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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2월 13일 02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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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에 따르면 1998년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일산동에 있던 채 씨의 자택(99m²·30평)은 신축되는 아파트 출입을 위한 도시계획 도로에 포함됐다.
채 씨는 당시 보상가격으로 4억 원을 요구했지만 건설사로부터 공시지가 수준의 9600만 원만 받았다. 채 씨는 즉각 고양시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냈지만 패소했고 이후 여러 차례 고양시청과 대통령비서실에 민원을 제기했지만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채 씨는 결국 자신의 억울함을 알리겠다며 2006년 4월 창경궁 문정전에 불을 질렀다. 그러나 채 씨에게 남겨진 것은 전과와 추징금뿐이었다. 채 씨는 재판 과정에서 공탁금 600만 원까지 내놓았지만 오히려 추징금 1300만 원을 물게 됐다.
2006년 7월 집행유예로 석방된 채 씨는 2개월 뒤 인천 강화군으로 이사했고 지난해 아내와 합의이혼을 했다. 서울과 일산 등에서 철학관을 운영하기도 한 채 씨는 강화군으로 이사한 뒤에는 밭을 사서 배추와 무 등을 재배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자식들의 권유로 전처와도 다시 살림을 합쳤다.
채 씨는 지난해 ‘오직하면(오죽하면) 이런 짖(짓)을 하겠는가’란 제목의 편지 3장을 써서 보관해 오기도 했다. 이 편지에는 채 씨가 갖고 있던 사회에 대한 삐뚤어진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한편 문화재청은 2004년 숭례문 바닥과 기둥에 방염재를 발라 쉽게 불이 붙지 않고 시너는 폭발성이 강할 뿐 지속력은 약한 편이어서 채 씨가 2층 바닥에 불을 붙였다는 것에 의문을 제기했다. 소방당국도 채 씨가 검거되기 전까지 2층 지붕 밑 적심을 최초 발화지점으로 추정했다.
채 씨가 밝힌 범행 동기에 대해서도 경찰의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신병 치료 전력이 없는 채 씨가 토지 보상 문제로 이미 한 차례 방화를 저질러 처벌까지 받은 상태에서 1년여가 넘은 시점에 똑같은 이유로 또다시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이 선뜻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혜진 기자 hyejin@donga.com