아무런 일도 하지 못했다. 아이들의 영혼이 엄마 아빠의 편안한 품을 찾아 헤매는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뭐라서 그를 탓할 것인가.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다. 원제 ‘Reem's Diary’(2008년).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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